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예쁘지는 않더라도

요즘처럼 더위에 부대끼던 74년 여름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철거민들이 모여 가쁜 숨 내쉬던 부산시 사하구 어느 동네 어느 지저분한 골목에서 웃통을 벗어부친 40대 초반의 남자 어른과 꾀죄죄한 몸뻬의 30대 후반 여자 어른이 마치 오늘 당장 세상이 끝나기라도 할 듯 큰 소리로 싸우고 있었다. 몇몇 동네 어른과 까무잡잡 땅꼬마들이 이제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각자 할 일에 몰두하고 있어서 어쩌면 싸우는 소리가 갈수록 더 커져가기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7평 판잣집 텁텁한 방에서 영어단어 외우기에 몰두하던 나는 “오늘은 또 무슨 일이지?” 부엌의 사각형 창문을 열고 빼꼼 내다봤다.

“나도 살라꼬 몸부림 치는 놈이고오!!!”

“그라모 누구는? 어이? 누구는? 내는 손 처매고 있었나? 오늘 와 일 안 나갔노? 함 말해 봐라. 말해 봐라아... 이 나쁜 놈아아아!”

▲ 박흥준 상임고문

사연은 모르겠으되 철거민촌에서 하루에 두어 번쯤은 일상적으로 목격되는 광경이었기에 ‘그저 그런가 보다’ ‘날씨가 덥긴 덥나보다’ 하고 몸을 돌리는데 몸뻬 여자 어른의 처절한 절규가 날카롭게 고막을 찢으며 무한대 데시빌로 터져 나왔다. 다시 내다보니 몸뻬 여자 어른은 비교적 널따란 비포장도로 한가운데를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몸뻬 여자 어른의 처절한 절규는 이런 내용이었다.

“동네 사람들아아아. 내 말좀 들어보소오오. 저 형편없는 인간이 내를 개패듯 한다아아. 똥뀐 놈이 썽낸다고오오. 아이고오오. 동네 사람들아아.”

정통종합영어를 두세 번 훑었든 수학의 정석과 해법수학을 달달 외우고 있든 그깟 고등학생이 세상을 어찌 알랴. ‘70년대 철거민촌이 형성된 사회적 배경에 관한 일 고찰(一 考察)’이나 철거민 개개인의 ‘절절한 스토리’에 관한 ‘약간의 문학적 관심’ 따위는 먼 훗날의 일이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기에 저렇게 한 서린 비명 한 번 지르면 힘겨운 하루가 또 지나가고 땅바닥을 구르면서 온 몸을 정화한 뒤 여전히 지겨울 게 분명한 노동의 내일, 벌레 같은 삶의 내일을 그 부부는 또 한 번 함께 살아가지 싶었다. 왜? 그 부부가 그 날의 싸움 끝에 갈라섰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았으니까. 어디선가 주워들은 카타르시스 이론을 문득 대충 떠올리며 나 역시 하루를 마감하면 그 뿐.

언론이란 무엇인가. 언론에 대해 아직도 조잡한 이해수준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나는 따라서 그냥 단순하게 생각한다. 동네사람들이 70년대 중반에 그냥 묵묵히 몸뻬 여자 어른의 하소연을 들어주었듯 말이 되든 안 되든 민초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게 언론이라고. 언론이 있어도 해결되는 거 하나 없고 심지어는 ‘어떤 이상한 언론’이 있어 머리만 어지러운 오늘날, 온갖 한(恨)의 스토리를 온몸에 장착한 민초들이 견디다 못 해 내뱉는 하소연에 마이크를 들이대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볼펜으로 받아쓰기만 하더라도 언론은 그 사회적 역할의 기본은 하는 것이지 싶다. 새삼스레 무슨 ‘환경감시기능’이라느니 ‘정보전달기능’이라느니 ‘아젠다 세팅’이라느니 하는 ‘있어 보이는 얘기’는 이 시점 내 소관이 아니어서 잠시 접어두려 한다.

KBS진주 얘기를 하려다보니 도입부가 조금 지루하게 길었는데 서부경남 100만 주민(시청자)들에게는 지금이 그야말로 ‘큰 일이 시작되기 직전’이지 싶다. 바삐 살다 보니 그냥 관심을 주지 못 하는 것일지는 몰라도 진주MBC가 없어질 때는 그랬다 치자. 이번에도 “그런 일이 있나보다” 하며 그냥 지나친다면 100만 주민들은 앞으로 무엇이 잘못되는지도 모르고, 왜 잘못되는지도 모르고, 잘못되는 게 왜 잘못인지도 모르는 채 여생(?)을 보내게 된다. 장담한다.

진주MBC가 없어진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 그 틈을 비집고 서경방송이 설령 약진했다 하더라도 KBS진주마저 중계소로 전락해 자체뉴스를 하지 못 하고 주재기자 달랑 한 명 배치돼 사건사고나 챙기고 아이템(보도자료)만 대충 써 갈긴 뒤 점심 먹으러 그냥 나가버린다면 서부경남은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꾸준히 당하기만 하는, 버얼건 대낮이지만 그야말로 암흑천지가 되고 말 것이다. 자치단체들은 마음껏 나태해 질 것이고 수천억 예산은 아무렇게나 집행되며 사회적 필요에 따른 예산배정 순위표가 단체장의 호불호와 의원들의 나눠먹기, 이른 바 지역유지들의 입김에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질 것이다. 의회 또한 감시카메라가 없으니 질의응답이 시원찮을 것이고 시민단체가 있다 한들 성명서 한 장 지역사회에 전달할 전파매체가 없어 시나브로 사위어갈 터이다. 과연 두렵지 아니한가.

일제히 들고 일어나 KBS진주를 지켜도 모자랄 판인데 지금 돌아가는 판세는 그와 반대인 것으로 보여 무얼 해 보기도 전에 벌써 우려스럽고 심지어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KBS노조가 통폐합에 동의했다는 소문은 그냥 소문으로 그쳐야지 사실이라면 끔찍한 일이다. 게다가 언제 구조조정이 닥칠지 모를 당사자인 KBS진주의 구성원들조차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면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저 봉급만 계속 나온다면 다행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KBS진주 구성원들은 지금 당장 거리로 나와 시민들에게 “앞으로 잘 할 터이니 제발 서명이라도 해 달라”고 애걸이라도 해야 한다.

KBS진주가 예뻐서, 그동안 제 역할에 충실해 왔기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예뻐서’가 아니라 ‘그냥 필요해서’이다. 민주주의는 언론 없이는 지켜지지 않으며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언론은 많을수록 좋다. 지역신문이 있고 유튜브가 있고 SNS가 아무리 활성화돼 있더라도 각자에게는 각자의 분(分)이 있는 법. ‘KBS진주 지키기'에 모두들 나서 힘을 보태야 하는 까닭이다. 일단 지켜낸 뒤 그들에게 가혹하게 요구하자. “뉴스가 왜 그 모양이냐.” “기자도 늘리고 아나운서도 늘리고 시간도 늘려 제대로 해!” 을러대기도 해 보자. “제작기능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시사프로 한 개 지역다큐프로 한 개 이번 개편에 신설 안 하면 시청료 거부운동 곧바로 들어간다. 명심해!” “뭘 이 따위로 만들고 있냐. 제엔장. 늬들 프로 안 봐. 그냥 종편만 볼 거야. 종편이 훨씬 재미있어!”

한 번 없어지면 되살리기 쉽지 않은 게 언론이다. 방송언론은 특히 더 그렇다. 게다가 KBS는 공영방송이다. 시청료를 내는 주민들이 주인이라는 뜻이다. 지난 10여년 제 구실을 못 해 주인을 힘들게 하더니 이번에는 주인에게 큰 영향이 미쳐지는 사안을 일언반구 말 한 마디 없이 밀어붙이면서 주인을 배반하고 있다. 큰일이다. KBS도 큰일이지만 서부경남이 더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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