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면 하단에 이등박문을 ‘우주에 이름 날린 정치가’로 극찬한 추모시 게재

▲ 1909년 11월 경남일보 2면에 실린 ‘이등박문 조화상보’ 제하의 기사 내용. 이등박문이 '불행히' 암살을 당했다는 내용(왼쪽)과 행흉자는 안응칠(안중근)이라는 내용(오른쪽)이 실렸다

경남일보는 29일 ‘110년 전, 경남일보는 안중근을 집중 조명했다’라는 제목으로 1면 머리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해당 기사의 실제 내용은 이등박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안응칠(안중근의 아명)을 ‘흉악범’으로 표현하는 등 친일적인 내용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1909년 11월 경남일보는 2면에 ‘이등박문 조화상보’라는 기사를 냈다. 이 기사에서 경남일보는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이 ‘불행히’ 암살을 당했다”(不幸히 暗殺을 被함), “‘흉악한 일을 한 자(‘行兇者, 행흉자)’는 안응칠(안중근)”이라고 썼다.

 

▲ 경남일보가 1909년 11월 자사 2면 중간에 실은 만사(이등박문 추모시) [번역 = 전문가 의뢰]

또한 같은 지면 하단에서는 이등박문을 추모하는 만사(추모시)를 게재해 경남일보가 ‘민족정론지’라는 주장을 무색케하고 있다.

경남일보는 만사에서 이등박문을 “하늘이 영걸을 내어 시대와 더불어 짝을 하게 하니, 젊었을 때 공적과 명성이 이미 백두산에 다다랐네”라고 표현했다.

이외에도 “몸의 안위를 무릅쓰고 오십 년 세월을 보내니 집마다 다투어 칭송해 성명이 향기롭도다”, “몸을 잊고 나라를 걱정하니 수염은 꽃이 되었고, 정치가로서도 우주 내에 이름을 날렸다네” 등의 표현으로 이등박문을 극찬했다.

이날 박용식 경상대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쓴 기사도 아니고 특히 기사 본문에서 아·일(러시아 일본)이라는 표현을 쓴 걸 보면 일제의 영향으로 이런 기사를 낸 것도 아닌 듯하다.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의 주장은 일본의 영향 아래 기사를 써야 했다면 아·일(러시아·일본)이 아니라 일·아(일본·러시아)로 일본을 앞에 썼지 않겠냐는 것이다. “우리가 한미, 미일이라 쓰지 미한, 일미라 쓰지 않는 것과 같다”는 논리.

▲ 경남일보 1909년 11월 5일자 신문 2면

한편 경남일보 친일논란은 지난 2005년 <진주신문>을 통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진주신문은 경남일보 창간호에 이완용 등 1급 친일파 12명과 진해만요새사령관 궁강 해군소장 등 일제통감부 일본인 유력자 9명의 축사가 실렸다고 보도했다.

또한 한일합병이 되던 해 경남일보는 첫 천장절(일왕 탄생일)을 맞아 일장기를 신문 제호 밑에 큼직하게 걸어놓았고, 이듬해인 1911년에는 천장절에 이를 축하하는 기념한시를 게재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그 시는 일왕 명치의 ‘성수무강’을 비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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