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보내고 앉은 티비 앞에는..

날이 뿌옇게 밝아오는 시각, 벌떡 일어나 밥을 짓고 서하 먹을 국을 끓였다. 양파계란국이었다. 두부도 잘게 썰어넣었다. 아내는 정토회 모임으로 어젯밤 집을 비웠다.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밥상을 준비해두고 서둘러 밭으로 갔다. 김장 무씨를 뿌렸다.

건너편 밭으로 가니 고라니가 그물망을 넘어뜨려 팥밭으로 들어간 듯했다. 군데군데 팥잎을 뜯어먹은 자국이 나있었다. 그물망을 손질하고 가을감자를 살폈다. 팔월 가뭄으로 가을감자가 이제야 싹을 피우고 있었다. 밭고랑 가득 자란 쇠비름과 바랭이를 뽑아냈다. 너무 늦게 자라는 감자가 걱정스러웠다.

서하는 밥을 참 잘 먹는다. 주면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밥상머리에서 서하를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 아침밥상 앞에 나타난 서하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오목조목 예쁜 얼굴로 여전히 생글거렸다.

“나 오늘 산내 생활기술교육에 가야 해. 서하 어린이집 갈 때 같이 가자.” 지난 유월부터인가, 남원 산내에서 생활기술교육이라는 강좌가 마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보름이와 아내가 떠밀 듯 나를 교육장으로 내보냈다. 그동안 세면기 교체하는 기술과 실리콘 바르는 기술을 배웠었다.

▲ 김석봉 농부

“오늘은 무슨 교육이세요?” 보름이가 물었다. “변기 교체하는 교육이래. 그렇잖아도 지금 우리 변기 고장 났잖아. 고치는데 도움이 되겠지?” “잘 됐네요. 지금 딱 맞는 교육이네.” 열흘쯤 전부터 화장실 변기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밥을 먹는데도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변기교육은 지난달에 이미 해버렸다고 했다. 오늘은 싱크대 배수관 교체와 수도꼭지 연결하는 교육이라고 했다. 비교적 간단한 기술이어서 한 시간 만에 교육이 끝나버렸다.

점심시간에 마쳐야할 교육이었다. 교육 끝나면 아들놈과 만나 유성식당 돼지국밥을 먹자고 약속한 터였다. 그래서 아들은 도시락도 싸지 않았다. 난감한 마음에 전화를 하니 아들이 금세 달려왔다.

“너 점심은 어쩌냐?” “뭐, 사무실에서 사발면 하나 먹으면 돼요. 집으로 가?” “아니, 등구재 입구로 데려다 줘. 등구재 넘어 걸어서 가려고.” “날씨도 찌뿌등한데 비라도 내리면 어쩌려고.” “비는 오후부터 온대. 걱정 마라. 등구재 주변에 오미자가 얼마나 익었는지도 보려고 그런다.”

산내에서 우리 마을 사이에 높은 고개가 하나 있는데 그게 등구재다. 걷기에 좋은 오솔길이 나있는데 지리산 둘레길이기도 하다. 등구재 초입에서 내렸다. 가파른 오르막을 조금 오르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안개가 앞을 가렸다. 오미자 둘러볼 상황이 아니었다. 바쁜 걸음으로 등구재를 넘는데 벌써 온몸이 비에 젖었다.

이렇게 비를 맞으며 걸어본 적이 언제였나. 아득한 옛날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강둑길을 걷고 헤어져 돌아오며 만난 소나기가 생각났다. 그런 감상적인 빗길이 그리웠는지 내 발걸음은 차츰 느려지고 있었다.

정토회 모임을 마친 아내가 돌아와 있었다. “보름이 카페로 내려와요. 커피나 한 잔 하게.” “그래, 씻고 내려갈게.” 보름이는 캘리그라피를 배워 카페 구석구석에 이런저런 글을 써두었다. 하나하나가 정답게 느껴지는 글귀였다.

‘꽃 보고 예쁘다 예쁘다하는 그대, 나는요 그런 그대가 백배 천배 예뻐요.’하는 글귀와 ‘사월에 피는 꽃도 있고 오월에 피는 꽃도 있다. 인생은 먼 길이다.’라는 글귀가 특히 눈에 띄었다.

“여름엔 손님이 좀 왔냐?” “제법 왔어요. 요즘은 둘레길 걷는 손님보다 그냥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요.” “그 다행이네. 그래 그렇게라도 된다니 잘 됐다.” “이번에 커피 바꿨는데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 봐주세요.” 보름이가 두 잔의 커피를 내왔다.

“내 입은 술맛이나 분간하지 커피맛은 분간 할 수가 없다.” 아내는 눈을 흘겼고 보름이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아내와 보름이와 셋이서 커피를 마셨다.

“오늘 저녁은 금계식육식당에서 고기 구워 먹어요.” 골목 평상에서 이웃들과 노닥거리면서 아들놈의 전화를 받았다. “할아뷔이, 우리 고기 먹으로 가요.” 전화기를 서하에게 넘겼는지 서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러자. 다들 준비되면 전화해라.”

빗줄기를 따라 어둠이 한 점씩 떨어지는 시각이었다. 구운 돼지고기를 상추쌈에 싸 서하에게 먹이는 아들 내외를 바라보는데 까닭 모를 울컥함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래. 우리 서하 많이 먹어라.” 한동안 서하의 그 오물거리는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아들에게 상추쌈에 고기 한 점 싸 먹이지 못한 날들이 떠올랐다. 무정하고 무심한 아비를 둔 아들이 앞에 앉아 딸아이에게 정성껏 고기를 먹이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여름 나느라 고생 많이 하셨어요.”보름이가 건배를 하자고 했다. “너희도 고생 많았다. 이렇게 또 한 여름이 가네.”

아내는 칠월 중순부터 엊그제까지 손님 치르지 않은 날이 없을 지경이었다. 보름이 카페도 손님이 꽤 많이 붐볐다. 그 와중에 아들은 아들대로 서하 보살피랴, 직장 출근하랴, 몸을 쓸 대로 썼다. 나도 고추 따고 농사 돌보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낸 우리 가족이었다. 서로 다독이고 위로하면서 위안을 나누는 자리였다. 운전을 해야 한다며 아들은 맥주 반 컵을 마셨다.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 뉴스를 본다. 이런저런 구설로 장관후보자가 시달리는 소식을 듣는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재산가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렇게 성장한 딸의 사연에 놀랐다. 그런 사람이었던가 하며 고개를 몇 번이고 갸웃거렸다.

퍼뜩 굶어 죽었다는 탈북모자의 사연이 떠오른다. 자욱한 석탄가루 속에서 기계에 끼어 죽은 그 젊은 노동자의 월급이 생각난다. 허공에 매달려 발버둥치는 그 늙은 노동자가 떠오른다. 이 세상의 옳고 그름을 생각한다.

대학에 들어간 아들을 서울의 반 지하 월셋방 퀘퀘한 곰팡내 속에 팽개치듯 버려두고 돌아오던 날 차창에 기대어 흘린 그 눈물이 기억난다. 며칠 전 집 마당에서 우리집 낡은 민박시설을 탓하며 발걸음을 돌리던 그 사람들, 등 뒤에서 안타까워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꽤나 진보주의잔데 나와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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