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이명이 심하다. 왼쪽 귓속에서 얄궂은 소리가 난다. 어찌 들으면 골인지점에 이른 마라토너의 거친 숨소리 같기도 하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모래톱에 밀려드는 파도소리 같기도 하다.

한밤중 잠에서 깨었을 때 들리기도 하고, 이웃집 사랑방에 모여 민화투를 할 때도 들린다. 어떤 땐 크게, 어떤 땐 낮게, 또 어떤 땐 낮았다 높았다를 반복하기도 한다. 쇳소리처럼 크게 자극적이지 않고, 귀뚜라미 소리나 말매미 소리처럼 요란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한부터 사흘 동안 내린 비는 개울을 채웠다. 한겨울에 개울물 불어 흐르는 소리가 들리다니. 바람은 또한 얼마나 포근하던가. 아내는 우산을 들고 들길을 산책하면서 하마 쑥이 났을 거라며 밭두렁을 기웃거리기까지 했다.

▲ 김석봉 농부

빗줄기가 잦아들면서 몰아치는 폭풍.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한 기세로 거친 바람은 산천을 휩쓸었다. 팔뚝만한 감나무가지가 부러져 골목에 나뒹굴고, 플라스틱 고양이 밥그릇은 지붕을 넘어 뒷집 텃밭에 내동댕이쳐졌다. 우웅 우웅 산골짜기가 울음을 삼키고, 때까치 무리는 대숲으로 몸을 숨겼다.

이명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읍내에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없었다. 이비인후과도 진료한다는 오래된 의원을 찾아들었다. 진료실에서 늙은 의사는 팔뚝에 혈압계를 감아 혈압측정으로 이명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내놓았다. 헛웃음이 났다.

일주일치 약을 받아들었다. 필경 안정제일 거였다. 이명에 대해 여기저기 알아보니 특별한 치료법이 없었고, 약물투여는 가장 하급 조치였다. 잠이라도 빨리 들게 해 소리를 잊게 하는 정도의 처방이 분명할 거였다. 아침저녁으로 먹으라는 약을 하루 내내 먹지 않았다.

나이 들어서 나타난 현상이겠거니 생각했다. 지난해 늦은 여름 처음 이명이 생기면서부터 지금껏 특별이 신경 쓸 일도 없었으니까. 고구마밭 산돼지와의 갈등도 나름 즐기면서 넘겼고, 아들놈 예술제백일장 당선작 바꿔치기 사건도 늘 그랬듯 그러려니 하면서 건너왔으니까.

늦은 가을 김장을 끝으로 지금껏 푹 쉬어 몸 상태도 좋으니까. 올해는 그 귀찮고 힘든 한과 만드는 일도 접었고, 화목도 많이 쟁여두었으니까. 이 이명이 나이 들어서 나타난 현상이라면 올핸 내 몸에 또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이빨이 한두 개 주저앉는 것은 아닐까. 욱신거리는 손가락이 비틀어지지나 않을까.

“소리 좀 높여.” 아내는 텔레비전을 켜면 소리를 들릴락 말락 낮춘다. “당신께 방해 될까봐. 높여도 괜찮아요?” “이명엔 적당한 소리가 있으면 좋다고 하네.” “그 참, 희한한 병도 다 있네.”

주변이 너무 고요한 것은 이명에 좋지 않다고 했다. 약간의 소음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게 다른 소리로 귓속 소리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치료법이었다.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하고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명은 병이 아니라고 하니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이제부턴 어떤 소리든 소리를 들어야할 처지가 되었다. 쓴 소리든 단 소리든 평정심으로 들어야할 처지가 되었다. 쓴 소리에 돌아앉고 단 소리에 마주앉던 이기적인 젊은 날보다야 지금 이 처지가 얼마나 아름다우냐.

결승점에 가까워진 마라토너처럼 내 인생의 위치에서 들어야할 마지막 거친 숨소리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할 소리다. 내 인생이 솨아 솨아 몰려와 모래톱에 스며드는 파도와 같다면 굳이 이명도 아니지 않느냐. 아내는 읍내 한의원에 간다고 하니 날이 밝으면 소리 내어 글을 좀 읽어야겠다. 그렇게 귓속 소리도 차차 잊히겠지.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