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돈다 세상은. 지나간다 인생은!

돌고 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나간다고 했다. 하루가 쉬우면 다음은 어려운 법. 하루 먹으면 다음 하루는 굶는 법.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그리 하면 죽을 때가 온다고 했다. 세상이 다 그렇다고 했다. 무어 그리 아쉬울 것도, 무어 그리 애달파할 것도, 무어 그리 찾을 것도 없다고 했다. 물레를 돌리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물레방아 밑을 수없이 찾으면서도 그것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산다.

모르니 산다. 알면 어찌 살겠는가.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고, 언제 떠날지 모르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산다. 그냥 산다. 대충 산다. 살고 싶어 산다. 살아지니 산다. 보고 싶어 산다. 보지 않고도 산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어서 산다. 사는 게 사는 것이어서 산다.

▲ 박흥준

최저임금이 안 올라도 우리는 산다. 생활임금이 안 와도 우리는 산다. 죽지 않고 산다. 아니 죽지 못해 산다. 나랏님이 밥은 먹여주니 우리는 격양가(擊壤歌)만 부르면 된다. 좋지 아니한가. 땅 말고 배도 두드리자. 우물 파 물 마시자. 수돗물에 입을 대자. 그러면 산다. 그리고 죽는다.

우리는 죽는다. 살지 못해 죽고 죽지 못해도 죽는다. 굶어서 죽는다. 찔려서 죽는다. 마시지 않아야 할 것을 마셔서 죽는다. 마셔야 할 것도 마시면 죽는다. 그리워서 죽는다. 애가 끊어져 죽는다. 세월을 쌓으면 죽는다. 세월을 안 쌓아도 죽는다. 세월을 쌓아도 원통하고 안 쌓아도 원통하다. 그리하여 원통해서 죽는다.

우리는 그냥 산다. 그러려니 하며 산다. 조국이 물러나도 그러려니 하고, 물러났는데 왜 이리 빨리 물러났냐며 삿대질을 해대도 그러려니 한다. 그것들이 가위표를 떼거리로 표시해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어제로 돌아가자 해도 그러려니 한다. 가진 놈이 배불러야 우리가 먹을 것 조금이나마 생긴다는 말을 다시 들어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 최저임금이 경제를 망쳤다 해도 그러려니 한다.

생각해 보니 최저임금이 경제를 망치기는 했다. 그들은 더 먹어야 하는데 그걸 우리가 조금, 잠시, 약간 빼앗고, 그들이 장롱 밑에 현금을 바벨탑처럼 한없이 쌓아올려야 하는데 그걸 우리가 잠시 방해했고, 최저임금 겨우 10원은 곱하기 500을 하면 5천 원이라는 거금이 되는데 그 계산을 우리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들의 경제. 그들만의 경제. 우리가 인간의 삶을 유보해야 그들이 먹는다. 그게 진리이다. 오랜 세월을 관통해 연면히 이어져 오는 그 진리를 잠시 잊었다. 그걸 깜박했다.

또 한 번 생각해 보니 평화가 그들을 망치기도 했다. 부칸은 그들의 적으로 영원히 남아야 했다. 그 역도 성립한다. 영원히 적의 구실을 해야 그들의 안락한 삶이 영원히 보장된다. 우리가 한없이 빨리더라도 미국에 퍼주기를 줄이거나 중단하면 그들은 그나마의 삶조차 영위하지 못한다. 무기를 계속 사들이는 방식으로, 농업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장보고함을 파견하는 방식으로 계속 퍼줘야만 그들은 안심한다. 그래야 그들의 평화가 다시 와서 유지된다.

이쯤 해서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들과 맞서 외칠 것인가. 아니면 한 발 물러나 세상을 부감샷으로 일별할 것인가. 조국을 아쉬워 하지 말자. 정경심을 불쌍해 하지도 말자. 조민이 고졸이 되든 중졸이 되든 그저 그러려니 하자. 많이 먹으면 토하는 법. 조국 정경심 조민.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하여튼 많이 먹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토(吐)할 차례. 먹은 걸 토해야 세상은 그나마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 했다. 세상은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무어 그리 애쓸 필요 없다. 무어 그리 애달파할 필요도 없다. 물론 세상을 되돌리려는 의도에 맞서 최선은 다하되 그게 잘 안 되더라도 낙심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고도 했다. 세상은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조국이 토하든 정경심이 토하든 아직은 어린 조민이 억울하게 토하든 세상은 더러워지지 않으며 토하지 않는다고 깨끗함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대충 살자는 얘기는 아니다. 열씨미 살아야지.

세상은 돌고 돈다. 물레방아처럼. 고통의 세상은 끝이 없다. 물레처럼. 그리고 인생은, 인생은 지나간다. 남은 건 남은 자의 몫일 뿐. 우리가 상관할 일 아니다.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그들을 먹였고 그들을 살게 했다. 그러면 족하다. 이제는 우리의 후배들이, 우리의 후손들이 애쓸 차례이다. 의자(조병화)를 물려주자.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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