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참 · 야식 · 쓰레기

#밤참

단풍이 지고 겨울이 자리를 잡으면 찬바람과 함께 밤 골목을 누비는 외침이 있었다. “찹쌀떡!” “메밀묵!” 동지섣달 겨울밤은 길기도 하여 외치는 소리 한 번만으로 하룻밤이 지나가는 게 아니다. 같은 목소리도 있고, 다른 목소리도 있다. 소년은 입에 침이 고인다. 혹시나 싶어 어머니 눈치를 살핀다. 빠듯한 살림이라 좀처럼 줌치(주머니)가 열리지 않는다. 며칠 눈치를 보던 소년은 어머니에게 보채기 시작한다. 어머니라고 그 애틋함을 모를 리 있을까? 그래도 그 외침을 불러 세우지 못한다.

눈치 살피기와 보채기가 얼마나 거듭되었을까? 드디어 어머니는 봉창을 열고 외침을 불러 세운다. 그러면 소년은 쟁반을 들고 대문간으로 나가고, 어머니는 양푼을 들고 장독대로 향한다. 찹쌀떡과 동치미가 어우러지는 밤이다. 둘러앉은 식구들 얼굴에는 소박한 행복이 넘친다. 모자라는 넉넉함으로 방안은 훈훈해진다. 개수가 잘 안 맞으면 더러 신경전도 펼쳤으리라. 분배가 헝클어지면 누군가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정은 깊어간다.

연중행사이기도 한 밤참을 나누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을 터이다. 쟁반에도 남은 게 없고 양푼에도 물기는 말라버렸다. 마무리가 아주 말끔하고 깔끔하다. 뒤처리할 게 하나도 없다.

 

▲ 이영균 녹색당원

#야식

이제는 겨울이 와도 골목을 누비며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전화로 야식을 시켜서 먹는다. 치킨, 피자, 족발들이다.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배달 전단지에는 그 외에도 안 되는 게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어머니의 줌치는 지갑으로 바뀐 지 오래고, 지갑에서 나온 현금보다는 카드가 대세를 이루는 오늘날이다.

양념 반 프라이드 반으로 치킨을 시켜 비닐봉지를 열면 풍기는 냄새가 감동 그 자체다, 잠깐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치킨과 냄새 만 배달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오는 것이 너무 많다. 우선 치킨을 모신 종이 상자가 있다. 반반은 각각 은박지에 따로 담겨 있다. 물티슈도 포장돼 있다. 곁들인 찬도 두어 종류 일회용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다. 나무젓가락이 빠질 수 없다. 음료수는 덤인가? 쿠폰이나 명함도 들어 있다. 밤참을 위한 쟁반과 양푼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먹는 동안에도 계속 화장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한바탕 야식잔치는 끝이 났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을 여기에 적용하게 될 줄이야! 그런대로 정돈된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마치고 보니 너무 어수선하다. 크고 작은 비닐과 플라스틱 조각이 뒹굴고 있다. 손가락을 닦고 입가를 문지른 화장지는 또 얼마나 많은가? 먹는 즐거움은 잠깐이다. 뒤처리가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이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분리수거는 어떻게 해야 하지? 도대체 쓰레기가 몇 종류야? 종이, 비닐, 페트병, 화장지, 은박지, 나무 …….

 

#쓰레기

쓰레기,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애물단지가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할까? 쓰레기 앞에 붙는 말이 참 많다. 음식물 쓰레기, 1회용품 쓰레기, 플라스틱 쓰레기, 전자제품 쓰레기, 농업 쓰레기, 공업 쓰레기, 해양 쓰레기, 소각 쓰레기, 매립 쓰레기 등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폐기물이 되면 앞에 붙을 수 있는 말이 또 생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산업 폐기물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무서운 것이 있으니 핵발전 폐기물! 아직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생길까? 신문에서는 “쓰레기 대란 시대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하루 평균 발생량은 41만톤으로, 2000년에 비해 1.8배 늘었다.”(매일신문, 2019-09-30)고 한다.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상상할 수가 없다. 지구가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양도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버리고 있는 쓰레기가 엄청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이 없다. 그러니 ‘삶은 쓰레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문제는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그 해결책을 찾는 일이다. 각자가 나서서 쓰레기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게 불변의 정답이다. 그러나 우리 생활방식의 변화는 이와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개인의 인식과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공공기관에서부터 쓰레기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작년 창원시 의회에서는 ‘창원시 공공기관 1회용품 사용제한 조례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창원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그 대상으로 하는 법률이 생겨야 쓰레기 줄이기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어떤 이들은 ‘쓰레기 교육’을 제안하기도 한다. 재활용 선별장, 쓰레기 소각장, 쓰레기 집하장들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 양은 얼마나 되는지 영상으로 보여주자는 것이다. 각종 행사 첫머리에 영상으로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시간을 갖자는 게 제안 내용이다.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잠깐이라도 함께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그것이 한두 번, 나아가 여러 차례가 거듭되면 효과는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밤참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야식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말이 바뀌면서 생활방식도 달라졌다. 밤참은 행사였지만 야식은 습관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습관처럼 쓰레기를 많이 만들고 있다. 여기저기 쓰레기가 쌓이고 있다. 풍요라는 말로 만족할 일이 아니다. 지구 자원을 풍요롭게 쓰기만 하고 그 뒤처리를 올바르게 하지 않는다면 이 풍요는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게 확실하다. 풍요로 인한 재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 가면 재앙은 반드시 들이닥친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여 없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생각대로 산다는 말은 생각을 실천하라는 말이다.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하지 않고 지금과 같이 쓰레기를 만들고 쌓는다면 재앙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그 재앙은 누구의 탓이며 누구의 몫이 될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밤참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야식에서 쓰레기를 뺀 밤참을 즐기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을 사는 우리는 빌린 본전을 까먹지 말고 그 이자만 가지고 살다가 그 본전만큼은 고스란히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본전론’이다. 쓰레기로 넘치는 풍요는 본전을 까먹는 일이면서 본전을 삭이는 짓이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