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장보러 가서 삼겹살 만원어치를 샀네.

삼겹살 싸먹으려 채소가게 들러 상추와 깻잎도 골랐네.

까만 비닐 봉지 한가득 상추 한 단이 이천원, 깻잎 두 단이 천원.

긴 가뭄과 마른 장마 끝에 채소값이 금값이네 은값이네 하더니,

꼴랑 그 돈이 과자 한봉 값도 안되는 일이천원이더라.

 

집에 와서 씻는다고 풀어 보니 깻잎 한 단이 서른여섯 장이라.

아픈 몸 이끌고 깻잎 농사 짓던 어머니가 생각나.

서른여섯 번의 피로와 고통이, 침침한 눈 비비며 골라냈을 그 지루한 시간들이

한 장 두 장 쌓여, 붉은 나일론 끈에 질끈 동여 내다 팔리는 가격 오백 원.

지난 겨울 논에 두둑 만들어 들깨 씨 뿌리고,

물 주고 비료 주고 비닐 덮어 싹 틔우고,

함께 올라온 잡초들 하나 하나 뽑아주고, 너무 빼곡한 깻잎순들 솎아내고,

두세달 길러낸 깻잎 하우스에 밤엔 전깃불 밝혀 꽃피는 걸 막아내고,

마침내 쌈 싸먹기 좋도록 손바닥만 하게 자란 들깨잎들.

그러나 그 긴 시간들,

마른 논 뚫고 움튼 생명의 기적과 깨순을 자식처럼 돌보던 사랑과

농사일에 대한 깊은 탄식과 한숨은

오백원 짜리 깻잎단에 함께 묶이지 못했다.

 

동네 채소가게에 지불한 깻잎 서른여섯 장에 오백원.

백원은 가게 소득으로 떨어지고

백원은 포장 박스 찍어낸 농협이 떼가고

종자값 비료값 떼고나면

얼마가 어머니 땀값으로 돌아갔을까.

 

손바닥 위에 깻잎을 놓고 노릇하게 구운 삽겹살 한점을 얹는다.

구운 마늘 한 알도 막장 찍어 올린 다음

두툼하게 말은 쌈을 한가득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초록빛 까실한 깻잎 감촉이 목안을 간질이는데,

갈라져 까실까실하던 어머니 손등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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