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되지 않은' 개별의원 공약 완료율은 공개하고, ‘검증된’ 공약 완료율은 공개하지 않는다.

실망스럽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얘기다. 지난 12일 해프닝이 있었다. 20대 국회의원 공약이행자체평가표에 따라 지역의원 공약완료율 기사를 썼지만, 곧 기사를 내렸다. 기자에게는 의미가 적지 않은 일이었다. 

발단은 이랬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이하 '매니페스토') 누리집에 오른 진주지역 국회의원 공약자체평가표를 받아 기사를 작성한 뒤, 2시간쯤 지나 연락을 받았다. 매니페스토가 올린 자료에 문제가 있다는 자유한국당 소속 시의원의 전화였다.

국회의원실 스스로 작성해 제출한 자료에 무슨 문제가 있겠냐고 생각했지만, 앉았던 자리를 박차고 나와 확인하니 문제가 있어 보였다. 완료된 공약이 추진 중인 공약으로 분류된 것 같았다. 시의원의 지적은 합당해보였다. 우선 기사를 내렸다.

13일 매니페스토 측에 연락해 자료에 오류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매니페스토 관계자는 의원실과 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의원실 자료를 받아 공약이행자체평가표를 누리집에 다시 올리겠다고 덧붙였다. 실수가 있었던 셈.

▲ 김순종 기자

문제는 매니페스토가 누리집에 올리는 자료는 말 그대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의원실이 보낸 ‘날 것 그대로’의 공약이행자체평가표라는 점에 있다. 매니페스토는 공약이행자체평가표라는 이름하에 이 자료를 누리집에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개별의원의 공약 완료율을 검증한 자료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매니페스토 측은 전국/광역단위로 의원들의 공약 완료율은 검증 후 발표하고 있지만, 개별 의원의 검증된 공약 완료율 자료는 공개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말은 공약 완료율 0%인 국회의원이 자신의 공약 완료율이 100%라고 쓴 문건을 보내더라도 이를 ‘공약이행자체평가표’라는 이름 아래 누리집에 등재한다는 것이다. 반면 검증된 개별의원의 공약이행평가표는 공개되지 않는다.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적지 않다.

'매니페스토'란 제시하는 공약의 목표와 이행 가능성, 예산 확보 등의 근거가 구체적으로 제시된 걸 말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공약의 적실성, 투명성, 이행가능성, 이행률 등을 조사해 공표하는 단체이다. 매니페스토의 의미를 실현하는 단체다.

한데 개별 의원이 보낸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은 공개하면서도, 검증된 공약 이행률은 공개하지 않는다니 이는 매니페스토에 거는 시민의 기대를 배반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광역단위별로 검증된 내역를 공개하지만, 개별적인 것이 아닌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매니페스토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시민단체는 적은 예산과 인력 속에 과도하게 많은 일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의원들에게 자료를 제출받지 않고 선거공약부터 시작해 이행률을 조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다음 선거부터 매니페스토가 개별 의원들의 공약을 보다 엄중히 검증하고, 이 내용을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 행적을 설명하고, 미래 행동의 동기를 밝히는 공적선언’이란 매니페스토의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검증된’ 공약 완료율은 공개하고, ‘검증되지 않은’ 공약 완료율은 비공개하는 것이 합당하다. 상식적인 시민이라면 누구든 이같은 주장에 쉬이 공감할 것이다. 매니페스토가 이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어 유감이다. 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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