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와 과정, 정의를 위해

과거제를 처음으로 시행한 고려 광종은 아마 우리 역사에서 별 볼 일 없는 가문의 자제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린 최초의 왕이자 대책 없는 사람이었지 싶다. 수많은 선비들에게 정책의 책임은 지지 않은 까닭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 또는 기성사회로 들어가는 관문은 비좁았는데 글 읽은 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이 과거(科擧) 하나로 정해져 있었던 조선조까지 세월이 흐를수록 그 폐단은 참혹을 더했다. 글 읽는 사람이 집안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머지 식구들은 그야말로 희망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2-30년 전까지 틈틈이 불리었던 노래 ‘엽전 열닷냥’의 가사가 이러한 사정을 잘 말해 준다. “내 낭군 알상(알성시, 조선조 과거제도 가운데 비정규적으로 시행된 시험의 하나)급제 천번만번 빌고 빌어 청노새 안장 위에 실어 주던 아아아아 엽전 열닷냥”(한복남 노래, 엽전열닷냥) 기회는 평등한가.

▲ 박흥준 상임고문

이와는 반대로 있는 집 자식들은 동몽선습과 천자문, 논어 정도만 겨우 떼고 기방을 출입하며 즐거운 세상을 수시로 즐기다가 작취미성의 상태에서 과장에 나아가 답안을 대충 써내도 급제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블라인드 채용은 당시에 없었다. 그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는 아마 이런 것이었지 싶다. “동동 뜨는 뱃머리가 오동동이냐. 사공의 뱃노래가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멋쟁이 기생들 장구소리에 오동동 오동동 밤이 새도록 한량님들 노랫소리 오동동이냐”(황정자 노래, 오동동타령) 기회는 평등한가.

우리 역사에서 기회가 평등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제도는 곧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어서 모두가 안 될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며 끝내 포기하지 못 하고 인생 전체를 쏟아 부었다. 천원짜리 로또를 일생 산 거지 뭐. 경제적으로 몰락한 선비의 아내는 남편이 글을 읽는 동안 길쌈을 하고 베를 짜고 보릿겨를 털면서 뽀오얀 먼지를 뒤집어써야 했고 똑똑한 동생을 둔 누나는 초등학교 졸업장을 마지막으로 조출철야를 밥 먹듯 하는 공장으로 직행해야 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정말 없어요 살며시 두 눈 떠봐요 밤하늘 바라봐요 어두운 넓은 세상 반짝이는 작은 별 이 밤을 지키는 우리 힘겨운 공장의 밤”(송창식.조경옥 노래 ‘이 세상 어딘가에’) 기회는 평등한가.

똑똑한 형을 둔 동생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택과 집중’의 원리는 그런 단어가 없었던 6-70년대에도 어김없이 적용돼서 역시 형만큼 똑똑했던, 아니 형 이상으로 뛰어났던 동생은 부모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철공소로 가야 했다. 쇳가루가 분진되어 휘날리고 그라인더 소리가 귀를 찢는 가운데 온 몸이 땀으로 맥질되어 파김치로 돌아오면 형은 볼펜을 손으로 돌리며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멋있어 보였지만 한 마디 말도 못 하고 지친 몸을 방바닥에 뉘어야 했다. 라면에 계란 하나 풀어 저녁을 때우고 나면 내일의 노동이 두려워지는 밤이 온 몸을 무겁게 짓누르던 내 어린 날, 아니 젊었던 날. 맑은 술 한 잔에 경찰서로 직행했던 날.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 위에 핀 꽃다지. 나 오늘 밤 캄캄한 창살 아래 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민중가요 ‘꽃다지1’) 기회는 평등한가.

기회는 그렇다 치고 과정은? ‘과정의 공정' 여부는 ‘기회의 평등’이 선행돼야만 일정한 의미를 얻을 터. 기회가 평등하지 않았으니 과정의 공정 여부를 따지는 건 실로 무망한 노릇이다. 그냥 공정하기를 희망할 뿐. 세상은 온갖 갑질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노동은 착취당하고 있고 자본은 배를 불리고 있다. 경제가 순항하면 순항하는 대로, 침체되면 또 그 와중에도 착취는 일상적으로 진행된다. 떠넘기면 그만이고 잘라내면 그만이다. 당하는 놈만 항상 당하는데 민중은 당하면서 이런 노래를 흥얼거린다. “흘러가는 대로 구르는 대로 부딪치는 대로 밀리는 대로....가다보면 무얼 만나게 될까 새옹지마처럼 아무도 몰라... 우리네 인생살이 그렇게 사는 거지...”(이광조 노래. 우리네 인생) 과정은 공정한가.

가내공업을 겨우 면한 20여평 크기의 공장. 사장님 역시 말만 사장님이지 종업원 10여명과 함께 땀 흘려 일하시던 그 곳.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던 짜리몽탕 사모님이 갓 출시된 봉지 칼국수 매일 끓여 가져오면 공장 흙바닥에 주저앉아 신문지(조중동이라고 하지 아마) 깔고 나눠먹던 그 날들. 젊음의 한 때 몸을 의탁했던 그 사장님은 종업원 봉급을 맞추느라 매월 고생하셨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납품처 높은 분들(그래봤자 그들도 별 거 아니었지만, 대학 갓 졸업한 애들)을 찾아 소주에 꼼장어를 구워야 했다. 차라리 성불사, 아니 송학사로 들어가는 게 인생 빨랐을 텐데. 에휴우.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속 헤메나”(김태곤 노래. 송학사)

“애들 추석 뽀나스를 줘야 허는디...” “그런 얘기 그만 해요. 우리도 어려워요. 꼼장어 맛 떨어지게 왜 그래.” 어린 놈이 마지막에는 반말을 지껄이는데 사장님은 마치 오래 전에 각오를 미리 하고 수자상(壽者相)을 버린 듯 어린 놈들에게 머리를 쉽사리 조아리며 꼼장어를 꼼지락꼼지락 뒤집었다. 종업원으로 시작해 비교적 젊은 날에 사장 반열에 오른 뒤 종업원들과 함께 10년 이상 그라인더를 돌렸던 40대 후반의 사장님은 견디다 견디다 결국 정이 들대로 든 그라인더와 마지막 남은 칠 벗겨진 낡은 선반 하나를 팔아 ‘추석 뽀나스’를 만원씩 골고루 지급한 뒤 공장문을 닫고 채권자들을 잠시 피해 다니다가 덜컥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사장님의 노래는 이런 것이었다. “툭하면 돈이야 툭하면 돈이야 돈 때문에 난리야... 그놈의 돈이 사람잡구나 툭하면 돈이야 툭하면 돈이야 그놈의 돈좀 벌어봅시다 나~~~도 한번 벌어봅시다아”(마이킹 노래, ‘툭하면 돈이야’) 과정은 공정한가.

기회가 평등해야만 ‘과정의 공정’을 기대할 수 있고 과정의 공정을 밑바탕으로 결과는 정의로울 수 있다. 출발선의 적용이 달랐던, 다시 말해 평등한 기회를 갖지 못 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몇 년 전 흔쾌히 촛불을 들었던 이유 가운데 기저에 깔린 움직일 수 없는 원망과 염원이 여기에 있다. 분노가 국정농단에 총체적으로 수렴됐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공부에서 제외됐던 분노, 입시비리에 대한 분노, 말 몇 마리에 대한 분노, 무엇보다 정의로운 결과를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의 구조에 대한 분노... 각종 분노가 촛불혁명을 완성했지 싶다. 결과는 정의로운가.

지금이라고 다를까. 한 번 더 촛불을 들어야 한다. 제대로 하라고. 지명철회가 필요하면 하라고. 사퇴가 필요하면 하라고. “이왕 그슬린 얼굴 그냥 밀고 나가야 더 이상 밀리지 않는다”는 주장은 지명철회와 함께 철회하고 조금 더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자고 한 번 더 촛불을 들어야 한다. 우리 모두 기대를 놓지 못하고 희망의 끈을 스스로 만들어가려 심정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이유가 아마 이것이지 싶다. 기회가 평등하지 않았더라도 과정이 공정할 수만 있다면 그나마 약간의 정의는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그게 아니다.

우리 모두 멈칫멈칫하는 사이 이번에는 대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그들은 애초에 선택받은 자들이어서”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든 ‘촛불의 의미’를 읽어야 한다. “정치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언행은 없다. “검찰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말 역시 하지 말아야 한다. 고발이 들어왔고 범죄의 개연성이 있는데 검찰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무혐의’도 있고 ‘불기소’도 있고 ‘죄가 안 됨’ 처분도 있는데 어째서 모두들 이렇듯 성급한가. 이런 때는 제발 앞서가지 말자. 청문회가 필요하듯 검찰수사도 필요하다.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염원은 계속돼야 한다. 우리의 마지막 노래는 따라서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민중가요, 그날이오면)

노래는 힘이 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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