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하던 선박이 조난을 당해 다섯 명만 간신히 살아남게 됐다. 하지만 구명정 승선 인원이 두 명 뿐이라서 세 명은 배에서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살아남을 두 명을 가려낼 방법은 수백 가지가 될 것이다. 키 큰 순으로 할 수도 있고, 몸무게 순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험문제를 풀어 가장 많이 맞힌 두 명을 골라 낼 수도 있고, 성별을 따지거나 외모, 국적 또는 성정체성을 따져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소 행실을 따져서 인기투표를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 서성룡 편집장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조율을 한답시고, 시험점수를 40% 반영하고, 인기투표를 60% 반영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치자. 그리고 그 반영 비율을 토론을 거쳐 조정한다고 치자. 그래서 최종적으로 살아남을 두 사람과 죽어야 할 세 사람이 판가름 났다. 이 경우 우리는 평가 과정이 공정했으니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라 말할 수 있을까? 신체나 외모, 피부색, 국적, 성별에 따라 판단하지 않았으니 공정했다고 할 수 있을까?

삼류영화에나 나올법한 이 썰렁한 이야기는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대학 진학 시험을 곧바로 생사를 결정짓는 일에 비유하는 것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짜 극단적인 일은 이 나라에서 매 40분 당 한 명씩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이며, 청소년 네 명 중 한 명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고, 사망 원인 중 1위는 2007년 이후 10년째 ‘자살’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청소년 자살률은 매년 수능 당일 가장 높은 수치로 올라간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소위 강남 사람들의 기상천외한 자녀 스펙 관리법이 공개되면서, 대입 전형의 불공정성 문제가 불거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별안간 ‘정시 확대’를 선언했다.

발표가 난지 한 달 만에 소위 8학군이라 불리는 서울 대치동과 목동의 전셋값이 2억 원이나 뛰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인접한 아파트 전셋값도 덩달아 출렁인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정시확대가 지금까지 추진해온 교육개혁을 뒤집는 일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선 정시를 확대하는 것이 ‘과정의 공정’을 담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학력고사 부활’까지 외치는 이들도 있다.

이 와중에 이미 OECD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최근 4년간 자살률이 55%나 증가했다고 한다. 또 ‘집세와 공과금이 밀려 죄송하다’는 메모를 남기고 자살한 ‘송파 세모녀 사건’이 발생한지 5년만에, 이번엔 건강보험료를 3개월 치 미납한 네 모녀가 일산화탄소 질식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는 비보가 전해진다.

조난당한 배에서 살아남을 두 사람을 뽑는 ‘과정의 공정성’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사이에 죽는 사람이 세 명에서 네 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과정의 공정’을 아무리 강조하고 수십 번 뜯어고친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맨몸으로 물속에 뛰어 들어야 하는 불평등한 상황을 고치지 않는 한 소용없다. 애초 조난당한 다섯 명 중 세 명을 다시 물에 빠트리는 일 자체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배의 모든 짐을 버리더라도, 다섯 명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윤리’이며 ‘정의’다. 그 전에 승선인원에 맞게 구명정을 보유해 아무도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진정한 공정이다.

수능을 치든 치지 않든 혹은 대학엘 가든, 취업을 하든 그 결과가 공평해지지 않는다면, 과정의 공정은 언제고 흔들리고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경쟁에서 낙오했다고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낙오자를 벌하는 사회에서는 승리자도 불행할 수 밖에 없다. 낙오자를 벌하지 않는 사회, 그 전에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 유명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내세웠다. 하지만 정의로운 결과만으로는 과정의 공정도, 기회의 평등도 보장할 수 없다. 결과에 정의를 갖다대기 전에 높아진 곳은 낮추고 낮은 곳은 돋우는 것이 바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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