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신의 단디시론] 바둑 이야기

홍창신 칼럼니스트l승인2019.12.27l수정2019.12.2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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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문’이라는 검약한 칭호로 날만 새면 대통령을 조져대도 누구 하나 잡혀가거나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말짱한 것이 요새 세상이다. 언감생심 대통령을 마른 명태 두드리듯 사사건건 다듬이질이라니 이승만 이래 처참한 통제의 시절을 보아온 터로선 격세지감을 느낀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집계해 매년 발표하는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가 2019년엔 180개국 중 41위란다. 이 순위는 대만과 이태리를 발밑에 두고 있으며 일본 미국보다는 한참이나 높은 지체다. 국제 시세로 시장가격이 이리 격상됐다 하니 이 나라 언론이란 것이 그 지위에 버금가는 처신을 하느냐는 의문과는 별도로 휘파람이 나온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전두환 이전의 시절만 해도 신문의 영향력은 단연 ‘갑’이었다. ‘조선’ ‘동아’조차도 정신 있는 기자들이 진 치고 있는 각광받는 신문이었다. 인터넷이란 어마어마한 물건이 배태조차 못 하던 시절이니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눈짐작이라도 할 길이라곤 신문밖엔 없었다. 헤드라인을 주로 대통령 찬가나 간첩단 사건이 차지하는 와중에 더러 뼈 돋친 기자들이 검열의 눈길을 피해 엮어내는 알싸하게 가시 돋친 문장을 읽는 맛이 그 시절의 낙이었다. 김성환의 ‘고바우’나 안의섭의 ‘두꺼비’ 정운경의 ‘왈순아지매’ 등 내리닫이로 그려진 네 컷짜리 만평에는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골계가 있었고 이병주 홍성유 최인호 등 빼어난 글쟁이들의 연재가 신문을 기다리는 맛이었다. 거기 더해 내겐 한 가지 재미가 또 있었으니 격자무늬를 흑백으로 메운 ‘기보’였다. 조남철 선생의 구수한 해설부터 조치훈 조훈현 서봉수로 이어지는 고수들의 열전은 그야말로 흥미 만점의 신세계였다.

이세돌의 은퇴 기념 대국을 보며 감회가 새롭다. 신문 기보라는 고전적 바둑 누리에서 컴퓨터가 장고하고 착점하는 기계 바둑의 세계라니! 눈알이 핑핑 돌 정도의 세태변화다. 구글에서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는 한국기원 공인 9단이다. 그의 공식 전적은 13전 12승 1패. 기보를 남긴 대국 전체를 포함하면 총 74전 73승 오직 인간 ‘이세돌’에게 쓰라린 1패를 안고 ‘알 9단’은 은퇴했다. 등장부터 퇴장까지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인류가 낳은 다양한 아날로그 게임 중에 가장 높은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4.000년 역사의 게임인 ‘바둑’을 컴퓨터가 이길 것이란 상상은 꿈에도 못 했다. 도합 361간으로 구획된 반상에서 벌어지는 천변만화하는 바둑 수의 변화는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같은 판이 없을 정도로 무한한 변수의 세계다. 컴퓨터가 제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입력한다 해도 생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인지적 기능을 작동시키며 살아남은 인간 고유의 능력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1997년에 컴퓨터 ‘디프 블루’가 당시 세계 체스 챔피언이던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다 하나 그건 서양‘장기’ 이야기일 뿐 바둑의 세계란 차원이 다른 품계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실제로 초기의 컴퓨터 바둑은 포석 단계에서는 그럴듯했으나 전투에 들어가면 평범한 수에도 택도 없는 대응을 하기 일쑤인 멍청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기계를 인간처럼 사고하게 만드는 ‘인공지능’이 컴퓨터의 획기적 성능향상과 맞물리며 생긴 변화는 놀라웠다. 실용적 응용의 싹수가 보이면서 투자가 일어나고 마침내 글로벌 기업인 구글에서 ‘알파고’를 통한 실용화 이전 단계의 이벤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전 소식을 듣고 나는 이세돌이 완승할 것을 단언했다. 바둑에서의 ‘경우의 수’란 지구만 한 크기의 그릇에 모래알을 가득 담는 것에 비유할 정도로 많은 변수가 있다. 더구나 이세돌은 이기기만을 위해 곧이곧대로 돌을 놓는 기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알파고가 아니라 “퍼지 즈그 할배가 와도 안 된다”라 말할 정도로 내 확신의 근거는 여물었다. 그러나 이세돌은 내리 세 판을 졌다. 네 판째 알파고를 이겼을 때 이세돌이 활짝 웃으며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 후 이세돌은 은퇴를 결심했고 엊그제 국산 컴퓨터 ‘한돌’과 마지막 대국을 벌인 것이다.

2점을 먼저 놓고 두는 바둑이다. 천하의 이세돌이 흑으로 접바둑이라니 놀라운 광경이었다. 어차피 당도한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당대 최고수의 너른 품이 느껴진다. 코앞에 2020년이 섰다. 새날에 운명은 우릴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부득탐승(不得貪勝) ‘너무 이기려고만 들지 말라’ 위기십결(圍棋十訣)이 주는 충고다.

 


홍창신 칼럼니스트  ggigdag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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