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새는 언뜻 보기에는 편하고 자유롭다. 하지만 중력을 이기는 양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부단한 날갯짓으로 추진력을 내야만 한다. 뼛속을 비워서 몸을 가볍게 하고 온 몸을 덮은 비늘을 가벼운 깃털로 변환시키는 유전자적인 변형 없이는 육지 동물이 그렇게 하늘을 비행하는 조류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들도 쉽고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부력을 거스르는 체내 활동과 조류를 가르는 지느러미의 바쁜 움직임이 필요하다. 새가 날갯짓을 멈추면 일순간 활강만 하다 땅으로 곤두박질 칠 것이다. 물고기가 꼬리지느러미로 추진력을 내지 않는다면 부력을 못 이겨 금세 물위로 떠오를 것이다.

▲ 서성룡 편집장

우리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식들 교육시키며 하루와 한 달, 1년을 ‘버티며’ 살아가는 모습은 새의 힘겨운 날갯짓이나 물고기의 유영과 닮았다. 다만 새가 비행하는 매질 공기와 물고기가 헤엄치는 매질 물은 모두 자연물이지만, 사람이 노동하는 환경인 ‘경제 시스템’, 흔히 ‘사회’라고 불리는 이것은 사람이 만든 인공물이라는 게 다른 점이다.

우리사회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 경제 시스템이 공기나 물처럼 자연적인 것이며 영속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과는 달리 이 시스템은 물론 자연환경인 공기와 물조차도 영속한 것은 없다. 초기 지구환경 속 공기와 물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고, 당시의 식생은 그 환경에 적절히 적응한 결과물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상식이다. 다만 공기와 물처럼 한번 고정되면 적어도 수십억 년 변함없이 지속되는 자연환경과는 달리 인공물인 사회 경제시스템은 그 생명력이 매우 짧다.

만약 중력이 고정되지 않고 점점 더 강해진다면, 대부분의 새들은 중력을 거스르는 양력을 만들어내지 못해 땅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물의 밀도가 1보다 더 높아진다면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허연 배를 보이며 물 위로 떠오르고 말 것이다.

우리 경제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중력과 밀도는 공기와 물에 비해 너무나 빨리 변한다. 그리고 그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노동자들은 사력을 다해 날갯짓을 하고 꼬리지느러미를 더 바삐 움직이지만 그럴수록 사회적 중력과 물 밀도는 더 빠르고 강한 속도로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털어간다.

그러므로 지금은 너무나 많은 노동자들이 추락하고 있다. ‘추락’이란 말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적인 말이다. 경향신문 인터렉티브가 보여준 ‘정부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해 2,142명의 노동자가 사망을 했다. 경향신문은 2018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노동현장에서 사망한 1,692명의 신원정보와 사고경위를 모두 기록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공기와 물처럼 안정적이라는 우리 사회의 경제시스템은 산재 사망자만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생활고’에 못 이겨 스스로 날갯짓을 멈추고 땅으로 떨어지는 수많은 자살자도 만들어낸다. 학교나 직장 문제로 삶의 의욕을 상실한 젊은이나 고독사하는 노인, 가족 집단자살이라는 형태로 이 ‘시스템’을 떠난 사람이 2018년 한해 1만3,670명이었다(한국자살예방센터 통계). 그들은 모두 한 때 이 사회에서 힘껏 유영하던 노동자들이었고, 날갯짓을 할 노동자가 될 사람들이었다.

자연환경의 중력과 물 밀도처럼 노동자들의 삶을 압박하고 땅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론 자본의 힘이다. 자연계의 중력과 물 밀도는 인간계의 소비재와 공공재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먹고 입고 사는 문제, 그리고 2세를 키워 이 사회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일, 곧 의식주와 교육 문제는 소비재인 동시에 공공재로 보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이미 이 분야들은 모두 자본의 이윤 사냥터로 전락한지 오래다. 주택 분양가를 공개하고, 전세가와 매매가를 제한하고, 토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거꾸로 가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 정부는 도로와 철도,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분야에까지 민간자본 진출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그에 비해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문제는 속도를 늦추거나 뒷걸음질 치고 있다.

당장 떨어져 죽거나 자살하는 노동자들의 사망통계 수치보다는 추락하는 경제지표와 성장률 수치가 대통령과 정부관료들 눈엔 더 시급한 불로 보이는 모양이다.

앞서 나는 공기와 물이라는 자연환경 시스템과는 달리 사회의 경제시스템은 인간이 만들었다고 했지만, 순수하게 인간의 힘으로 창조한 것은 아니다. 고대에서 중세와 자본주의 시대까지 먹고 마시고 생산하고 교환하는 과정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모양으로 발전해 온 측면이 크다. 앞으로 과연 인간의 이성과 의지로 이 시스템을 뜯어고치거나 재창조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인지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매년 수만 명이 스스로 떨어져 죽거나 수천명이 일하는 도중에 죽어야 하는 이 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돼서도 안되고 지속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21세기의 5분의1이 막 시작되는 이 시점에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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