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들과 함께 오늘도 광장을 꿈꾼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최인훈 선생이 선지자 자격으로 말씀하셨던 ‘광장’은 신분에 관계없이 주인이 되는 장이었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모여서 동질감을 느끼며, 누구도 억압받지 않는 공간. 그게 광장이었다. 광장은 밀실의 대척점에 있는, 도달할 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으며 자유의 표상이었으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유토피아였다. 그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에 드디어 우리는 도달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외형적으로 우리는 유토피아에 도달했다. 일방의 전유물이었던 광장에 또 다른 일방이 대거 진출한 것만 봤을 때 그렇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일만 남았다. 그것만 해내면 우리는 최인훈 선생이 60년 전에 염원했던 세계에 완벽하게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은 그게 아닌 듯싶다.

▲ 박흥준 상임고문

광장에 대한 염원은 소통부재에서 나왔다. 매체가 아예 없는 오랜 세월을 우리는 살아왔기에 나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를 그런가 보다 하며 그냥 수용하고, 설령 메시지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 메시지에 이의를 제기할 방도가 딱히 없던 시절이 수천 년 계속돼 왔기에 소통부재를 원인으로 광장은 그냥 염원의 형태로만 마음에 자리 잡았다. 소통이 되지 않으니 염원은 계속 쌓이고 쌓인 염원이 이뤄지지 않으니 결국은 폭발한다. 폭발하지만 이내 진압된다. 가슴 속 천 길 낭떠러지에 염원은 산산조각으로 내려와 쌓인다. 왕후장상에 농민항쟁, 만주벌판에 부마항쟁까지.

밀실이다. 사방이 벽으로 격절된 공간, 밀실에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게 구중궁궐이든 요정이든 육본 벙커이든, 어쨌든 밀실은 우리도 모르는 채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영문도 모르는 채 총살당한다. 영문도 모르는 채 동원돼 총을 쏜다. 영문도 모르는 채 팔뚝질을 하며 외친다. 영문도 모르는 채 성조기와 태극기와 이스라엘기를 흔든다. 밀실이다. 우리는 밀실의 존재조차 모른다. 내가 죽었는지 자식은 살았는지도 모른다. 영문을 모르니 밀실인데, 밀실도 모르니 영문도 모른다.

광장이다. 처음 보는 광장이다. 그들만의 공간에 우리가 왔다. 드디어 우리가 접수했다. 해방공간이다. 수십 년 맺힌 한이 일거에 풀린다. 숨통이 트인다. 얼마나 억눌려 왔던가. 얼마나 무시당하며 살았는가. 얼마나 긴 세월이었던가. 괄시와 질시, 무시와 천시, 거기에 학시까지 온몸으로 견뎌내며 죽은 듯 살아온 길었던 세월, 이제야 빛을 본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지부상소(持斧上疏)를 하는 것이지 반란을 꾀하는 게 아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게지 나의 외로움을 달래려는 게 아니다. 우리도 말할 권리가 있다. 우리도 광장에 나올 자격이 있다.

다시 밀실이다. 나와 보지도 않는 나랏님은 애초에 나랏님이 아니었다. 우리와 생각이 사뭇 다른 일군의 무리들이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 어여쁜 공주님을 내쫓고 권좌를 찬탈했다. 이제는 그들이 과거의 우리처럼 밀실에 갇혀 우리의 존재를 위협한다. 그렇다. 얼마 남지 않은 생. 초개같이 던지리라. 그들의 밀실을 박살내고 자유를 되찾으리라. 길이 후손에 물려 줄 영광된 통일조국을 내 손으로 이룩하리라. 조국이라는 두 글자는 세세토록 기휘(忌諱)하라고 명령하리라. 아무도 그 이름을 더 이상은 망령되이 쓰지 않도록 하리라.

다시 광장이다. 광장은 열려 있어야 한다. 누구나 진입해 말하도록 하여야 한다. 누구나 연단에 올라 외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청와대 행진도 막지 말라. 전광훈도 그 찢어진 입으로 주절거리도록 하라. 김문수도 홍준표도 말할 자유를 무한대로 허하라. 나경원을 투사의 반열에 올리라. 황교안은 군중들의 함성에 취해 백일몽을 꾸도록 하라. 궁궐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하듯 그들이 설치고 다니게 하라. 제풀에 지쳐 잔디밭에 잠들도록 하라. 그리 하면 그들은 머지않아 돌아갈 터이니.

그들도 우리처럼 말하게 하라. 광장에 모여서 말하게 하라. 밀실의 벽을 부수어서 그들이 광장으로 나오게 하라. 그들과 함께 하는 광장. 계급도 없고 지역도 없고 빈부격차도 없고 귀천도 없고 좌우도 없는 세상. 그들과 함께 하는 광장이 그런 세상을 가져 오리니. 모두가 중산층이요 모두가 승자인 세상. 그런 세상이 오리니. 우리는 그들과 함께 오늘도 광장을 꿈꾼다. 노파심에 주문(呪文)을 건다. 그들이 누구이든 그들이 광장에 진입하는 걸 막는 자에게는 영원히 화(禍) 있을 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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