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당시에도 의인은 있었으니...

81년 3월 초였나 4월 초였나. 하여튼 박정희가 죽고 온 국민이 엎드려 울었고 5.18이 있었고 최규하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7-8개월 만인가. ‘최초의 평화적인 정부(’정권‘이 절대 아님) 교체’를 명분으로 ‘역사적인’ 사퇴를 했었지 싶다. 너희가 독재를 아느냐.

10월 유신 뒤 ‘한국적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비웃음 섞어 은연중 가르치던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예비고사에 나오나 안 나오나만이 중요했던 나는, 그 뒤 막연한 정의감을 조금은 갖고 있는, 훗날 절대 돈 안 되는 문리대 학생으로 성장(?)했지만 81년 당시 약간은 주눅이 든 상태에서 그냥 담배 꼬나물고 느긋이 그 장면을 지켜봤었지 싶다. 광주의 폭압이 직전에 있었기에 나뿐 아니라 대다수가 그랬었지 싶다. 너희가 독재를 아느냐.

▲ 박흥준 상임고문

이번엔 ‘통일주체’가 아니라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였다. 날씨는 요즘과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동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선거유세가 있었다. 학교 가 봐야 뭐 하나 싶어 하루는 가고 이틀은 쉬고 하며 철거민촌 7평짜리 루핑 덮은 블로크 집에서 라면빨 후루룩 빨아들이던 나는 확성기 왕왕 소리가 거슬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운동화를 구겨 신고 모처럼 나가봤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의 주특기는 두문불출. 무얼 뽑는 거지? 플래카드에 선거인단 어쩌구가 써 있었는데 아니 우리가 미국인가. 무슨 선거인단? 너희가 독재를 아느냐.

아직은 어렸던 내가 보기에도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1대 4로 겨루는데 4가 지지하는 건 1(전두환)이요 1(야당 후보)이 지지하는 건 애매해서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4는 자기 순서가 오면 기다렸다는 듯 전두환 장군이 구국의 영웅이라느니, 북괴의 남침을 막고 이 땅의 평화를 지키려 일대 용단을 내리셨다느니, 그 한 몸 초개같이 역사에 바치려는 분이 전두환 장군이라느니, 어지러운 이 땅을 북괴의 마수에서 구해내신 분이라느니, 심지어는 육사 시절 축구부 주장으로 일찌감치 리더십을 발휘했는데 뒤늦게라도 이런 분을 대통령으로 모셔야 나라가 발전하고 우리가 살 수 있다느니 일제히 입을 모아 그 분을 칭송했다. 그러면 나머지 1은? 너희가 독재를 아느냐.

나머지 1로 호칭된 그 분은 그렇게 호칭한 내가 보기에 40대 후반쯤으로 짐작됐는데 마이크를 잡은 한 10여 분간 입가에는 게거품이, 목에는 힘줄이 형성됐지만 연설내용은 별 게 아니었다. 아니 내용 자체가 없었다. “제가 야당입니다. 야당을 하는 사람은 의리가 있습니다. 야당을 하는 사람은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야당을 하는 사람은 가난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갑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여러분. 저는 야당입니다. 앞으로도 야당 할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잠시 빌리면 ‘주어’가 아닌 ‘목적어’가 없었다. 아니 무슨 연설이 저래? 목에 힘줄에 이어 핏대까지 세운 것 같은데 무얼 얘기하는 거야? 도대체. 너희가 독재를 아느냐.

그 양반이 주장하는 게 무엇인지 당시에는 몰랐다. 정말 몰랐었다. 막연한 정의감? 막연한 정의감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자고로 없다. 그냥 자기만족일 뿐. 이불 뒤집어쓰고 만세 부르는 일일 뿐. 내가 그랬고 그래서 그 분의 뜻을 몰랐고... 당시는 사회과학이 본격 대두하지 않았고... 사회구성체 논쟁은 훗날의 일이었고... 김지하가 지하에서 암암리에 존경받던 시절이었고... 너희가 독재를 아느냐.

80년대 중후반 어느 날. CA가 슬며시 나타나더니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주의)가 박 터지게 싸우는데 그 다음은 NDR과 국가독점자본주의, 반제반봉건, 신식파시즘이 줄줄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읽어봐도 그게 그거지 싶었고 왜 싸우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식한 내가 보기에... 민족해방은 대충 알겠는데 민중민주주의는 또 무엇인지, 어느 게 앞이고 어느 게 뒤인지. 막연한 정의감 하나로 어설프게 무장했던 나는 도대체 NL과 PD의 구분조차 힘들었다. 너희가 독재를 아느냐.

대충 이해하기를 민족모순을 앞세우는가 계급모순이 우선인가의 차이이지 싶었는데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이룩하자는 게 논쟁의 최종 목적 아닌가? 일단 군부독재를 물리치자는 데 동의한다면 그게 무어 문제인가. 통일전선 전술도 모르나? 순서가 그렇게 중요한가? 주력군과 보조역량 논쟁은 또 어떻고? 당시의 논객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어리석은 내가 보기에는 쓰잘 데 없는 논쟁이 한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민중은 압제에 ‘여전히’ 신음하고 있었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진지했다.

방법론이 중요하다고 계속 치고받는 한 편에서는 노태우가 200만호 건설로 해먹고 수서 개발로 해먹고 이회창이 재벌에게 차떼기로 돈 뜯어 왕창 먹고 파업 박살내면서 해먹는 일이 이어졌다. 에그그. 자고로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더니, 아니 흥한다더니... 쯧쯔... 너희가 독재를 아느냐.

옛날의 에피소드를 회고해 지금 생각해 보니 작금의 상황이 대충은 이해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달리진 건 없구나. 아니 공수가 바뀐 것 말고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구나. 내 맘에 안 드는 놈들은 일단 좌파(우리나라에서는 ‘빨갱이’라는 뜻이 강함)로 거세게 몰고 태극기 부대이든 조원진이든 나경원이든 황교안이든 홍준표든 뭉치기만 하면 좌파독재의 거두 문재인을 물리치고 드디어 정권을 탈환하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내년 총선에서 우리 모두 살아남지 않을까. 그렇다면 좌파독재 개념을 일단은 밀고 가자. 그러면 저 놈들은 그 때 그러면 안 될 일이었다느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느니 자중지란을 일으킬 것이고. 거짓말 열 번 하면 진실이 되어 국민들에게 닿는다. 아니 적어도 영남 死臨跛(사림파)들에게는 닿는다. 조중동과 종편(손석희 제외)이 신이 나서 생중계를 해대니 제반여건도 좋지 않은가.

드디어 독재타도가 외쳐지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전사, ‘나다르크’로 화려하게 등장한 나경원이 80년대 임종석과 이한열과 박종철과 임수경의 자리를 일거에 꿰차고 80년대의 ‘호헌철폐’를 이번에는 ‘헌법수호’가 효과적으로 밀어내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민의의 전당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그들의 구호와는 정반대로 헌법이 수호되지 않는 결과를 낳고 있다. 자기들이 만든 국회 선진화법을 자기들이 짓이김으로써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훗날의 역사에 또 다른 禽獸會議錄(금수회의록)을 쓰고 있다. 너희가 독재를 아느냐.

각설하고... 81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당시에도 의인은 있었다. 50여명의 몇 안 되는 청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거인단 후보들의 전두환 찬양 연설이 두어 번 이어졌을 때쯤으로 기억한다. 그것도 선거랍시고 차출된 선관위원들이 대여섯 명 연설대 주변에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교문을 들어서더니 청중과 후보 사이를 유유히 가로지르며 一切微塵數(먼지, 일체미진수)를 피워 올렸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돈 오토바이가 다시 연설대 앞으로 진입하자 선관위원 딱 한 분이 의자를 들썩이며 일어섰는데 오토바이는 그냥 사라지고 말았다. 그 선관위원은 다시 의자에 앉았고 나머지는 처음부터 계속 앉아 있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연설은 계속됐다. 당시에도 의인은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분은 철거민촌 유일의 짱꾀. 당시까지는 일반적이었던 수타면에 짜장을 부어 주변에 염가로 제공하시고 가끔은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을 만두 한 판 구워 봉양하던 분이었다. 너희가 독재를 아느냐.

그러는 사이 저 남한땅 아랫녘 불타는 대지. 우뚝 솟은 첨탑에 빗발이 창처럼 내리꽃히고, 지진이 나듯 기지국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땅에 엎드린 헐벗은 아낙이 제발 내려오라고 몸부림치며 통곡하고 제발 밥은 먹으며 견디라고 폰으로 하소연하는 사이, 주위의 안쓰러운 시선들이 안타깝게 아낙의 굽은 등을 감싸고 있었다. 바로 엊그제까지. 너희가 독재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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