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가 아닌 용기에 관해

“요즘 사는 게 재미가 없어요.”

밥 먹다 말고 아들이 툭 던진 한마디에 나는 잠시 숟가락질을 멈췄다. 놀라거나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저 말의 배경이 짐작되었기 때문. 그 사이 머릿속에선 5G 속도로 계산기가 돌아갔다. 남편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아빠도 그렇다.” 이런. 선수를 빼앗겼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남편의 얼굴에선 불경기의 여파를 감내하는 가장의 책임감이 무겁게 배어났다. 아빠의 속뜻을 백분의 일이라도 알 턱이 없는 아들은 이내 생글생글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아빠도 그래요? 나랑 똑같네! 그럼 우리 같이 게임 한판 할까요?” 은근슬쩍 아빠에게 어깨동무를 걸친다. 쯧쯧. 나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녀석의 모든 행동이 어떻게든 게임 건수를 찾으려는 어설픈 수작이라는 것을.

▲ 재인 초보엄마

중간고사를 앞두고 아들은 주말마다 가던 PC방을 2주 동안 쉬고 있었다. 참으로 양심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주말에도 집 근처 도서관에 공부하러 갔는데, 친구랑 (굳이) 나란히 앉을 자리가 없어 친구 집에 갔고, 그 집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전, 후, 중간, 좌우로 게임을 즐겼다는 사실을 나는 다만 모른 척 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일단 도서관까지는 갔으니까. 비록 길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어도 그 정성은 인정해줘야지.

그런 날이면 아들은 마치 인류를 구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만사 피곤한 표정으로 침대에 드러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저 당당한 손놀림을 보라. PC방이 아니라 도서관을 찍고 친구 집에 다녀온 자의 위용인지, 허세인지. 어느 쪽이든 지켜보는 내 속에선 천불이 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봐주는 수밖에. 이것이 아들의 중간고사에 대처하는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공부하다 툭하면 화장실 가고, 간식 먹고, 물 마시러 나오는 녀석이지만, 그 마음에도 왜 부담이 없겠는가. “엄마, 중 3 중간고사가 엄청 중요하대요.” 그러면서 녀석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전에 없이 진지한 말투. 제 딴에 공부가 힘에 부치나. 나는 안쓰럽고 짠한 눈빛으로 아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진짜 고민인데, 중간고사 끝나면 애들하고 어디 놀러가지?” 아차. 하마터면 뒤를 돌아볼 뻔 했다. 방금 누가 뒤통수를 치고 지나갔는데. 그렇지 않고서는 뒷목이 이리 당길 리가 없다.

내 뒤통수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아들은 보기를 제시했다. 1번 지리산 펜션을 빌려서 논다. 2번 경기도에 있다는 친구네 외할머니 댁에 놀러간다. 3번 친구들과 경기도 E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을 끊어서 논다.

이게 다야? 문제가 잘못 됐네. 정답이 없어. 나는 하나하나 안되는 이유를 설파했다. 1번 지리산 펜션은 보호자 없이 너희들끼리 가서 놀기엔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2번 경기도 친구네 외할머니 댁은, 일단 그 집 식구들 동의가 필요하고, 거리도 멀어서 이동과정에 보호자 동반이 필요하다. 3번 경기도 E놀이공원도 뭘 타고 갈 것이며 현실적으로 당일치기가 어렵다.

녀석이 구겨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싸움이라도 하려는 기세. 하지만 나도 물러설 수 없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발생했던 불의의 사건사고들은 차고 넘쳤다. 안전 불감증, 인재, 사고공화국. 어느 새 익숙해져 버린 단어들을 줄줄이 열거한 끝에 모아진 결론은 뜻밖에도 ‘PC방’이었다. 낯선 장소를 피해 실내에서 적당히 오락을 즐기면서 비교적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곳이 PC방뿐이라니. 꿈에도 몰랐다. 그 말을 녀석이 아닌 내가 하게 될 줄은.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는 동안에도 시험날짜는 다가오고. 공부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심리적인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시험은 공정성을 확보한다. 급기야 사는 게 재미없다는 아들에게 이 시간 자체도 공부의 과정이라고 말해줄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아들이 ‘그것’을 공개했다.

짙은 남색 목욕가운. 파랑과 보라 사이 어디쯤에서 색을 뽑았는지 은근히 세련된 색감에, 길이가 종아리까지 내려왔다. 처음엔 ‘이불’인 줄 알았다. “이걸 어디 쓰게?” “중간고사 끝나면 체육대회 하잖아요. 애들하고 같이 입을라고요.” “단체로 목욕탕 가니?” “아니요, 고기 사먹을 건데요.” 체육대회날 종아리를 덮는 남색 목욕가운을 걸치고 앉아 삼겹살을 굽는 아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혹시 기름 튀는 걸 막아주는 옷인가?

그때 보았다. 어떻게든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한 생명체의 절박한 심정을.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아무리 점수나 등수를 강조한들 제대로 들리기나 하겠나. 그래서 결심했다. 아들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내려놓기로. 다가올 시험 점수에 얽매이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집중하는 것. 그런 너의 선택을 인정하는 것.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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