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모의 아이가 방학을 했습니다. 이제 초등학생인 아이는 학교 대신 아이를 안전하게 돌봐줄 더 많은 학원을 이어가며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도 마찬가집니다. 좀 더 컸기 때문에 조금 자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대학이라는 문턱이 좀 더 가까운 상황에서 방학이어도 학교를 나가거나, 성적을 바짝 올릴 수 있는 ‘비기’를 전해 줄 학원을 찾아 다닙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교육의 영역은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유무형의 교육자원들이 순환체계를 이루며, 서로 공생하거나 기생하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생태계는 그 관계들이 건강할 때, 교육이 인간들의 유의미한 성장을 만들어내며 그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육생태계를 이루는 교육자원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대표적으로 학교를 중심으로 학생, 교원, 학부모, 관계된 공공기관의 범위 안에 존재했습니다. 과거의 학생들이 전국 공통의 국정 교과서를 통해 모두 같은 내용을 배우고, 그것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를 평가 받고 대학까지 가던 시절이 그러했습니다.

▲ 정헌민 진주교육공동체 결 운영위원/수곡초 교사

그러나 최근 들어 교육생태계는 학교의 담을 넘어 지역과 마을로 확장되고, 지역에 존재하는 모든 유무형의 자원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를 넘어 AI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은 개인이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삶과 관련된 문제를 탐색하여 과제를 찾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내 주변의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졌습니다. 그것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절실한 능력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학입시나 취업의 관문도 예전과 같은 과정을 버리고 새롭게 바뀌고 있습니다. 또한 고등학교 후 바로 대학에 못 들어가면 실패자로 낙인찍히던 시절도 가고, 나이에 상관없이 대학보다 더 많은 배울 거리가 있는 다양한 배움터를 직접 찾아 가는 능동적인 학습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은 단지 국한된 영역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오래된 말이 전하듯, 그 아이들이 접하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지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교육생태계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지역의 문화가 그 교육생태계의 건강함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몇 년 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것도 지역의 공동체가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학원을 전전하지 않더라도 안전하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교육생태계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진주의 교육생태계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단지 한 초등 학부모의 눈으로 바라보더라도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른 아침 등교해서 늦은 저녁이나 밤까지 학원으로 정주행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익숙합니다.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보다는 미래의 (그것도 불확실한) 행복을 보장받기 위해 고단한 길을 걷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그러다가 잠시 쉬기라도 하면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학부모와 자녀는 갈등하며, 쉼 없이 눈치를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런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이용하며 돈벌이를 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아직도 교육을 ‘입시’와 ‘취업’, ‘금전적으로 안정된 삶’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육생태계의 범위도 학교와 학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마저도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를 탈출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게 우리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진주에도 건강한 교육생태계를 만들어 나가자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우리마을에도 이런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0월부터 12월까지 5차례, 2주 간격으로 우리 지역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모셔서 그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작은 강연회를 가졌습니다. 진주의 교육생태계가 건강해지려면, 우선은 좋은 사람들이 좋은 관계를 많이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작은 학교 교장선생님, 연극 배우, 예술 공동체 활동가, 마을장터 운영자, 마을학교 교사. 모두 진주의 소중한 교육자원이며 우리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렇게 다섯 분을 모셔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와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 그 외에도 잡다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 참가하는 자리였지만, 서로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할 일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연대해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도 하는 작지만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진주같이 오래된 지역은 혈연, 지연, 학연이 얽힌 사람들이 서로 끈끈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의 방향과 세기, 긍․부정적인 정도 등이 그 지역 문화의 향방을 결정짓고, 또 그것이 직접적으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성장환경이자 교육환경이 되어왔습니다. 그래서 바꾸기 쉽지 않습니다. 오래되어서 더 깊게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사회적․지역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교육을 매개로 관계를 맺고 더 좋은 일들을 많이 벌여나간다면, 조금씩 우리 지역의 문화와 교육환경을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이 일회적인 수단이 아니라 인간답게 행복한 삶을 위한 영속적인 과정이 될 수 있는,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진주의 교육생태계가 만들어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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