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곡 로터리에 형형색색의 조명을 넣은 분수대가 세워졌다. 명색이 화단이라 했어도 수년째 켜켜이 먼지 뒤집어쓰고 누더기처럼 웅크리고 있던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꽃나무를 걷어내고 모양지게 잔디도 새로 깔고 조경석도 본때 있게 배치했다. 게다가 두 길도 넘는 높이의 분수에서 갖가지 모양으로 물까지 내뿜으니 우중충하고 썰렁하던 주변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시내 나갈 일 있으면 역부로 봉곡동 쪽으로 차머리를 돌려 공연히 한 바퀴 로터리를 동그라미 친다. 늙숙한 이들은 흑백사진의 아련한 추상에 빠지기 맞춤하고 새파란 이들 눈길 또한 끌기에 손색이 없겠다. 모처럼 진주시가 표나고 생광스레 돈을 잘 썼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검색창에 ‘로타리’라 두드리니 ‘로타리클럽’만 지구별로 우르르 쏟아진다. ‘○○광장’ ‘회전교차로’가 행정용어로 굳혀져 가나 보다. 그러나 수십 년 입에 붙은 것이 ‘로타리’인 사람으로선 순화된 우리말이란 것이 외려 서먹하고 생경하다.

비봉산에서 내려다보면 중앙·금성·인사·봉곡으로 이름 붙은 로터리 네 개가 진주의 사지를 여물게 틀어잡은 관절과 같이 다부지게 앉아 있었다. 구부러져 흐르는 남강이 갈라놓은 탓에 ‘배건네’ ‘도동’의 세 갈래로 나뉜 진주 사람들의 모임 터인 ‘시내’는 오롯이 그 네 개의 로터리 속에 들어있다. 그 속엔 시장이 있고 극장이 있고 병원이 그리고 다방과 술청이 모여 있다.

한해 유일의 큰잔치인 개천예술제의 백미는 비봉산 아래 진주중학교에서 출발한 가장행렬 패거리가 금성 중앙로터리를 지나 인사 봉곡 네 개의 로터리를 네모지게 도는 것이었다. 꽃 같은 단장의 논개와 부리부리한 눈을 치뜬 용맹한 삼장사, 게다를 신고 오라에 묶인 왜장의 우스꽝스런 몸짓, 군악대와 해병 의장대를 앞세운 시대 가장의 그 행렬은 볼거리가 귀한 시절의 단맛 나는 진풍경이었다. 막 추수를 끝낸 진양군 사천군 산청군 하동군 등 ‘진주’를 에워싼 가근방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로터리 가생이를 빼곡하게 메웠다.

70년대 중반이었을까. 그 무렵 우리나라 최초의 컬러 분수대가 중앙로터리에 세워졌다. 형형색색의 물길을 내뿜는 중앙로터리의 분수는 이내 전국적 화제가 되었고 이 신식 물건을 구경하려 타관의 호기심 꾸러기들이 진주 걸음을 재게 할 정도였다. 그 첨단 시설을 진주에 희사한 이는 재일교포 하경완 선생이다. 1925년 ‘단목 골’ 출신인 선생은 열아홉에 일본으로 건너가 갖은 고초 끝에 빠친코 사업으로 거부가 되었다. 그는 대곡 중고등학교를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고향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다. 진양호 선착장 내려가기 전 갈래길 왼편의 정자 ‘우약정’이 그이의 흔적이다.

진주 같은 옴팡한 동네는 인구 15만에서 20만 정도의 시절이 가장 낙낙했지 싶다. 집들의 간격도 여유롭고 구석구석 꼬부라진 골목길도 정겨웠다. 데면데면 지나쳐도 대개가 낯익은 얼굴이라 객지서 만나면 모두가 푸네기 같은 느낌의 동향인이었다.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많았던 시절이다.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자동차 수효가 늘어나 회전반경이 교차를 감당키 어려워지며 로터리는 파헤쳐져 직선 교차로에다 신호등이 달렸다. 자랑거리였던 중앙로터리의 분수대는 지하상가를 만드느라 철거되고 연이어 인사동 로터리조차 없어졌다.

그때 먼지 풀풀 날리던 도동 평거 가좌의 들판은 상전벽해의 형용으로 도시화 되고 도심이었던 ‘시내’는 ‘나간 집’ 같은 황량한 꼴이 되었다. 철구다리에서 진주중학교로 뻗은 중앙통의 차량 통행의 빈도도 되려 직선교차로 이전의 상태로 가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시절이 그러하니 이 나월에 봉곡 로터리의 분수를 보는 감회가 색다른 것이다. 이참에 차라리 네 개의 로터리를 되살려봄은 어떨까 싶다.

따져보면 로터리는 이점이 많은 통행방식이지 않은가. 이를테면 불필요한 신호대기가 없으니 차량의 흐름이 외려 원활해지고 공회전이 감소하여 에너지를 아끼며 대기 질의 개선 효과가 있음이요, 로터리 앞에선 무조건 속도를 줄여야 하니 정면충돌의 위험도 없는 등등. 그리고 신호등이 없어 전기세도 좀 아껴지지 않을까.

빈 점포가 늘어가고 오가는 사람의 수효도 표 나게 줄어들어 갈수록 썰렁해지는 유서 깊은 천년 도심을 되살리는 것은 진주의 당면한 과제다. 통행량을 외곽도로로 분산해 도심통행을 최소화하고 네 개의 로터리를 되살려 남강과 진주성을 따라 ‘천천히 걷는 도시로’의 기획은 한번 꾸어봄직한 기름진 꿈이 아닌가 한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