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적 한국 영화, 예능, 케이팝에서 벗어나자

언제부턴지 나는 <1박2일>이나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 권력과 어둠의 세계를 계속 자가 복제해 그려 내고 있는 한국 영화를, ‘한국의 자랑스러운 수출품’ 중 하나가 된 K-POP을 예전처럼 무심하고 편안하게 보거나 듣거나 즐길 수 없게 되었다.

남성 예능인들로 꾸려지는 예능 프로그램들, 남성들의 로망을 대변하는 전형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로 만들어지는 K-드라마, 상영관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남성 중심 서사의 영화들, 여성 혐오를 바탕에 깔고 있는 K-POP.

이 엔터테인먼트들이 현실과 결코 떨어진 채 만들어지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노골적으로 비추는 판이라는 걸 인지하고부터는 그저 속 편하게 즐길 수 없게 되었다.

▲ 이장원 자유기고가

현실 세계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남성 중심의 세계는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으며 그 안에서 여성들은 계속해서 자리를 뺏겨야 했지만, 고작 엔터테인먼트일 뿐이라는 이유로 이 산업이 품고 있는 문제는 언제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져 왔다.

아무리 많은 여성이 지적해도 여성 혐오가 담긴 장면과 이야기는 여전히 매일 반복된다. 대다수의 여성 엔터테이너와 크리에이터들은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거나 저평가된다. ‘스타’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여성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남성들도 있다.

남성 캐릭터의 폭력성과 여성의 대상화로 상징되는 K-로맨스 드라마는 이제 세계적인 조롱의 대상인데, 제작사들은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이 장르에 성범죄에 연루된 남자 배우를 쓰는 데 거리낌이 없다.

여성 혐오 소재의 이야기에, 남성 연예인들의 실언에, 심지어 범죄에 여자들이 뜨겁게 분노할 때, 남자들은 미지근하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며 받아넘겼다. 여성을 도구화하고 범죄를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개그에 남자들이 크게 웃으며 뜨겁게 박수를 보낼 때, 여성들은 차갑게 식어 갔다.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반응해야 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이런 온도차와 시차는 뚜렷하다. 어떤 남자들은 여성 혐오 개그를 해도 비판받지 않았던 시절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미 낡아 버린 이야기를 반복해도 괜찮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는 사이 문화예술계와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 미투(#MeToo) 고발과 성범죄 사건들이 그야말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런 참담한 파도가 몰아친 뒤에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은 여성들은 당연히 질문을 던지게 된다.

여성이자 시청자이자 문화 소비자로서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듣고 즐긴 영화와 드라마, 노래와 예능들은 여성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여성을 이야기할 것인가? 여성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시선을 깔고 있는 영화, 드라마, K-POP, 예능 프로그램을 소비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국 여성들은 지난 몇 년간 세계 그 어떤 곳의 여성들보다 이런 질문을 분명하게 던지게 되었다. 여성으로서의 나 자신과 내가 처한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은 영화와 드라마를 선택할 때, K-POP과 예능을 소비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거대한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여성들이 이제는 자신이 응원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지지할 수 있는 예술과 문화 상품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여성들은 밖에서 판을 만들고, 안에서 싸우고, 동료로서 팬으로서 여성으로서 서로를 공감하고 지지하면서 지금까지 해온 것과 다른 것을 만들고 다른 것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의 예능과 드라마, 영화에 필요한 것은 여성에게 더 집중해서 말하는 일이며, 이것이 여성의 삶을, 아니 우리 모두의 삶을 좀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와 더 많은 여성의 시선이 필요하다. ‘그까짓’ 예능이, 영화가, 드라마가, K-POP이 아니라는 걸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게으르게 과거에 머물며 변하지 않는 남성들의 세계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온 여성들은 이제 여성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하여, 여성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이 보고 읽고 듣고 나눌 수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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