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안 팔겠다”에 그럼 “안 사겠다”로 시중의 여론이 형성되자 우선 불매운동에 대한 부정적 된소리가 안팎에서 일었다. “일본 기업들의 한국 매출 비중이 낮으니 해봤자 효과도 없다.”라거나 저쪽도 우리 물건을 안 사겠다 맞불 놓으면 우리 농산물 경작자들의 피해는 어쩌누 라든지 “그런 편협하고 극단적인 국수주의적 발상으로 어찌 글로벌 시대를 꾸려가겠는가” 등의 훈장질까지 다양한 논리가 동원된다.

그러나 정작 우리 청년들을 자극한 한마디는 유니클로 일본 본부 간부라는 자의 “한국 불매 운동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특별히 독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평이한 문장 같지만 들여다보면 “어디 해 볼 테면 해보라”는 대놓고 벌이는 능멸이다. 그것은 “그래, 그렇다면 더 구체적으로 더 세차게 한번 해 보마”란 결심을 이끈 수위 높은 도발이기도 했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유니클로는 당장 불매 표적의 선두에 뽑혔다. 매출 떨어지는 소리가 우수수 들린다더니 거기에 기름을 붓는 일까지 벌어진다. 단식 중인 세월호 유족의 천막 앞서 피자와 튀김 닭을 뜯어먹는 엽기적 패륜을 벌였던 ‘일베’하는 아이들이 휑뎅그렁한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가 “우린 입어서 응원하자”라며 주섬주섬 옷을 늘어놓고 인증 샷을 찍어 올리기까지 한 것이다. 콜라보는 성공적이었다. 유니클로 카드 매출이 70%까지 떨어졌다.

궁금했다. 진주도 과연 그럴까. 토요일 오후 충무공동 롯데몰의 ‘유니클로’에 가봤다. 값도 싸고 드나들기 편해 이따금 두르던 곳이다. 들어서니 과연 뉴스서 보던 그림처럼 썰렁하다. 너른 매장에 사람 서넛이 오갈 뿐. 하마 그이들조차 요새 유행하는 ‘유니클로 순찰대’일런가? 객장의 끝 계산대엔 직원 둘이 서 있을 뿐이다. 작정하기론 몇 마디 이야기라도 나눌 요량이었지만 표정들이 이것저것 물을 분위기가 아니어서 두 어장 사진만 찍고 돌아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죽을 맛이란 게 느껴졌다. 서울 쪽 매장은 3개째 폐점했다지 않는가. 

4층 귀퉁이에 침대와 가구 소품 매장이 ‘다이소’ 형태의 잡화점으로 바뀌었다. 흰 바탕에 붉은 띠를 두른 피오피가 ‘노노재팬’ 디자인과 닮은꼴이기에 들여다보니 “매장 내 일본어 표기 상품은 중국 및 글로벌 제조 상품입니다”라 쓰였다. 직원이 다가와 싹싹하게 부연설명까지 한다. “저희 상품 중 몇몇이 일본제품인 듯한 오해가 있으나 사실은 중국서 생산된 것입니다.” 불매 바람이 식겁할 정도이긴 한갑다. 웬만하면 쉬쉬하고 숨기던 것이 ‘메이드인 차이나’였지 않았던가.

기해 왜란이라 부르는 아베의 도발 이후 벌어진 흥미로운 양상은 일본 우익의 논거와 한국 보수의 주장이 함께 간다는 사실이다. 아베가 표방한 정치적 목표는 메이지유신 이후 승승장구하며 아시아를 지배하던 군국주의의 재현이다. 거기에 이르는 관문이 평화헌법의 개정이라. 그 빌미를 적절히 제공해주던 것이 틈만 나면 미사일을 쏴대는 북한이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부터 분위기가 요상해진 것이다. 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에 조성되는 평화 무드는 아베로서는 못마땅하기 짝이 없는 뜻밖의 모양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그 분위기를 추동할 뿐 아니라 고분고분하던 종전의 정권과는 달리 자기 주장이 드세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을 흔들어 차기 총선의 민주당 패배를 이끌어내고 연이은 대선에서 보수 정권 수립을 목표로 삼는 한국 보수의 목표와 남북의 긴장과 갈등국면의 지속을 반사이익으로 챙기려는 일본 극우의 이익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경제침략 와중에도 한국 보수는 아베와 합세해 문재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게 ‘자해’라는 인식조차 없어 보인다. “아사히 맥주를 뿌리면서 불매를 말하는데 사실 저건 맥주는 다 마시고 물을 채워 넣은 뒤 쇼를 하는 것입니다.” “일본인이 한글을 통일시켜서 지금의 한글이 됐습니다” 따위의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씨불이는 일본의 DHC테레비나 우리의 그 잘난 종편 명색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인 것이다.

그런데 노골적으로 일본 역성을 들며 문통을 비난하던 조선일보가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여태 없던 일이다. 주춤해지리라 기대했던 불매운동이 더욱 거세졌기에 이러다 이 바람에 훅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 듯하다. ‘노노재팬’ 같은 앱으로 일제를 가려내고 대체할 국산품까지 연결해주는 우리 청년들의 창발적 움직임은 놀랍다. “걔들이 나은 점이라야 화장품, 애니메이션, 포르노 정도 아닌가?”라고 말하는 그들에게서 우리 세대가 느꼈던 지독한 열등감은 없다. 우리 세대는 미워하면서도 부러워했다. 올림푸스 카메라, 야마하 오토바이, 산수이 전축, 코끼리 밥솥, 소니 워크맨.... 

한동안 고통을 감수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참에 긴 것과 아닌 것을 가려내고 왜에게서 받은 백 년 수모를 벗겨내는 싸움이었으면 좋겠다. ‘말빨’은 죽여주는 북한산을 도입해야 한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