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올해 봄은 더 힘들었다. 농토가 많이 늘기도 했지만 봄나물 뜯는다고 산에도 자주 다녔다. 얼굴엔 가시덤불 헤집고 다니다 긁힌 자국이 선명하다. 겨우내 볼록하게 나왔던 아랫배가 쑥 들어갔다.

어제는 다래순을 따러 갔었다. 봄철 숲에서 채취하는 나물 중 최고로 치는 것이 다래순이었다. 평상에 모이는 성샌과 영남아지매가 내 뒤를 따랐다. 젊은 시절 산을 자기네 안방 드나들 듯 했을 이 두 이웃은 그러나 이제 많이 늙어있었다. 산을 다녀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했다. 무릎도 허리도 좋지 않다면서도 내 뒤를 졸졸 잘 따라다녔다.

여느 봄나물이 그렇듯 피기 시작하면 금세 뻣뻣하게 세어버리기 때문에 시기를 잘 맞춰야 했다. 산 아래쪽 다래순은 이미 활짝 피어버렸다. 며칠 전 산두릅을 따러 다니면서 봐두었던 다래덩굴을 찾아 비탈진 산길을 기어올랐다. 울창한 소나무숲을 지나 바위너덜에 이르자 거기 다래순이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다래순은 알맞게 부드러웠다.

▲ 김석봉 농부

“김 사장, 좀 쉬었다 하세. 점심시간도 되었고.” 아래쪽 다래덩굴에 몸을 기댄 채 정신없이 순을 훑는데 성샌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성샌은 일흔을 훨씬 넘긴 나이였다. 올라오면서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가장 힘들어했었다.

“그래요. 제가 거기로 올라갈게요.” 시간은 정오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거친 다래덩굴 사이를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온 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휘그이 아부지는 뭘 그렇게 정신없이 따요. 쉬어가면서 하지.” 더운 햇살에 얼굴이 벌겋게 단 영남아지매가 성샌과 마주 앉아 쉬고 있었다. 영남아지매도 얼추 일흔에 가까운 나이였다. 늘 허리가 안 좋다며 평상에서도 몸을 벽에 기대곤 했다.

“다들 많이 땄네요. 내 게 제일 적은 것 같아.” “뭔 소리요. 휘그이 아부지 배낭이 젤로 배가 부른데.” 나는 얼음이 덜 녹은 물병을 꺼내며 제법 불룩해진 배낭을 휙 둘러보았다. 사실 내 배낭이 가장 불룩했다. 암만해도 젊은 내 손놀림이 가장 빠를 거였다.

성샌은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 잡곡밥 두 덩이와 단무지를 점심밥으로 싸왔다. 영남아지매는 밥 한 덩이와 마늘쫑 장아찌와 생멸치조림을 싸왔다. 어제 젓갈장수가 와서 멸치젓갈을 담갔는데 생멸치를 조금 남겨 조림을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부추전과 동그랑땡구이와 팥시루 떡을 싸왔다. 소주도 한 병 챙겨왔다.

“자. 어르신 먼저 한잔 드셔요.” 소주병을 성샌에게 건넸다. “이거 안주로 잡숴봐요.” 영남아지매가 생멸치조림을 성샌께로 밀었다. “떡은 나중에 먹고 이 밥을 먹게.” 성샌이 밥 한덩이를 내게로 건넸다.

산중턱 바위너덜에 마주앉아 주린 배를 채웠다. 각자 싸온 음식을 자커니 권커니 나누어 먹었다. 후식으로 영남아지매가 가져온 콩두유와 성샌이 가져온 수입산 씨 없는 포도 대여섯 알로 입가심을 하고 아직도 얼음이 덜 녹은 차가운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몸속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바위에 걸터앉아 땀을 훔치며 숲 사이로 빼꼼히 드러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고 푸른 하늘이었다. 아, 눈물 나도록 눈부신 오월, 저 먼 하늘 아래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득 오래전에 내가 살던 그 세상이 떠올랐다. 그 세상에서 함께 어깨 부딪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골프장 반대운동을 하던 그 마을, 마을회관에서 머리 맞대고 집회를 준비하던 이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사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댐 반대운동을 하던 그 마을, 당산나무 아래서 머리띠를 묶어주던 이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노인네는 아직 살아있을까.

그리고 그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진주 중앙시장 어물전 귀퉁이서 홍합을 까던 그 아주머니는, 도립병원 앞 허름한 주점 매캐한 연기 속에서 노가리를 굽던 그 뚱뚱보 아주머니는, 이른 아침 주공아파트 앞 부식가게에 판두부와 콩나물통을 배달해주던 그 털복숭이 사내는, 서너 해 동안 함께 사무실에서 일하던 그 젊은 여성활동가는.

아, 이처럼 눈부신 오월에 그이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나는 이 높은 산에 올라 다래순을 따고 있는데. 나는 이 적막한 숲속에서 두 늙은 이웃들과 식어버린 주먹밥덩이로 배를 채우는데. 그야말로 나는 이 두 늙은 이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눈부신 오월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그렇구나. 나는 그저 저 두 늙은 이웃과 다름없는 농부요, 노인네로구나. 이 산골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한 인생에 지나지 않구나. 나는 결코 그 어떤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이 마을에 들어와 사는 동안 나는 제법 폼을 잡았던 것 같다. 한때 큰 단체의 대표까지 했다는 경력과 자부심을 가지고 어깨에 한껏 힘을 주었던 것 같다.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에 나와 말 꽤나 하고, 내로라하는 사람들을 질타할 수 있었던 것에 허리 꼿꼿이 펴고 살았던 것 같다.

시를 쓴다고, 내가 쓴 시가 지역 문학동호인 기관지에 실리는 것에 목을 뻣뻣이 쳐들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제법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우쭐거리며 살았던 것 같다.

마을기업을 하고, 체험마을을 운영하면서 함께 하는 이웃 노인네들에게 말이 안 통한다며 마구 윽박질렀던 것 같다. 그들이 살아왔던 그 오랜 세월을 이해하지 못하고 송두리째 갈아엎어버리려 했던 것 같다. 답답하다고, 갑갑하다고, 왜 그리도 못 알아듣느냐고, 내가 이처럼 희생을 하려는데 왜 그리도 이해를 못하느냐고 짜증과 투정으로 가오를 세우려 했던 것 같다.

그동안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러 만났었다. 글쟁이는 글쟁이대로, 기술자는 기술자대로,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성직자는 성직자대로 어깨를 부풀리고, 목에 힘을 주고, 허리를 곧추세운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었다.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차지하고 영주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었다.

그런 이들을 만나고 돌아서면 언제나 혀를 끌끌 차댔었다.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며 곁눈질로 조소를 보냈었다. 가래침을 뱉고 종주먹질을 날렸었다. 그러면서도 마을 골목 평상으로 돌아오면 나또한 그 꼴진 경험과 알량한 지식을 앞세워 이웃 노인네들을 가르치려 들었고, 어깨를 쫙 벌리며 폼 꽤나 잡았을 것이었다.

끊어질 듯 꺾인 허리를 부여잡고 논밭으로 나가는 이웃 노인네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었다. 기초노령연금에 아들딸들이 보내주는 용돈으로도 먹고 살 수 있으련만 골병든 몸으로 억척스레 농사일 하는 모습이 궁상맞아보였다. 보잘 것 없는 푸성귀며 잡곡 따위를 바리바리 싸서 택배기사 기다리는 모습에 눈이 시렸다.

제법 살림을 갖추었으면서도 천 원짜리 군내버스를 타기 위해 오릿길을 걸어가는 이웃 노인네였다. 읍내 장터에서 착한가격 삼천 원짜리 자장면도 한 그릇 맘 편케 먹지 못하는 이웃 노인네였다. 시장에 가면 씨앗과 농약과 연장과 농자재 외에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이웃 노인네였다.

농협 창구 직원에게 통장과 도장을 던져주며 살림을 통째로 맡기는 이웃 노인네였다. 노령연금 장애연금 재산세 주민세가 어떻게 되는지 따져보지 못하는 이웃 노인네였다. 그렇게 한 해가 다 가도록 면사무소 문턱 한번 밟아보지 못하는 이웃 노인네였다.

어쩌면 저런 모습으로 사나싶었다. 나는 결단코 저렇게 늙지는 않으리라고, 나이를 먹어도 고상하게 먹을 것이라 다짐을 했었다. 읍내 장에 갈 때는 장롱을 뒤져 가장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아내와 마주앉아 돼지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바나나와 갈치를 사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내 봄날은 영 딴판으로 흘렀다. 늘어난 농사로 새벽부터 밭에 나가 괭이질을 해야만 했다. 두 마지기나 되는 밭에 감자씨를 넣었고, 고구마를 오백 평이나 심어야 했다. 고추는 천 포기를 심었다. 생강은 다섯 고랑, 우엉도 일곱 고랑이나 심었다. 장돌뱅이란 별명이 무색하게 올해 봄은 장날마저 잃고 지냈다.

산에도 일고여덟 번이나 올랐다. 산두릅 따랴, 산고사리 꺾으랴, 올해는 전에 없이 다래순마저 따 날랐다. 한 줌이라도 더 따려고 아등바등 가시덤불을 헤집고 다녔다.

저 두 늙은 이웃이 내 나이에 그랬을 일이었다.

나는 어느새 이웃 노인네들의 그 궁상맞은 모습으로 이 봄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오릿길을 걸어 나가 천 원짜리 군내버스를 탔고, 읍내에 나가면 바쁘다는 핑계로 모종만 사서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고, 모난 돌이 정 맞으랴 농협 조합원이 되었고, 부조리한 마을행정에 대한 진정서를 어디에도 보내지 못하였다.

“김사장. 이제 그만 내려가세.” 성샌이 짐을 꾸리며 지친 목소리를 토했다. “아이고, 그럽시다. 갈 길도 먼데.” 영남아지매가 바싹 마른 목소리로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여기 다래순 아직도 부드러운데 내일 또 올까요?” 나는 아쉬움에 등 뒤 푸릇푸릇한 다래덩굴을 흘끔흘끔 돌아보았다.

“이만큼이면 됐네. 사돈집에 좀 보내주고, 아들딸 한 줌씩 싸주고, 우리 먹을 만큼은 되네.” 성샌도 영남아지매도 도리질을 쳤다. 앞서 걷는 두 늙은 이웃들의 짐이 무겁게 보였다. 다리를 절룩거리기도 하고, 간간이 끙끙거리는 신음도 들렸다. 비탈진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자꾸만 다 못 딴채 남겨둔 그 부드러운 다래순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못난 욕심이 앞서 걷는 두 늙은 이웃을 조롱하는 듯했다.

집에 들어와 짐을 부리고서야 내 모습이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두 늙은 이웃들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그 시절의 기억도 가물가물해지면 나도 저처럼 가벼워질 수 있으려나. ‘이만큼이면 됐다’는 말을 쉬 할 수 있으려나.

아, 이 눈부신 오월에 잡을 폼도 없이 헐벗은 지금의 내 모습이 내 인생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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