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에서 아픈 4월을 위로받다'

다시 4월, 초록걸음의 4월도 마냥 초록 길만은 아니었다. 노란 리본으로 우리들 곁에 자리한 세월호의 4월이기 때문이다. 시와 음악이 있는 초록걸음, 반칠환 시인의 시 ‘봄꽃의 주소’와 함께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의미로 양희은의 ‘4월’과 전인권의 ‘새야’를 길동무들에게 들려드리면서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에서 운봉읍을 거쳐 인월면까지의 걸음을 시작했다.

 

▲ (사진 = 최세현)

봄꽃의 주소 / 반칠환

숨어 핀 외진 산골 얼레지 꽃대궁 하나
양지꽃 하나
냉이꽃 하나에도
나비가 찾아드는 건
봄꽃 앉은 바로 그 자리에도
번지수가 있기 때문
 
때로
현호색이 보낸 꽃가루를
제비꽃이 받는 배달사고도 있지만
금년 온 천지 붉고
내년은 또 노오랄 것은
봄꽃 앉은 바로 그 자리에도
번지수가 있기 때문
 
가방도 아니 멘 나비 때가 너울너울
모자도 아니 쓴 꿀벌 떼가 닝닝닝
자전거도 아니 탄 봄바람이 돌돌돌
금년 온 천지 붉고
내년 또 노오랄 것은
바로 저 우체부들 때문 

 

▲ (사진 = 최세현)

걸음을 시작한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은 이제 막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한 연초록의 숲이었다. 이 숲은 180여 년 전 행정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허한 기운을 막기 위해 조성한 인공림으로, 마을의 안녕을 위한 제사를 지내고 주민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1600㎡의 규모에 30여 그루의 서어나무들이 들어서 있다. 2000년 제1회 아름다운 마을 숲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 숲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는 서어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다. 특히나 요즘 같은 봄날엔 서어나무의 어린 새순이 꼭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서어나무 숲을 지나 운봉읍으로 향하는 길은 람천을 따라 둑방길을 걷는다. 남강의 또 다른 발원지인 세걸산에서 시작한 샘물이 개울을 따라 흘러 람천이 되고 다시 엄천강을 지나 경호강을 이루고 남강까지 흘러가게 된다. 이 둑방길은 해발 450m 정도라 이즈음이 가로수로 심어진 벚꽃이 절정이었고 걷는 내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난분분 흩날리는 꽃비를 사진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 (사진 = 최세현)

운봉읍에서 가왕 박흥록, 국창 박초월 생가가 있는 비전마을을 지나 운봉과 인월면의 경계가 되는 옥계저수지까지의 구간은 둘레길 22개 구간 가운데 가장 평탄한 길이라 체력에 자신이 없는 어린이나 노약자들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코스이다. 하지만 여기서 임도를 따라 흥부골자연휴양림까지 걷는 구간에 가로수로 식재된 자작나무들이 전혀 관리되지 않은 채 부러지고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자작나무는 원래 시베리아처럼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나무인데 그 수피와 수형이 아름다워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긴 하지만 수종 선택에 있어서도 소위 말하는 포퓰리즘이 작용된 건 아닌지 우려가 앞섰다. 자작나무가 생장할 수 있는 기후조건을 고려했을 때 과연 이곳에서도 잘 살 수 있을지 지자체의 면밀한 고민은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 (사진 = 최세현)

흥부골자연휴양림을 지나 인월면에 있는 지리산둘레길 안내센터까지의 호젓한 오솔길은 일곱 살 꼬맹이부터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까지, 함께 한 길동무들이 4월의 꽃비 맞으며 걸었던 초록걸음의 여정을 마무리하기에 안성맞춤인 구간이었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숨쉬기도 미안한 4월에 어머니의 산 지리산의 품에 안겨 걸었던 초록걸음은 걷는 내내 위로와 치유라는 화두를 떠올리며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사진 = 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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