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은 모두에게 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는 게 있다. 나보다 현저히 없어 보이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일단은 나보다 아래로 보되 약간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내가 가진 것 가운데 당장은 필요 없고 지니기에도 버거운, 가장 값싼 그 무엇을 던져주는 행위의 동인(動因)을 일컫는 말이다.

수오지심 시비지심 사양지심과 함께 인간이 인간일 최소한의 조건으로 이를 사단(四端)이라는 이름으로 맹자는 정의했지만 정작 측은지심을 제 때에 필요하게 작동하는 이는 자고(自古)로 드물다. 따라서 인간도 드물다. 아울러 인생의 긴 기간에 지치지 않고 이를 마음에 담아두는 이도 자고로 드물다. 예전엔 깨우치지 못 해서? 천만에. 요즘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는 바람에? 천만에.

그 이유는 아마 이런 것이지 싶다. 간략히 말하면 모두가 살기 바빠서이고, 조금 길게 말하면 없이 사는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로 없이 사는 것이지 일관되게 제도의 불비를 지적할 일은 아니라는 조금은 나이브한 생각 탓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이와는 사뭇 다른 어떤 이들을 가끔씩 만나게 되는데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강남좌파’가 바로 그들이다. 강남좌파는 일단 가진 자들이다. 아니면 가진 자들의 자식들이다. 그런데 ‘생각’만큼은 가지지 못 한 자들에게 가 있다. 그리고 부모의 재산을 부끄러워한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그들 가운데 생각을 행동으로 과감하게 옮긴 이들도 드물게나마 있었으니...

▲ 박흥준 상임고문

내 어린 시절 기억은 오래 된 가난과 잠시의 행복에 머물러 있다. 모두들 가난했으면 가난은 느껴지지 않았을 터. 세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서 나는 내 가난이 부끄러웠고 나를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등이 휘고 휜 등에 소금꽃이 일상적으로 피는 부모가 부끄러웠으며 나와는 사뭇 다른 동무가 부러웠고 사시사철 장죽을 물고 느긋이 나의 인사를 받는 동무의 부모가 훌륭해 보였다. 그 가운데 한 동무의 얘기를 지금부터 간략히 하련다. 동급생이자 동무이다. ‘강남좌파 시리즈’는 당분간 계속된다. 왜? 찾아보면 많으니까.

학교 가는 길옆 푸줏간에는 명절에만 두어 점 먹을 수 있었던 소고기 돼지고기가 흔천이었다. 동급생인 정육점 아들은 자랑스럽게, 그리고 거만하게(내가 느끼기에) 지나가는 우리(일군의 가난한 집 자식들)를 불러 국밥에 들어 있는 고기 한 점을 국물과 함께 숟가락에 떠서 입에 넣어주려 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세 부류로 나뉘었는데 대뜸 받아먹는 친구가 있었고 도리질 하며 뒤로 물러서다 마지못해 숟가락을 빠는 친구가 있었다. 아울러 멀찌감치 떨어져 못 들은 척 그냥 갈 길을 가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입에 희미한 조소를 머금고 정육점 동급생을 은근히 째려보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훗날 좌파로 성장해 온 몸을 불사르고 일찌감치 저세상으로 주소를 옮겼다.

그럼 나는? 나는 두 번째 부류였다. 개뿔도 없는 집안 자식이어서 평소 고기라고는 구경도 못 하는 주제에 어린 마음이지만 존심은 있어서 잠시 갈등했다. 이걸 받아먹어? 말어? 어느 순간 한 숟갈 받아 두어 번 씹고 목울대를 넘기면 그 순간의 짧은 행복은 그 행위 이전의 수치심과 굴욕감을 손쉽게 제압했다. 아니 에덴동산(망각의 동산)으로 수치심과 굴욕감을 순식간에 밀어 넣었다. 따라서 동급생의 자랑스럽고 거만해 보였던 행동도 별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자랑스럽고 거만해 보일 뿐. 내일 아침이 다시 기다려졌던... 아아 내 어린 날. 수치심은 길었고 행복감은 짧았던 그 어린 날.

동급생이 아니라 동무였던 사실을 세월이 흐른 뒤 늦게 깨닫고 나는 한 없이 후회했다. 어린 날엔 가난했으되 어쩌다 보니 어느 순간 연봉이 조금 높아서 나보다 훨씬 어려워 보이지만 나보다 훨씬 아는 게 많고 나보다 훨씬 열심히 하면서도 나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받는 분들이 어느 순간 눈에 확 들어왔다. 돈오돈수(頓悟頓受)!! 깨우치면 행동해야 하는 법. 그 동무의 행동을 따라하려 애썼던 시절. 나는 힘들었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마음과 행동이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쌓여서 여러 번 뛰어내리려 했는데... 따라서 그 동무는 강남좌파.

너나 할 것 없이 그러기는 힘들다. 너나 할 것 없이 약간씩은 가끔 흉내는 내는데 시종일관하기는 더 힘들다. 그러기가 힘들었음에도 그 동무는 어린 나이에 그 수준에 맞게 일찌감치 분배하고 죄송해 하고 그 댓가로 약간의 존경을 마지못해 누렸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그런 식으로 세상은 굴러간다. 그렇게 가면 마지막에는 뒤늦은 사회정의가 끝내 도래하지 않을까.

그 동무는 지금 생각해 보니 광범위하게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한 것인데 동무 앞에서 약간은 주눅든 이외에 우리(가난한 부모의 가난한 아이들)가 지불한 것은 별로 없었다. 강남좌파는 예전에도 있었다. 지금도 가끔은 있다. 고마워해도 손해는 안 난다. 고마워하자. 수척한 조국을 보며 한없이 안타까워하는 아내를 달래려 이 글을 쓴다. 이제부터 2주 간격으로 연재한다. 이름하여 ‘강남좌파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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