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준 칼럼] "그땐 그랬지"

읍참마속(泣斬馬謖)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흥준 상임고문l승인2019.08.23l수정2019.08.2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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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구 창신동 ‘언덕 위의 검은 집’. 산비탈 루핑이 너덜거리는 골목길에서 6살 어린이는 노래를 부르며 뛰어놀았다. “네가 좋으면 내가 싫고 내가 좋으면 네가 싫고... 비 오는 날이면 공(空)치는 날이고 달 밝은 날이면 별 따러 간다. 에헤야 데헤야 에헤야 데헤야 에에에에 에에에에 헤야... 네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콕콕 찔렀지 내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콕콕 찔렀나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주는 색시가 더 좋더라 에헤야 데헤야 에헤야 데헤야...”(블루벨즈, 열두냥짜리인생) 그 땐 그랬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내용의 함의는 더더욱 모르고 그냥 라디오를 따라서 부르는 노래였는데 하루 벌어 한 끼를 먹네마네 하는 노동자 아버지는 마냥 흐뭇해 하셨다. “짜아슥이 나를 닮아서 노래는 잘 한단 말이지” 하루 한 끼라도 챙겨 먹이는 게 급선무였던 어머니는 아버지 들으라는 듯 조용히 뇌까렸다. “에구구... 노래 잘 부르면 먹을 게 뭐 생기나?” 모두들 어려웠고 모두들 헐벗었으되 모두들 자발적으로 인생을 긍정하려 애쓰던 시절. 전쟁의 상흔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그 때. 그 땐 그랬지. 63년도였지.

▲ 박흥준 상임고문

세월이 껑충 뛰어 사하구 신평동. ‘회색 블로크집’ 좁은 방에서 신병으로 누워계시는 아버지와 고등학생인 아들 사이에 수시로 논쟁이 벌어졌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자 상이군인이었던 아버지. 이 땅의 마지막 선비였던 아버지... 그리고 10월 유신과 교련수업, 군부대 입소(그 때는 고등학생도 해마다 하루 일정의 입소를 해야 했다)가 못 마땅한 것은 물론 한국적 민주주의에 회의하고 절망했던 아들. “아버지. 박정희가 죽어야 했는데 엉뚱한 육영수가 총을 맞았네요.” “무슨 소리냐. 너 조금 배웠다고 함부로 말하면 큰일 난다. 대통령은 성군이야. 우리 모두 밥을 먹게 해 주신 분이지. 통일벼 덕에 너랑 내가 간장에 밥술이나마 뜬다. 그런 소리 하지 마. 고마워해야 해.” 그 땐 그랬지. 74년도였지.

이어지는 논쟁. “박정희 아니라도 밥은 먹습니다. 감자든 고구마든.” “너 일제시대가 어땠는지 아냐? 큰아버지가 머슴살이해서 고무신 한 짝 아버지한테 사줬다. 얼마나 기뻤는지. 고무신을 가슴에 안고 다녔다. 신는 게 아니라. 그런데 지금 너는 운동화를 신고 있다.” “그 건 일제 때문이지요. 어쨌든 박정희 이런 식으로 계속 하면 얼마 못 갑니다. 새마을 운동이요? 천리마 운동이랑 뭐가 다릅니까.” “너 이 자식. 끓기도 전에 넘치고 있네. 입 다물어. 죽지 않으려면. 잡혀가지 않으려면. 가서 공부해 임마!” 경제력을 상실한 아버지는 하루 종일 집에 누워계셨고 아버지와 아들은 답도 없는 논쟁을 이어갔지. 그 땐 그랬지. 74년도였지.

그러는 사이 이수근이 위장자수(?)를 하고 김신조가 생포되기도 하고 이웅평이 미그기를 몰고 오기도 하고 남파간첩과 이에 포섭된 고정간첩이 수시로 일망타진되기도 하고 이승복 어린이가 일찌감치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 외치기도 했다. 인혁당에 통혁당에... 월남이 패망(?)하고 구덕운동장 궐기대회에 오후수업을 빼먹고 동원된 중고등학생들이 땀 뻘뻘 흘리며 팔뚝질을 했다. “무찌르자 북괴군! 상기하자 6.25! 때려잡자 김일성! 이룩하자 유신과업!” 그 땐 그랬지. 75년도였지. 요즘 나오는 북한의 어떤 모습과 사뭇 방불했지.

오제도부터 시작해 이건개를 거쳐 황교안에 이르기까지 공안검사 전성시대는 8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북한이 수시로 간첩을 남파한 것도 사실이지만 고문 끝에 ‘만들어진 간첩’이 여차하면 지면을 장식한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아울러 ‘밥을 먹게 해 주신 박정희 대통령’과 ‘인자하신 육영수 여사’를 존경하고 흠모해 그 분들이 돌아가셨을 때 만인이 우러 옌 것(엎드려 통곡하며 상여를 뒤따름. 정철, 장진주사)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74년과 79년 우리는 북한보다 훨씬 앞서 국모(?)와 나랏님(?)을 여의었고, 지난 날 또는 요즈음의 북한과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북한보다 한 발 앞서갔던 건 확실하다. 지금도 앞서가고 있다.

북한이 단거리미사일을 수시로 쏘든 문재인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든 일정한 감정조절을 하며 멀리 보고 조금씩 움직이는 현 정부가 국민들에게 믿음으로 새겨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여서 요즘 나는 어쩌다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면 귀를 막고 시간을 견딘다. 모두가 문재인을 욕하고 모두가 김정숙 꼴 보기 싫어 미치는데, 아무리 여기가 그런 땅이라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한 것 아닌가 싶다. 근거 없는 사실과 주장에 입각해 쌍욕을 내뱉고, 그건 가짜뉴스라고 조심스레 말씀드렸다가 오물 한 바가지 뒤집어 쓰는... 에휴. 두문불출이 차라리 낫지. 그나마 정신건강을 해치지 않으려면.

한 30여 년 전 김대중이 싫다는 친구에게 왜 싫은지 물어본 적이 있다. “김대중이 왜 싫으냐?” “빨개이 아이가. 거짓말쟁이이기도 하고.” “빨갱이는 그렇다 치고 김대중이가 거짓말 한 게 뭔데?” “몰라서 묻나 짜슥아. 안 나온다 카디 또 나올라꼬 저 지랄을 친다 아이가.” “그건 영삼이도 마찬가지 아닌가? 대통령직은 안중에도 없고 일찌감치 마음을 비웠다는 사람이 3당합당은 왜 하는데?” “그거는... 에에 또 그거는... 모르겠다. 하여튼 김대중은 싫다.” “싫은 이유를 대라니까. 구체적으로...” “묻지 마라 짜슥아. 하여튼 싫다. 그만 하고 술이나 묵자.”

30여 년 전에는 그랬다 치고 우리는 지금도 그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아니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이성을 외면하고 논리는 배척해 버리는 우리에게 드디어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 경제가 폭망하고, 안보가 실종되고,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경제가 폭망했다는데 어째서 굶어죽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지? 안보가 실종됐다는데 북한은 왜 쳐들어오지 않고 발사체만 동해바다 저 멀리에 쏘아대며 미적거리지?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는데 왜 모두들 리그앙과 프리미어리그, 류현진에게만 관심을 쏟지? 왜 송혜교와 구혜선에게만 귀를 쫑긋하지? 그 말이 맞다면 쌀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야 하고 마실 물도 없어서 개울에 입을 대야 하는데... 정말 이상하다.

복음이 전해진 데 이어 반가운 소식 한 편이 또 도착했다. 왕년의 공안검사께서 구세주로 등장해 가을 장외투쟁을 선포한 것이다. 오매불망 무엇이, 그 누구가 안 되기만 학수고대하던 남한 땅 하고도 남녘의 모두가 이 반가운 소식에 환호하면서 한편으로는 비분강개를 하고 있다. “한 5년 지나봐라. 문재인이 감옥 안 가는가. 임종석이든 조국이든 빨개이 떨거지 절마들 싸악 다 철창에 갇히는 기라. 무조건 그리 된다. 기다려 보라문.”

한 30년 세월이 흐른 어느 여름날 오후,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 있을 내 자식이 이런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땐 그랬지.” 지구온난화는 한층 심해졌을지라도 남북이 경제공동체를 이루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노사대립은 여전하더라도 노동자들이 ‘웬만큼의 워라벨’은 유지하고, 경제폭망과 안보실종을 훨씬 뛰어넘어 ‘지구의 앞날’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놓고 사회가 치열한 논쟁을 하는 사이에 무식한 내 자식은 느긋하게 이런 말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땐 그랬지.”

복음과 반가운 소식에 또 한 가지가 더해져 나는 지난 1주일 잠을 자지 못 하고 잠시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며 새벽 3시까지 집앞을 서성였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 국민정서법에 의거해 지금 당장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이 필요하지 싶다. “그 땐 그랬지”는 먼 훗날 읊조리기로 하고...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문재인은 총살감’이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잡혀가지 않는 세상을 우리가 이룩하고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레임덕을 걱정해야 한다. 왜? 할 일이 엄청 남아 있으니까. 방해를 받았든 어쨌든 아직 아무 것도 한 게 없으니까. 그 양반이 수신제가(修身齊家)를 못 한 건 맞으니까.

비합법과 반합법, 불법과 미필적 고의, 소급적용의 적정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저 한 줌도 되지 않는 꼴통들이 기회를 만난 듯 설쳐대고 있고 내일모레 장외투쟁에 구름인파를 모을 걸 확신하고 있으니까. 미루면 더 커진다. ‘강남좌파’라는 비아냥은 그 양반이 앞으로 개인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일이다. 강남좌파의 맥이 우리 역사의 굽이굽이에 연면히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강남좌파의 맥이 역사를 풍부하게 하고 건조한 역사에 온기를 돌게 했던 사실도 우리는 인정한다. 그 양반을 읍참마속하면 촛불정부에 길이 다시 열릴 것 같아서 고심 끝에 한 마디 한다. 훨씬 더 지나고 나서 우리 그 날을 얘기하자. “그 땐 그랬지”라고. “2019년도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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