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같이> 소모임 '아는만큼' 주최 '예인 김수악과의 만남'

 

▲ 2월 17일 생활정치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 진주역사문화 공부 소모임인 <아는 만큼> 주최로 ‘예인 김수악과의 만남’이 진주 평거동 서부농협 평거지점 6층 나래춤예술원에서 열렸다.

아는 듯 모르고 지나쳐온 이가 있습니다. 김수악(金壽岳‧1926~2009) 선생이 그렇습니다. 함양 안의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진주에서 생활하며 전통 예술을 배우고 돌아가신 예인입니다. 오히려 진주 사람보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더 알아주는 예술인입니다. 그런 까닭에 선생을 알아가는 공부모임이 반가웠습니다.

 

▲ ‘예인 김수악과의 만남’이 진주 평거동 서부농협 평거지점 6층 나래춤예술원에서 열렸다.

2월 17일 생활정치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 진주역사문화 공부 소모임인 <아는 만큼> 주최로 ‘예인 김수악과 만남’이 진주 서부농협 평거지점 6층 나래춤예술원에서 열렸습니다.

 

▲ 생활정치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 진주역사문화 공부 소모임인 <아는 만큼> 주최로 열린 ‘예인 김수악과의 만남’은 김수악 선생 생전에 인터뷰를 입말 그대로 수록한 자료집 <김수악金壽岳 1925~>를 읽고 의견을 나누고 진주 전통무용가인 김태린 나래춤예술원 원장이 준비한 선생에 관한 자료 영상 등을 시청하고 진주검무 체험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모임은 참가자들이 먼저 선생 생전 인터뷰를 입말 그대로 수록한 자료집 <김수악金壽岳 1925~>를 읽고 의견을 나눈 뒤, 진주 전통무용가인 김태린 나래춤예술원 원장이 준비한 선생에 관한 자료 영상 등을 시청하고 진주검무를 체험하는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전통무용가 김태린 나래춤예술원장

선생은 경남 함양 안의면에서 딸 7자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나 7세 때 진주로 이사 왔습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지어준 순녀란 이름으로는 명이 짧다며 수악이라 개명해주고 세습 무당의 수양딸로 삼게 했습니다. 독선생을 청해 양금을 가르쳤고 9세 때 진주 권번에 입적하면서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선생의 스승들은 하나같이 당대의 명창이요 명인이었던 김옥민, 한성준, 김록주, 최완자, 정정렬, 이선유 등입니다.

1995년 현암사에서 나온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에서는 선생을 일컬어 “신들린 구음 장단에 도리깨도 으쓱”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 ‘예인 김수악과의 만남’에서 소개한 김수악 선생 생전 전통 예술 공연 모습을 시청하는 참가자들.

‘나니나노 나니나노 나니

나니나노 나니나…….

(죽지사)

~

가사나 잡가를 장단 없이 입안에서 흥얼거린다. 때로는 목젖에서 비강으로 밀어내는 절묘한 비음(콧소리)이 상심한 여인네의 심회를 왈칵 뒤집어 놓는다. 입 장단, 바로 이것이 구음이다.‘

 

▲ ‘예인 김수악과의 만남’에서 김태린 나래춤예술원 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김태린 원장이 준비한 자료 영상 속에서 구음을 들었습니다. 흥얼흥얼거리듯 장단을 맞추는 소리가 흥겨운 듯 구슬픕니다. 이러한 선생의 구음을 진주 전통무용가 성계옥(1927∼2009) 선생은 그가 2002년 쓴 『진주검무』에서 “굿거리 구음은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 ‘예인 김수악과의 만남’에서 막간을 이용한 전통 춤 공연

선생을 우리 진주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온 것은 혹시 선생이 권번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 가치를 소홀히 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 ‘예인 김수악과의 만남’에서 막간을 이용한 전통 판소리 공연.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에서는 권번을 ‘오늘날 예술 학교와 비슷한 격으로 전통 예술(창, 기악, 춤 등)은 물론이고 예의범절에서 서도까지 학습시켰던 예인 양성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예인 김수악과의 만남’에서 참가자들에게 진주검무를 가르치는 김태린 원장.

진주오광대와 진주교방굿거리춤 등 진주 전통춤의 특색을 김 원장은 “지배계층의 양반문화와 피지배계층의 민중문화가 온전히 전승되면서 갈등과 대립 속에서도 화해와 상생의 문화를 형성해 왔다”라고 소개합니다.

 

▲ ‘예인 김수악과의 만남’에서 참가자들이 진주검무를 배우는 모습.

모임 끝자락에 모두 칼을 들고 칼춤을 추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된 <진주검무>입니다. 진주검무는 전복(戰服)을 입고 양편으로 마주 보고 8명이 춥니다. 방석돌이, 연풍대, 숙은사위, 앉은사위 등이 다른 검무와 다른 독특한 춤사위라고 합니다. 백동(白銅)으로 만들어진 꺾이지 않은 칼을 손목을 많이 돌려쓰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 ‘예인 김수악과의 만남’에서 참가자들이 진주검무를 배우는 모습.

“예능이라는 게 일일이 가르쳐 준다고 됩니까. ‘어’하면 창이고 ‘뚱땅’하면 가야금이며 손 치켜들면 춤이지. 예부터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중에서)

 

▲ 2월 17일 생활정치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 진주역사문화 공부 소모임인 <아는 만큼> 주최로 ‘예인 김수악과의 만남’이 진주 평거동 서부농협 평거지점 6층 나래춤예술원에서 열렸다. 이날 참가자들의 기념 사진.

선생의 자부심과 자긍심이 배여 나온 말씀입니다. 진주(晉州) 속 진주(珍珠) 같은 분을 이제야 아는 게 미안하고 죄송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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