Die Vorsteher der Amsterdamer Weinhändlergilde, Oil on canvas, 193 × 305 cm. 1659.

▲ Die Vorsteher der Amsterdamer Weinhändlergilde, Oil on canvas, 193 × 305 cm. 1659.

Ferdinand Bol(페르디낭 볼, 1616 ~ 1680)은 네덜란드 도트레흐트에서 외과의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 볼은 당시 유명 초상화가였던 Jacob Gerritsz 의 수습생이 된다. 헤리츠는 당시 유명한 초상화가였는데 이 그림에서 볼의 인물 묘사는 헤리츠의 영향이 크다.

1630년경부터 볼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위대한 렘브란트의 집에 머물면서 그림을 배우게 된다. 이런 이유로 그의 그림에서 렘브란트의 영향이 너무 강해 그의 작품들 중 일부는 렘브란트의 그림으로 오해 받는 작품도 있다. 1660년경부터는 점차 스승의 영향을 벗어나 밝고 우아한 프랑스 풍의 화풍으로 양식을 바꾸었다. 그는 초상화를 주로 그렸는데 이 작품에서는 길드 수석 회원 7명의 초상화를 한 화면에 배치했다.

서 있는 사람을 기점으로 하여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7인은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와인 길드의 수석 회원들이다. 17세기 중엽, 유럽인들에게 와인은 깨끗하지 못한 음용수의 대용품이었다. 따라서 와인은 술이라기보다는 생필품에 가까웠고 13세기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된 포도 재배 기술 탓에, 북위 60도 이하 유럽 전역에서 포도가 생산됨과 동시에 포도주 또한 생산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포도주를 취급하는 상인 길드 중 그 대표자들이니 위세가 대단했을 것인데 볼의 그림에 그 모습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지금의 표현대로라면 이 그림은 아마도 특정 행사 전이나 후에 행사의 기념으로 사진을 찍듯이 그려진 기념 그림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새로운 포도주의 판매처(국가 또는 중요한 지역 상권이었을 수도 있다)가 생겼다거나 아니면 그 해 새로운 포도주가 시장에 출시된 날(마치 보졸레 누보의 발매식처럼)을 기념했을 것이다.

▲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정장을 차려 입은 일곱 명의 남자들 사이로 보이는 탁자보는 무늬(아라베스크 문양)로 보아 멀리 아라비아산으로 추측된다. 당시 포도주 상인들의 재력과 위세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이 구하고자 했다면 아마도 동양(중국이나 일본)의 물품도 가능했을 것이다. 시선이 화가와 마주한 사람은 세 명뿐이고, 나머지는 각기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어쩌면 바쁜 일이 있는 중에 이렇게 모여 앉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눈을 맞추지 않는 것은 빨리 그림 그리기를 재촉하는 사람들의 표시였을 수도 있다.

스승 렘브란트의 영향이 점차 사라져 가는 시기에 볼이 그린 그림이지만, 그래도 렘브란트의 ‘빛’이 화면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새하얀 블라우스가 빛을 반사하고 있고 특히 와인 시험 장비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의 이마와 얼굴이 가장 빛나면서 반대편 기둥 앞의 얼굴이 가장 반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빛은 와인 시험 장비를 든 그 사람의 위 쪽 어딘가에서 화면 전체를 비추고 있다. 이것이 여전히 볼에게 남아있던 렘브란트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17세기 유럽의 무역을 장악한 네덜란드와 그 네덜란드에서 와인 거래를 장악한 7인의 길드 수석 회원들의 표정은 당당하다. 특히 실크 모자를 벗어서 탁자 위에 놓고, 한쪽 다리를 접고 앉은 중앙의 인물은 이 그룹의 회장으로 보이는데 깊게 파인 주름과 흰머리로 보아 가장 연장자임을 알 수 있다. 그의 다문 입술에서 위엄과 동시에 약간의 거만함 까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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