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은 이름이 없다. 주세법에는 전통주, 약주, 청주, 소주, 탁주로 구분하고 이 범위를 벗어나면 그냥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수백년 전부터 만들어 마셨으나 오래된 것이니 간단하게 전통주라 부르고 한때는 민속주로 부르고 약이 되는 술이라 약주라 불렀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멀쩡한 시장을 재래시장이라 부르다가 재래라는 느낌이 안 좋으니 시장을 죄다 전통시장이라 부르는 것이고, 트로트를 전통가요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부르고 씨름을 프로화한다며 민속씨름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말은 알겠는데 뭔가 어색하고 꺼끌거린다.

우리 고유의 술을 하나로 정의해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동안 우리가 우리 술의 분류나 체계에 무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신이 해외여행에서 그 지역 술을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라벨에 영어는커녕 해석이 가능한 글자도 없어 도대체 이 술이 어떤 술인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도 가늠할 방법이 없다. 유일하게 알아보는 건 숫자와 기호로 적힌 알콜도수뿐이다. 그런데 간혹 친절한 술들은 영어로 "Traditional XX" 라고 적어 놓기도 하는데 해독이 불가한 이질적 단어의 나열 중에 트레디셔널 혹은 포크(folk)를 발견한 여러분의 심정은 어떠한가?

▲ 백승대 450 대표

아! 지역술이면서 전통주구나! 이건 꼭 마셔봐야 해! 이런 생각? 아니면 무슨 재료로 만든 어떤 술인지도 모르고 민속이니 전통이니 하는 걸 보니 이 나라 이 지역 사람들만 마시는 술인가 보다? 대부분 후자일 확률이 높지 않나? 여행 가이드나 현지인의 설명 없이 라벨에서 마주치는 민속, 토속, 전통이라는 단어는 외지인에겐 진입장벽만 높여 구매나 음용을 꺼리게 만들뿐이다. 외국인들이 보는 우리 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술의 종류나 분류라는 정보를 구매자에게 제공하지 않고 애매하게 전통주, 민속주, 약주 하면 우리도 헛갈리고 외국인은 더 헛갈린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세수확보를 위해 일본식으로 만들지 않은 우리 청주는 약주로, 일본식으로 만든 것에만 청주라는 명칭을 붙임으로서 우리 청주는 그 때 죽어버렸다.

해방 이후에도 별다른 논의나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조선총독부가 만든 세수체계는 거의 원형 그대로 우리 땅에 자리잡았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도 필요에 의해 아주 부분적 수정과 추가가 이루어졌을 뿐 현실에 맞는 주세체계 변화는 요원하다.

막걸리(탁주)에 기타재료를 첨가하여 판매하는 제품을 본 적이 있으신가? 술집에선 바나나, 복숭아, 녹차, 흑당 막걸리 등 여러 막걸리를 판매하지만 사실 우리가 소매점에서 이들을 만나보긴 힘들다. 주세법상 탁주에 첨가물이 포함되면 탁주가 아니라 기타주류로 분류한다. 그럴 경우 주세비율도 기타주류가 높고 유통주체도 탁주, 전통주를 취급하는 특정주류 도매면허에서 수입주류와 소주 맥주를 취급하는 종합주류 도매면허로 바뀐다. 그러면 탁주유통업체는 불법이라 못하고 종합주류는 돈이 안 되니 안 한다.

막걸리 제조업자들이 다양한 막걸리를 안 만들고 또 못 만드는 게 현행 주세법 때문인 것이다. 관련법 개정이 이달 내 이뤄지고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된다면 이제 우리도 편의점, 동네 수퍼에서 갖가지 맛의 막걸리를 골라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거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수년 전 막걸리 열풍이 불어 너도 나도 막걸리를 마시고 수출까지 하던 시절에 주세법이 변경됐더라면 지금쯤 막걸리는 가늠할 수 없이 다양한 맛과 색을 가진 매력적인 술로 굳건한 위치에 올라 있었을 텐데

일본불매도 좋고 극일 반일 다 좋다.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 술에 일본이 마음대로 붙인 이름도 버리고 전통주라는 정체불명의 이름도 버리자. 그리고 우리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아 그에 걸맞은 좋은 이름을 지어 줄 때가 되었다. 일제시대에 근간이 만들어진 시대착오적이고 행정친화적 일제잔재 주세법도 우리 상황에 맞게 바꾸자.

일본불매 만큼 중요한 것이 생활 깊숙히 뿌리내려 이것이 우리 것인지 아닌 지도 모르게 우리 것인냥 뻔뻔하게 우리 속에 똬리를 틀고 앉은 일제의 잔재를 찾아내고 고치고 버리는 일이다. 우리는 충분한 능력과 자질을 지닌 대단한 민족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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