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샘의 지리산 초록걸음] 늦가을, 백운동 계곡에 들다

참나무들의 갈색 단풍 또한 아름다웠던..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l승인2019.11.25l수정2019.11.2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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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자락에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덕천강변 산천재에서 11월 초록걸음을 시작했다. 지리산의 정신 남명 조식 선생이 말년을 보냈던 그 산천재 앞 마당엔 450여 년 전 남명이 직접 심었다는 남명매가 그 이파리를 모두 떨군 채 겨울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가을에 길동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골라온 시 한 편에 걸맞은 풍경이었다.

 

▲ 11월 초록걸음을 함께한 사람들, 산천재 앞에서(사진 = 최세현)

 

가을 / 최승자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디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드립니다

가을입디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 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 낙엽이 소폭히 쌓인 둘레길(사진 = 최세현)

산천재에서 마근담까지 약 4Km의 둘레길은 계곡을 끼고 걷는 길이긴 하지만 포장도로에 지루한 오르막길이라 둘레꾼들 사이에 평점이 아주 낮은 구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근담까지만 오르면 정말이지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마근담은 ‘막힌 담’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1994년 한농복구회라는 종교 단체가 이곳에 마근담농업대안학교를 만들면서 무소유 공동체 마을을 조성했고, 2010년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을 받아 농촌체험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유기농체험과 농촌웰빙체험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마근담에서 임도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용무림재로 향하는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백운동 계곡 지나 운리 임도까지의 이 구간은 필자가 손꼽는 명품 둘레길 중 한 곳이다.

갈색 단풍으로 물든 이 참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화려한 단풍나무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 참나무 단풍임을 누구든 절감하게 된다. 이 참나무 숲길의 중간쯤에서 만나는 용무림재는 인월에서 시작 노고단, 천왕봉, 밤머리재, 웅석봉 그리고 덕산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태극종주 코스가 지나는 고개다. 이 고개를 지나면 곧바로 백운동 계곡이 나타나는데. 백운동 계곡은 조선시대에 진주군 금만면 백운동이었다가 1914년 산청군으로 통합되면서 단성면 백운리가 되었다. 웅석봉에서 흘러 온 물들이 계곡을 따라 흘러 내려가다가 산천재 앞 덕천강으로 합류된다. 이 계곡에는 목욕을 하면 저절로 아는 것이 생긴다는 다지소와 백운폭포 오담폭포 등천대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남명 조식 선생이 즐겨 찾아 신발과 지팡이를 놓아두었다는 ‘남명선생장구지소’ 각자가 새겨진 바위도 만날 수 있다.

 

▲ 점심식사를 했던 백운동 계곡(사진 = 최세현)

남명 선생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아직도 오염되지 않고 옥빛 맑은 물이 흐르는 백운동 계곡은 옛 조상들이 즐겨 찾던 탁족처의 일순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이는 유효하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그 백운동 계곡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는 길동무들과 함께 한참동안 계곡 물소리를 배경음으로 물위에 떠있는 낙엽들이 그려내는 추상화 감상에 흠뻑 빠져들기도 했다.

아쉬운 마음을 백운동 계곡에 남겨둔 채 운리 쪽으로 다시 오후 걸음을 재촉했다. 운리 임도까지의 이 둘레길 또한 오르막이 없는 완만한 오솔길이라 떠나가는 가을을 만끽하기엔 최적의 길이었다. 하지만 이 구간엔 둘레길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장비가 다닐 수 없는 둘레길이기에 제법 먼 거리임에도 무거운 석축돌들을 손수레로 실어 나르고 인력으로 석축 쌓기 작업을 하고 있는 그 작업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긴 했지만 미안한 마음과 짠한 마음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온 몸으로 세상을 떠받치는 이런 노동이 있기에 세상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필자가 너무 나간 걸까?

 

▲ 석축을 직접 옮겨 보수공사 중인 둘레길(사진 = 최세현)

그 아름답고 호젓한 참나무 오솔길이 끝나고 만난 운리 임도, 예전에 채석장이 있어 트럭들이 드나들기 위해 만들어진 도로이지만 새롭게 길을 내지 않고 기존의 있는 길을 잇는다는 둘레길의 개설 원칙에 따라 비록 넓고 포장된 길이라도 그대로 둘레길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임도가 끝나는 그곳에 수 백 년 째 마을을 굽어 보살피며 마을을 들고 나는 주민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그 나무 아래 마을 쉼터가 있어 동네 분들의 휴식처가 되어준다. 대부분의 시골마다 있는 이런 정자나무 문화는 우리나라의 참 좋은 전통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하리라.

 

▲ (사진 = 최세현)

가을의 끝자락 이번 초록걸음에도 가족이 함께 걸은 길동무들이 여럿이었는데 그 중에도 최연소 참가자이자 단골 길동무인 5학년 민준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필자 옆에 붙어 재잘거리며 걸어준 것에 대견하고 또 고맙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둘레길, 그 길 위에서 한 해를 되돌아 볼 수 있는 12월 초록걸음을 준비하리라 다짐하면서 이번 걸음을 마무리했다.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  himnan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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