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같이 마실모임] 함안 가야읍장에 가다.

두루마기에 중절모까지 쓰시고 아침 일찍 나서시는 할아버지를 향해 할머니는 자주 이렇게 툭 던지셨다. “할일 없는 장에 볼 일 없이 뭐하러 가요?'” 내가 장마실에 참여한 지도 벌써 여러 달이 지났다. 어느덧 조금은 기다려지고 설레기도 하는 자그마한 즐거움이 되어버린 장마실, 전통장날 기행...

이번 달은 함안 가야읍장이다. 일요일 아침, 이부자리에서 뒹굴며 리모콘을 만지작거릴 수 있는 호사를 마다하고 모인 회원들은 소풍가는 아이들 마냥 다들 즐거워 보였다. 함안까지 가는 사십 여분, 다들 웃음거리를 풀어놓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함안 가야읍장은 내가 함께한 전통시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 같았다. 안 쪽 상설시장은 한산한 반면 앞쪽 오일장은 오전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상설시장 하시는 분들이 불만이 있겠다고 철물점 아저씨께 물어보니 상설하시는 분들이 오일장도 함께 하신다고 한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전통시장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우리들처럼 제철을 맞은 채소와 곡물, 생선 그리고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제상에 올라가는 문어들이 입구에서부터 큰 몸집을 자랑하고 고등어를 비롯한 각종 바다생선과 가물치, 잉어같은 민물고기들도 보였다.

옥수수, 단호박, 양파 등도 할머니의 검고 굵은 손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늦여름이라 장터를 장악한 것은 단연 햇고구마와 말린 고추였다. 궂은 날씨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말리고 들이기를 수차례 반복했을 태양초의 시세를 중년 아주머니께 물어봤다. 비닐에 고추를 담고 계시던 아주머니는 아쉬워하시며 “한근에 만 몇천원, 작년보다 싸서 재미없어예~~”

 

▲ 말린 옥수수를 내다파는 할머니(사진 = 서승덕)

규모가 큰 지라 지방축제를 연상할 만큼 먹거리도 풍성했다. 나는 60년 전통,100% 국산콩 이라고 자랑하는 두부와 콩국을 파는 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콩국 한 병을 사서 일행들과 함께 먹었는데 그 구수한 맛이 깊고 진했다.

장마실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그 장터 맛집에서 점심과 함께 하는 술한잔이 아닐까...

우리는 직접 담은 농주와 제철 밑반찬으로 유명하다는 '진이식당'으로 정했다. 여러 가지 메뉴가 있었지만 나는 이 고장에서 직접 잡음직한 어탕을 주문했고 취향에 맞춰 일행들도 정식과 국수를 주문했지만, 장날이라 바빠서인지 서비스와 맛에 조금은 실망하는 것 같았다. 시내에서 먹는 막걸리에 비해 약간 독특하고 깊은 맛을 내는 농주에 만족하고 일어섰다.

 

▲ 가야읍 장터 내 진이식당(사진 = 서승덕)

늦여름이라 아직 날씨가 더웠지만 한 일행의 강한 추천으로 우리는 함안 '말이산고분'으로 향했다. 아라가야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는 고분군으로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란다. 말이산은 '머리산'의 소리음을 빌어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산=왕(족)의 무덤이 있는산' 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특히 최근 말이산 고분군 13호분 발굴조사에서 무덤 내부를 채색하고 천장에 별자리를 새긴 아라가야 전성기 왕묘의 모습이 확인되고, 45호분에서는 집모양토기, 배모양토기, 노루모양토기, 등잔모양토기 등 보물급들이 다량 출토돼 1600년 전 아라가야인들의 건축술과 조선술이 그동안 널리 알려진 철기문화와 함께 보물급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 함안군 가야읍 말이산 고분군(사진 = 서승덕)

맑은 하늘과 시원스레 펼쳐진 고분군을 우리는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풀과 꽃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말하며 들으며 둘러보았다. 이렇게 헤어지기도 아쉽고, 술도 조금은 아쉬울 때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일행이 자기가 살고 있는 숲속에서 장어구이파티를 제안해서 술 한 잔과 함께 일정을 마무리했다.

약속은 없었지만 그렇게 모이고 그렇게 헤어지는 옛 사람들처럼 우리도 그랬으면 한다. 다음 달에도 볼 일 없는 장에 할 일 없이 가고 싶다.

 

▲ 진주같이 마실모임 회원들(사진 = 서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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