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국정감사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는데, 질의하는 한 국회의원 옆자리에 여성 전신 인형이 조신하게(?)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안경을 쓴 모습은 더 가관이었다. 이 인형은 섹스토이로 분류되는 리얼돌이라는 것이었는데, 그 이미지를 좀 완화 시키려는 의도였을까?

리얼돌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것은 세관에서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통관을 보류한 것에 대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국민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2심의 논리를 채택해 수입을 허용하면서부터이다. 이에 여성을 적나라하게 대상화, 물화(物化)시키는 리얼돌이 수입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 강문순 발행인

이러한 와중에 국회의원 이용주가 리얼돌을 ‘데리고’ 국감장에 나온 것이다. 자신의 행태가 논란이 되자 그는 ‘명확한 법적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변명을 하였으나 실제로 그의 발언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규제적 측면도 검토해야 하겠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세계 현황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리얼돌을 산업의 하나로 확장하자는 이야기였다.

이 장면을 보면서 한숨부터 나왔다. 어찌 이렇게 둔감할 수 있을까? 국회의원이 우리 일반 시민보다 윤리적 의식이나 지적능력이 높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지만, 우리 시민, 특히 여성에 대한 시각이 이처럼 왜곡되고 여성에 대한 폭력에 이처럼 둔감할 줄이야.

그러면서 지난 9월 공정거래위원장 후보 조성욱에 대한 청문회에서 비혼의 후보에게 “(결혼해서 출산했더라면) 100점짜리 후보”라고 말했던 국회의원 정갑윤의 발언, 외국에서는 종신형을 선고할 수도 있다는 ‘아동성착취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했던 사람에게 1년 6개월을 선고한(이마저도 1심에서는 집행유예가 나왔으나 2심에 가서 실형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행태, ‘연예인 정준영 사건’이나 ‘기자들 단톡방’과 같은 만연한 강간문화 등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특히, 이 중 ‘정준영 사건’에서 여성을 술 취해 기절하게 만들어놓고 성폭력을 하던 장면은 자의식 없이 남성의 성적 욕구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는 점에서 바로 리얼돌과 연결되는 장면이다.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 여성을 물건이나 도구처럼 보는, 여성을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고위층에 있는 분들은 왜 이렇게 타인의 말에 귀를 막고 있는지 암담했다. 이전부터 여성들은 ‘우리는 성적 대상도 아니고 도구도 아니고 사람이다’라고 꾸준히 외쳐왔고, 특히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는 더욱 크게 더욱 꾸준하게 우리 사회의 여성 혐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해 이야기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듣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국회의원 이용주는 단순히 리얼돌을 산업의 측면에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상품의 하나로 보고 발언했을지 모르지만, 이 단순함, 이 둔감성이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존엄’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리얼돌이 ‘커스터마이징(맞춤제작)’ 기법과 만나면 주문자가 원하는 여성의 얼굴을 리얼돌에 장착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는 이 지경이 되면 리얼돌이 가지게 되는 폭력성이 얼마나 크게 될지 상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 폭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여성이 겪는 여성혐오, 폭력에는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의 저자 박정훈 씨는 리얼돌에 대해 한 신문의 칼럼에서 “그래서 리얼돌은 단순한 인형으로 볼 수 없다. 여전히 남성들이 리얼돌과 같은 (수동적이고 고분고분하게 자신의 모든 욕망을 받아주는) 여성상을 원하는 상황에서 또 리얼돌이 완전히 남성의 성적 만족을 위해 종속된 여성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포르노’도 남성 중심적 성적 판타지지만, 그것을 통해서 남성들이 왜곡된 성 관념을 배우듯 리얼돌이 용인되는 사회에선 오로지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모습이 정당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리얼돌의 수입허용이 성에 대한 금기의 파괴나 개인의 성적 자유 확대라는 긍정적 측면에 이바지하기보다는 여성의 이미지를 고정하고 성적대상화, 사물화하며,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의 정당화와 같은 성 문화의 어두운 측면을 더욱 확장할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 앞서 입법부, 사법부 등 우리나라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남성들, 그리고 일반 시민 남성들에게 외치고 싶은 것이 있다.

‘제발 타인(특히 여성과 소수자)의 말 좀 들으라’고, ‘마음을 다해 듣고 이야기 좀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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