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맥주 불매운동, 알고하자.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일본제품은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말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일본맥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 자신이 운영하는 매장에서 일본제품을 진열대에서 치우는 업주들이 늘어나고 있다. 단순히 일본맥주를 마시고 안 마시고를 따지기 전에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몰라도 되지만 알고 나면 머리 아픈 사실들이 일본맥주에 숨어 있다.

우리가 아는 일본맥주는 아사히, 기린, 삿뽀로, 에비스, 산토리 정도가 아닐까. 한국은 수입량, 수입액 모두 일본맥주 최대 수입국으로 몇 년 전부터 수입맥주 판매 1위는 대체불가의 굳건한 아사히였다. 그 이유가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것은 한국에 처음 들어온 맥주도 일본맥주였고 조선맥주와 동양맥주의 전신 역시 해방 직후 미군정으로부터 불하 받은 일본맥주회사였다. 칭타오가 그렇고 산미구엘이 그러하듯 일본의 맥주 생산 시설과 기술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회사고 일제 강점기부터 ‘삐루(맥주)’ 좀 마신다던 사람들의 입맛은 일본맥주에 길들어져 현재에 이어지고 있으니 한국인의 일본맥주 사랑은 어쩌면 태생부터 당연한 결과다.

▲ 백승대 450 대표

그러면 우리가 일본맥주를 불매한다고 일본맥주회사에 그 타격이 그대로 전해질까? 일본맥주를 안 마신다고 맥주 자체를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른 맥주를 마시기는 해야 하고 이번 기회에 애국심에 흠뻑 취해 국산맥주를 마시자고? 여기까지는 좋다. 그럼 일본맥주를 수입하는 회사는 어디인지, 과연 국산맥주 애용이 국내 맥주회사를 도와주는 것인지 알아봐야지.

아사히는 롯데 아사히 주류가 판매하고 있다. 롯데와 아사히의 합자회사이며 롯데가 끼어 있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실제 일본에서는 기린과 아사히의 시장점유율 차이가 크지 않지만 한국에서 아사히의 판매량이 기린을 압도하는 것은 아사히가 특별히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것이 아니라 롯데의 엄청난 유통망 덕분이라 보는 것이 옳다. 롯데껌과 칠성사이다를 파는 곳이라면 어디에도 아사히가 입점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백번 양보해서 롯데를 한국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아사히 안마시고 클라우드 마실 사람 얼마나 되나? 롯데가 앞장서서 아사히를 수입하니 롯데의 전 제품군도 불매할 수 있나?

기린의 수입사는 하이트진로다. 불매운동 기간 동안 기린의 매출 감소는 하이트, 맥스, 테라의 반사이익으로 채우면 그만이고 어차피 하이트진로는 맥주에서 수년간 꾸준히 적자를 내고 있으며 소주 팔아 맥주 적자 메꾸는 실정이니 돌려막기식의 이런 패턴이 어색하지도 않다. 하이트진로는 지금의 불매운동을 짚신장수와 나막신장수 형제의 어머니 같은 심정이 아닐까?

OB맥주는 산토리를 수입 판매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일본맥주 불매운동의 최대 수혜자는 업계 1위인 OB맥주다. 불매운동 일주일 만에 편의점에서 제일 많이 팔린 맥주가 카스인데 일본맥주 대신 카스를 마시는 건 어폐가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오비맥주의 주인은 초대형 다국적 주류기업 ABInBev다. 일본맥주 대신 열심히 카스 마시는 건 일본 대신 외국회사 배불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OB맥주는 모회사의 맥주들만 수입해서 팔기도 벅찬 실정이라 신제품 출시할 의지나 여유 따위는 없다. 편의점 냉장고속 수입맥주 라벨을 잘 살펴보면 수입맥주의 거의 대부분을 OB맥주에서 수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삿뽀로와 에비스는 엠즈베버리지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이름도 생소한 이 업체는 안타깝게도 매일유업의 자회사다. 매일유업이 어떤 기업인가? 남양유업처럼 손녀딸이 마약도 안하고 대리점 밀어내기도 안하는 착한 기업이다. 사회 환원 활동에도 아주 적극적이어서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 아이들을 위해 적자를 감수하면서 20년째 특수 분유를 생산하고 있다. 매일유업이 생산하기 이전에는 한통에 수 만원을 주고 외국의 특수 분유를 수입해서 먹여야 했는데 그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이다. 이런 기업이 사업다각화를 위해 자회사를 만들어 수입맥주를 수입판매 하는데 그게 삿뽀로와 에비스라고 우리가 매일유업 제품을 불매하는 것이 온당한가?

이처럼 일본맥주 안 마신다고 단순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불매운동의 반사이익이 외국기업에 갈수도 있고 우리가 믿어 왔던 착한 기업도 있으며 앞에선 웃고 뒤에선 눈 흘기는 롯데나 하이트진로 같은 기업도 있다.

가뜩이나 먹고 사는 것도 바쁘고 피곤한데 일본맥주 불매운동하는 것도 이것저것 따져가며 해야 한다니 이거 너무 한 거 아닌가 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고, 무식한 자가 신념을 가질 때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 조금 피곤하고 귀찮더라도 알고는 하자. 저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할 때까지, 똑똑한 불매운동을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해야 한다.

내가 내지르는 주먹과 발차기가 빈 하늘을 향하는 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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