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베드로, 마가, 바울 네 명의 사도.

폭 74cm, 길이 2m인 좁고 긴 두 개의 패널에 네 명의 사도(Apostle)들이 그려져 있다. 각 패널에 각각 두 명씩 자리하고 있는데, 전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 보기에 따라 매우 비좁게 느껴진다. 알 수 없는 미래처럼 어두운 배경을 뒤로하고 서 있는 요한(John), 베드로(Peter), 마가(Mark) 그리고 바울(Paul)이 바로 네 명의 사도다.

▲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네 명의 사도들은 각자가 들고 있는 물건과 표정을 통해 자신이 누구임을 말하고 있다. 자 그러면 자세히 한 명씩 보도록 하자.

좌측에 있는 붉은색 망토를 걸치고 펼친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요한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려 할 때, 자신의 육친(마리아)을 부탁할 만큼 믿음직한 제자이며(그는 끝까지 성모를 지켰다 한다), 동시에 부활한 예수를 가장 먼저 알아본 제자이기도 하다. 그의 상징물은 이 그림에서는 책이다. 하지만 여러 종파에서 가장 많이 요한의 상징물로 여겨지는 것은 성배다. 혹은 성배 속에 뱀의 형상을 띤 동물이 들어있기도 한다.

요한의 뒤에 머리를 떨구고 있는 텁수룩한 수염의 대머리 남자는 베드로다.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시몬(베드로의 본래 이름)에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8-22)하는 예수의 말씀에 따라 예수의 제자가 되었고, 그 뒤 신앙고백을 통해 반석(磐石)을 뜻하는 베드로가 됐다. 예수의 머리 제자로서 그의 상징물은 바로 이 그림처럼 천국의 열쇠다.

 

▲ Vier Apostel(Alberecht Duerer)

우측에는 베드로와 비슷한 외모를 지녔지만 흰색 망토를 걸친 이가 바로 바울이다. 파울로스로 불리기도 하는 바울을 사도(Apostle - 어떤 임무를 이룩하기 위해 누군가를 앞에 보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사도'란 기독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기독교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공동체의 지도자 역할을 맡긴 사람을 뜻한다.)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후대 종파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이견을 보인다. 왜냐하면 바울은 실제 예수로부터 제자로 인정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성격은 매우 거칠고 직설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바울은 손에 검과 서한집을 들고 있는데, 이것이 바울의 상징물이다.

그 뒤로 머리만 보이는 남자는 마가(Mark)이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베드로가 아들처럼 아끼는 제자였다. 그의 유대식 이름은 요한(히브리어 발음으로는 요하난, 혹은 요나)이고, 마가는 로마식 이름(로마의 아주 흔한 이름인 마커스, 마카베오, 마르코)으로 ‘망치’라는 뜻이며, 아마 이방 전도를 위해 그렇게 고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두루마리로 말려있는 종이가 그의 상징물이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마가는 사도의 제자일 뿐이지만 일반적인 의미로 사도의 범주에 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예수를 닮은 자화상으로 유명한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년 - 1528년)다. 뒤러는 알프스 이북 르네상스 회화의 최고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그의 순수 회화는 판화 작업과 비교했을 때 다소 부족한 부분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부분이 독일 르네상스의 거장 자리를 위협할만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피나코테크에 소장된 네 명의 사도들을 묘사하고 있는 이 두 폭의 길고 좁은 그림은 만년의 뒤러가 남긴 걸작으로, 서양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위대한 작품들의 반열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뒤러는 사람의 실제 키 보다 큰 나무 패널 위에 사도들의 전신을 그렸다. 땅을 짚고 서 있지만, 실제로 이들이 서 있는 공간이 어디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바닥의 희미한 회백색이 반사되어 화면을 지배할 뿐이다. 이들 뒤에는 검은 어둠만 깔려 있고, 그림을 보고 있는 방향에서 강한 빛이 이 네 명의 사도를 정면으로 비치고 있다.

그 빛은 무거운 마티에르(질감 혹은 양감으로 번역)의 망토 위에 반사되어 붉고 희고 푸른색으로 변하여 우리의 시각을 자극한다. 예수를 따랐던 네 명의 제자들은 각각의 상징물을 들고 어둠 속에서 정면을 향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좁은 공간에 밀집해 있는 네 명의 사도들은 서로 닿을 듯이 가까이 서서 동일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들 사이의 그 어떤 소통도 없이 각자의 일에 몰두해 있다. 이것은 네 명의 사도에 대한 화가 뒤러의 의견일 것이다. 각 각의 인물에 대한 뒤러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펼친 책을 읽고 있는 요한, 고개를 떨궈 사색에 빠진 베드로, 우리를 매섭게 응시하고 있는 바울, 그리고 눈을 돌려 멀리 허공에 시선을 던지고 있는 마가. 말없이 말이 통하는 종교적 소통을 표현한 중세 제단화에 자주 등장하는 성스러운 대화라는 뜻의 "사크라 콘베르자치오네 Sacra Conversazione(영어 Secret Conversation)"의 모티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뒤러가 그리고 있는 네 명의 사도들 얼굴에는 각각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책을 펼쳐 미동도 없이 읽기에 빠져있는 요한의 차분함, 호전적으로 거침없는 강한 인상을 내뿜고 있는 바울. 예수 사후 최초의 복음서를 저술한 마가의 표정, 예수가 믿었던 단단한 바위 같은 성품의 베드로가 그림에서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들이 입고 있는 망토의 표면 처리에서도 뒤러의 회화가 서양 미술사의 흐름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큼직하여 움푹 들어간 골을 형성하고 있는 바울의 옷을 보면 아직은 고딕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인물 개개인의 개별적인 인상과 정확한 인체의 비율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르네상스의 영향이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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