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올해도 7월초에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여름은 더 길어지고 더 더워졌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날씨가 아니라 매년 되풀이되는 기후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이를 두고 기후변화라고 하고, 이에 모든 지구인이 나서서 대처하려는 국제적 약속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1997년 교토의정서와 2015년 파리협정이다. 그럼에도 기후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지 못하고, 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도 문제가 있겠지만 지구의 골병이 이미 깊을대로 깊어져 단시일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 이영균 녹색당원

이런 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둘로 갈리는 게 아닌가 싶다. 누구에게는‘발등의 불’이고, 누구에게는 ‘강 건너 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당장 꺼야 한다. 그러나 강 건너에서 난 불은 어쩌면 신나는 구경거리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발등의 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강 건너 불을 즐기는 사람들이 쉽사리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강 건너 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들이 누구인지에 따라 기후변화로 인한 해로움을 줄이기는커녕 더 키울 우려도 없지 않다. 현재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지구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대부분 기후변화를 강 건너 불이라고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 온난화라고 하지만 쉽게 말하면 지구가 열을 받는 것이다.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가 열을 받으면 그 열로 인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소 불편해진다. 더러 다른 열을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지구가 열을 받으면 그 열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지구가 열을 받고,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여러 세기 전 산업혁명으로부터 비롯된 일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이상 징후가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더 길어진 여름과 더 뜨거워진 폭염, 극심한 가뭄과 홍수의 반복을 직접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이뿐이 아니다. 생태계에서 사라져가는 개체들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헤아릴 수 없기까지 하다.

한 출판사에서 나온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온난화의 무서운 결과를 보여주는 ‘지구 온난화의 비밀’이라는 글이 나온다. 이 글은 ‘세상에 관심을 가져요’라는 단원에 들어 있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보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곧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래서 단순히 기후변화라고만 할 게 아니라 기후위기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아니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대처하고 줄여나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공론의 마당은 더 커져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1991년에 창간한 격월간지 <녹색평론>의 창간사 한 대목을 옮기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환경재난이 제기하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으로부터 자꾸만 도피한다면, 모처럼 이 위기가 인간의 자기쇄신이나 성숙을 위하여 제공되는 진정한 도전에 성실하게 응답하지 못하는 결과가 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이 생태학적 재난은 결국 인간이 진보와 발전의 이름 밑에서 이룩해온 이른바 문명, 그 중에서도 특히 서구적 산업문명에 내재한 논리의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사회적, 인간적, 자연적 위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진실로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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