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와인권연구소 “모든 아이들 차별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제도 개선 시급”

아동복지법 2조는 “아동은 자신 또는 부모의 성별,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재산, 장애유무, 출생지역, 인종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아니하고 자라나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 하다. 부모가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출생등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아이들이 있다.

이주와인권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6일 진주에서 태어난 ‘진실이(가명)’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 생모인 우즈베키스탄 국적 여성은 ‘진실이’가 태어난 뒤 종적을 감추었고, 생부로 추정되는 한국 국적 남성은 ‘진실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며 현재 친자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진실이’는 출생등록도 하지 못한 채 무국적자로 남았다.

‘진실이’는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생명을 이어가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소개로 진주지역 한 자활센터에 입소했다. 자활센터는 청소년을 위한 쉼터였고, 쉼터는 단기보호시설로 ‘진실이’가 오랜 기간 지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주지역 아동양육시설 가운데 ‘진실이’를 받아주려는 곳은 없었다.

이주인권단체는 ‘진실이’와 같은 아이를 키워본 부산의 한 보육원 입소를 허락받았지만, 이번에는 자치단체가 훼방을 놨다. 태어난 곳이 부산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진주나 경남에서 아이를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부산시가 보인 것. 아동보호법상 아동이 다른 자치단체의 보호시설로 갈 경우 해당 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동양육시설이나 부산시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진실이’에게 주민등록번호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동복지법상 보호대상 아동 발견 시 자치단체장은 보호조치를 해야 하고, 시설 입·퇴소도 결정해야 한다. 시설 수급자는 기초생활수급권자에 준해 생계비, 의료비, 학비를 받을 수 있지만, 수급 자격 판단에는 '진실이'에게 없는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다.

이주인권단체는 ‘진실이’를 맡아줄 곳을 다시 수소문했고, 올해 8월21일 ‘진실이’는 경기도 용인시의 한 종교시설에 보내졌다. 이 기관은 미인가 아동 시설이다.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았을 뿐더러 관리감독도 받지 않는다. ‘진실이’가 겨우 찾게 된 보금자리였지만, 이곳에서도 ‘진실이’에게 공적보호책임을 다할 국가는 없었다.

 

▲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자료사진입니다.  (사진 = pixabay)

‘이주와 인권연구소’는 ‘진실이’의 사례를 들어 정부의 보호망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24일 ‘진실이’의 사례를 거론하며 “어디서 어떻게 태어난 아이든지 차별 없이 자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만, 그러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보건복지부 매뉴얼에 따라 ‘진실이’와 같은 아이들도 정부가 보호하게 돼 있지만, ‘진실이’는 지금까지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돼 있다”고 했다. 아울러 “무국적 아이든, 외국 국적 아이든 태어나면 그 존재를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며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보편적 출생등록제는 이 땅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이 본인 또는 부모의 국적이나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출생등록을 해 법적 신분을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다. 2011년 UN 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을 권고했지만, 제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국회의원들도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담은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아직 넘지 못했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모든 아이들은 차별받지 않고 자랄 권리를 가진다”며 “‘진실이’가 한국 국적 아이었다면 국비 지원을 받아 보육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부모는 영아 유기로 조사받고 처벌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 정부가 보호책임을 다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주와인권연구소는 지난 4월 ‘진실이’와 같은 아이들을 보건복지부가 어떻게 보호할지 질의한 결과 적정한 보호시설을 찾도록 조치하겠다는 답변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진실이’ 건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이주와인권연구소 등 52개 단체는 보건복지부가 이 건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보고 지난 17일 정부에 질의서를 보냈다.

이들은 질의서에서 ‘진실이’ 건을 논한 뒤 “올해 정부가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며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에게 국가가 공적 보호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부모의 국적이나 출생등록 여부에 따라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현실이 있다”며 “정부의 과제 추진 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따른 책임을 사회와 가정이 함께 나누며, 아동의 기본권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등 국가 책임을 확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출생단계부터 모든 아동이 공적으로 등록되어 보호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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