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타고 내려온 덕천강은 덕유산에서 넘어온 경호강과 만나 진양호서 잠시 머물러 서로 어루만지다 이윽고 삼계 다리 아래로 흘러 바다에 안긴다. 더위의 시작은 진양호 ‘물’공원 너머 삼계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돌면 시작되는 진양호반의 배롱나무로부터다. 호수의 시작점인 그곳에서 대평을 돌아 오미에 이르기까지 호반을 감고 늘어선 이 나무의 수효가 무려 수천 그루라. 배롱나무는 한 번에 피고 지는 여느 꽃과는 달리 초하부터 무려 석 달 열흘에 걸쳐 꽃을 피워내는데 온갖 화초가 다 말라 죽는 혹서의 땡볕일수록 더욱 눈부신 선홍빛을 드러내는 놀라운 생명이다. 푸른 하늘 흰 구름 호수의 물빛, 그리고 V자로 오도카니 앉은 선홍빛 배롱나무가 어우러져 이뤄내는 풍치의 호반을 돌아나간다. 그것이야말로 내 오랜 여름나기의 호사이며 진주 사는 맛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타관의 사람에게 진주를 자랑할 땐 빠질 데 없는 전국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진양호반을 들며 양념으로 치는 것이 그 배롱나무다. 동구 어귀나 고택 삽짝에 버티고 선 아름드리 고목의 덩치가 뿜는 아우라도 대단하지만 호숫가에 도열해 끝 길까지 겨끔내기로 피워내는 무리의 개화도 찬연하다. 갈수록 더위 감당이 벅차지는 시절이지만 한더위 모진 땡볕에도 꿋꿋하게 꽃피우는 그들 보며 얻는 위안이 작지 않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심각한 생각이 든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마침 필 무렵이라 객지 친구에게 배롱나무 자랑질을 푸지게 했던 참이라 여러 말 할 것 없이 차에 올랐다. 호수 들머리에 자귀나무가 지고 나면 연이어 피기 시작하는 그들의 향연을 보러 나선 것이다. 그러나 3m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도열해 있던 나무가 웬걸 여기 띄엄 저기 띄엄 성글게 눈에 띄는 것이다. 어느 해부터인가 무성해진 벚나무가 그 둔해진 몸피를 차도 쪽으로 드러내느라 그 이파리에 가려진 건가? 차를 세우고 찬찬히 살펴보니 어이구! 그건 칡이었다.

칡은 호숫가에 심어진 나무들을 온통 감고 있다. 진수대교를 지나 대평으로 이어지는 당촌리 마을 길가의 배롱나무는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섰지만 호반가생이 가드레일 밖으로 이어지는 길가의 나무는 모두 칡으로 덮였다. 그것은 대평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감아 도는 이주단지에서 오미의 시목 다리로 이어지는 길에서라야 줄기가 거두어졌다.

심산에 있다 여겼던 칡이 어째 이리 호반을 감았을까. 진주서 태어나 비봉 망진 선학의 병풍 진 울타릴 거의 벗어난 적이 없어 옳은 촌놈도 아니고 대처의 깍쟁이도 아닌 어정잡이 내 기억 속의 칡은 배영학교 교문 앞에서 봤던 그때의 느낌으로만 깊이 새겨져 있다. 지금 교육청이 들어선 그 자리다. 교문 바로 옆에 만화방과 탁구장이 있었을 뿐 들락거릴만한 번듯한 구멍가게도 없었다. 학교 앞에는 뽑기 다슬기 번데기 국화빵 리어카가 주로 진을 쳤다. 여름엔 미숫가루를 섞은 냉차 수레가 등장했고 바람 소슬해지면 생강엿 장수가 왔다. 칡 장수는 엿장수 함께 왔다. 

‘엿’ 하면 으레 ‘가위’가 앞장이라. 본시 가위의 사명이란 것이 자르는 것이고 그래서 지어진 인상이 앙살스러운 날카로움이라면 엿장수의 가위는 그것과 다르다. 뭉툭하고 너부데데한 그것의 용처는 부르는 것이고 나누는 것이다. 그 가위는 넓적하고 무딘 쇳조각을 서로 어스듬이 결합시켜 내는 소리로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곤 엿판 그득 너부죽이 드러누운 엿을 엇비슷이 겨눈 ‘끌’의 뒤통수를 철컥철컥 내리쳐 떼 내는 것이다. 엄정히 계량되지 않은 양이고 대상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는 것이니 때로는 얄미운 장삿속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후한 정을 떼어주는 푸근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종래의 넓적한 가위 대신 티베트 절간 ‘마니차’ 모양의 나무통 손잡이를 돌려 까르륵까르륵 소리를 내며 꼬맹이들을 유인했다. 그리곤 가위 대신 대패로 깎아 생강엿을 파는 것이다.

대문 옆 담장 아래에 칡 다발을 늘어놓고 낫으로 깎아 파는 칡 맛을 처음 봤다. 입에 넣으면 쓴맛으로 상이 찌푸려지지만 이내 단맛이 배어나는 그 맛을. 덥수룩한 수염에 우직한 모습의 칡 아저씨는 ‘꾼’의 면모가 역력한 친구 따라 첫 장사에 나선 모양이었다.

칡은 타고 올라갈 나무를 만나기 전까지는 땅에 붙어서 뻗어 나가며 자신이 타고 올라갈 다른 나무를 탐색하고 있는 반면에 바닥에 닿은 넝쿨 각각의 마디에서는 다시 새롭게 뿌리를 내리는 특성이 있다 한다. 넝쿨이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기만 유난히 넓은 잎으로 햇빛을 차단해 순식간에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지자체마다 왕성한 생장력으로 생태계를 교란하고 경관을 해치는 칡과의 싸움이 심상찮다 한다. 한때 약재로 혹은 구황식품으로 대접받던 것이 이제 먹을 것 지천으로 넘치는 세상의 천덕꾸러기가 된 모양새다.

진수대교를 건너 왼쪽 금성리 쪽으로 가는 호반엔 오롯이 배롱나무만 심겨진 터라 한여름엔 그 정취가 여전했다. 따가운 가을볕 받으며 아직 몇 떨기 붉은 꽃이 호수를 바라보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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