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문제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첫째는 검찰과 손잡지 않는, 검찰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정권이 있어야 하겠죠. 두 번째,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계획을 가지고 실행할 수 있는 법무부 장관 같은 경우는 법무부 장관이 그걸 시행하게 되면 검찰에서 법무부 장관 뒤를 캘 가능성이 있거든요. 소문으로 흔들어서 이 사람을 낙마시킬 수도 있는 그런 조직이라 봅니다. 그래서 아주 강골인 사람 깨끗한 사람이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이 들고요, 그다음에 정권 초반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정권 후반 되면 또 다음 정권에 줄을 서기 때문에 정권 초반에 집단으로 법무부에 들어가서……“
경상도 사람의 입말을 받아 적은 것이다 보니 문맥이 다소 어지러운 이 발언을 8년이 지난 오늘 곱씹어보니 그 맛이 쓰다. 이 말은 2011년 12월 9일 노무현 재단 주최의 토론회에서 패널로 나선 서울법대 교수 ‘조국’이 피력한 검찰개혁에 관한 시각이다. 학자로서의 소신을 거침없이 말했고 이 자리엔 대선 후보로 차출된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함께 있었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흔드는 손은 하나둘이 아니었고 그 힘의 우악스러움은 가히 역대급이었다. 안경환은 저명한 법학자이자 인권정책 전문가로서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소신파라 일컬어졌다. 그는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검찰 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란 평가를 받으며 문재인 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에 내정되었다. 그러나 42년 전 있었던 여자관계를 들춰낸 검사 출신 야당 의원 주광덕의 눈부신 활약으로 그 점잖던 학자는 갖은 수모를 당한 끝에 닷새 만에 너덜너덜 넝마가 되어 항복하고 나갔다.
민정수석 출신 조국이 임명되니 이번엔 검찰이 진검을 들고 나선다. 국회고 나발이고 청문회 와중이거나 말거나 전방위적 압수수색에 들어간다. 감히 검찰을 건드리겠다고 나선 무엄한 먹물 장관 자신은 물론 부모형제 처자식에다 피 마디가 닿고 연고가 걸린 모든 관계와 기관을 조져나가는데 그 손속의 매서움이 서릿발 같다. 게다가 기레기 연합과 신종 페이크뉴스 본산인 ‘유튜브’까지 합세해 콜라보를 이루니 그 조합이 그야말로 삐까번쩍이다. 털고 털며 또 털었다. “강골까진 몰라도 ‘깨끗함’의 화신을 자처한 게 너였더냐”라며 강남좌파 조국의 위선에 부르르 떠는 ‘참 진보 지식인’ 제위도 뒤축을 구르고 침을 뱉으며 그 전열에 가담했다.
“인간은 단지 그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란 죽은 서양 남자의 탄식이 절로 떠오른다. 단지 제 기분이 꿀꿀하다는 이유로 타인을 해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란 서늘한 소리다. 쓰미한 분석이지만 요 몇 달간의 광풍을 보며 일견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하물며 그들이 견고하게 유지해온 자신들의 탄탄한 기득권을 흔들려는 자를 내비두겠는가. 야리야리한 금수저 출신의 학자 조국이 아내와 자식을 볼모로 벌이는 그 무자비한 해코지를 60여일이나 견딘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SNS의 되잖은 악플 두엇도 삭이기 힘겨워 몇날며칠 꿈자리까지 뒤숭숭한 나로서는 그의 인내가 초인적으로 보인다. 신독(愼獨)해야 한다고? 한번 물어보고 싶다. 자넨 그리 개결하게 살았는가. 흔하디흔해 청문회마다 발에 채이던 ‘위장전입’이력 하나 갖추지 못한 저 먹물 ‘조국’ 선생의 반의반만큼이라도 헤집어 까딱없는 삶을 살았는가 말이다.
검사 임은정의 말처럼 “죽을 때까지 찌르니” 이윽고 장관 조국은 물러났다. 속보가 이어지는 기사 틈새로 가수 설리의 죽음이 떠오른다. 짤막한 기사 가장자리에 미소 띤 젊은 여성의 사진이 붙었다. ‘헉’하고 숨이 막힌다. 겨우 스물다섯이란다. 저 풋풋하고 재능 넘치는 처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그 마음을 먹던 밤 그녀는 얼마나 엄청난 고통 속을 혼자 헤맸을까. 미친 세상이 뿜어내는 독하고 모진 말에 맞아 애꿎은 한 생명이 또 스러졌다. 말을 다루는 ‘공기’라며 높여 ‘언론’이라 부르는 어떤 물건은 설리 사망 신고 접수 소식을 전하며 생전 설리가 구설에 올랐던 노출 사진을 첨부했다.
조국의 가족에게는 “인류의 행복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을 비참하게 만들었다.”라는 유명인의 말이 위무가 될까. 그러나 설리의 가족에게는 대체 무슨 말이 위로가 될 것인가. 패역한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