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같이 생활하며 많은 것을 나누게 되면, 서로 어울리기가 쉬워지잖아요? 멀리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가까이서 겪게 되면 절로 알아차리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짐작으로도 납득이 되는 것처럼요. 그렇지만 요즘은 남들과 섞여서 평등하게 일하는 자리가 그다지 많지 않으니 서로를 깊이 헤아리며 닮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와는 달리 바다를 낀 우리 지역에서는 겨울철이면 곳곳에서 공동체로 엮여 같이 굴을 까곤 합니다. 하여 이 시기에는 때에 맞춰 점심을 함께 먹습니다. 집에서 찬을 해오거나 식전에 준비한 찬으로 밥을 먹는데 매번 집보다 낫다는 칭송의 말로 밥맛을 돋웁니다.

▲ 구점숙 씨

아직 인심 좋은 동네라서 어떤 날은 인근 어장에서 잡은 생선을 툭 던져주고 가는 아저씨도 있고, 바닷가에서 뜯은 미역이나 톳나물을 주고 가는 아주머니들도 계십니다. 그러면 솜씨 좋은 맏언니가 눈 깜짝할 새에 반찬을 한두 가지 뚝딱 만들어 내놓습니다. 그런 날이면 때맞춰 들어서는 손님들께도 밥을 먹고 가라고 권합니다. 대개는 사양하는데 이물 없는 분들은 넙죽 밥그릇을 차지하곤 합니다.

며칠 전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김장철이나 장 담그는 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예의 그 옹기장수가 작업장으로 들어섰고, 때마침 밥을 푸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밥을 조금 적게 한 날이라 신경이 쓰였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밥 먹고 가라고 권했습니다. 모자라는 듯한 식사를 마치려는 즈음 한 회원이, 오늘 누가 밥을 이리 적게 했노? 라는 금기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아니라고, 나는 배가 부르다고 허리를 쿡쿡 찌르며 눈치를 살피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길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수습을 하여 식사자리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혹여 같이 자리한 사람이 무안할까봐 애써 배부름을 강조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어찌나 감동이었던지요.

이는 하루아침에 몸에 배인 것이 아닌, 참으로 오랫동안 곁의 사람을 챙기는 배려가 굳은살처럼 박힌 태도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금기의 말을 하고서 얼른 수습할 수 있는 그 태도도 꽤나 성숙한 모습이지요. 이는 특별히 마음이 고운 사람들만 모여서도 아닐 것입니다. 같이 일을 하고 서로의 처지를 잘 알기에 몸에 배인 태도인 것이지요.

언젠가 국제회의장에서 아프리카의 여성 지도자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국제 농민조직의 대표자가 되어 그들의 문화대로 무릎을 꿇고는 수락연설을 하는데, 우리는 같이 일하고 생활하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같이 토론하고 같이 실천하며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별스런 말도 아닌데 가슴에 쿵 와 닿았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 속에 섞여 살아온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거기에다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는 여성농민들은 한층 더 연대와 배려의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비슷한 마음이 때와 장소의 가림 없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런 재미가 겨울철의 고된 노동을 씻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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