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이 만들 미래에 자유당의 위상은?

공안검사 출신의 황교안 자유한국당(이하 자유당) 대표가 자신의 주특기를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성토집회에서 황교안은 "이 정권의 좌파 독재가 끝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 저의 모든 것을 걸고 이 문재인 정권의 좌파 독재를 기필코 막아내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생전 해보지 않았을, 구호를 외칠 때 허공에 대고 질러대는 주먹질은 아직 어색하지만, 좌파에 대한 가없는 증오가 묻어나는 발언에는 살기가 넘친다. 공안검사를 하면서 사상범과 남파간첩을 많이 상대했을 테니 그럴 만도 할 것이라고 짐작은 한다. 동시에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정권유지를 위해 멀쩡한 유학생이나 어부 등 생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해 그 개인들은 고문과 구타 등으로 폐인을 만들어버리고, 온 나라를 공포분위기로 몰아가는데 황교안도 고위직 공안검사까지 올라가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했으리라는 추정도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최용익 전 MBC 논설위원

공교롭게도 자유당이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에 항의하면서 장외집회에 나섰던 지난 주말은 고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별세한 날이기도 하다. 전혀 별개의 두 사건인 황교안 등 자유당의 색깔론을 앞세운 일련의 발언과 김홍일의 죽음이 묘한 인과관계를 지닌 듯해 편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유당이 총동원한 색깔론에 김홍일의 사망 소식이 더욱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자유당 대표 황교안은 그 날,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대변인’이라고 부르면서 “문재인 정권은 한결같이 좌파 독재의 길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원내대표 나경원도 덩달아 “좌파정권의 무면허 운전이 대한민국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한 술 더 떴다. ‘독재’, ‘공포정치’, ‘공작정치’라는 말이 두 사람의 입에서 수시로 튀어나왔다.

박정희와 전두환 등 군사 독재정권이 통치수단으로 삼았던 색깔론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한명인 김홍일은 여전히 색깔론이 판치는 2019년, 눈을 감았다. 그의 아버지인 김대중에게는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빨갱이’라는 주홍글씨가 따라 다녔고, 김홍일도 ‘빨갱이 자식’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아버지와 함께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맞서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고, 전두환 신군부 시절인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끌려가서는 결국 생명을 단축시킨 모진 고난을 겪었다. 내란음모 사건으로 극한적인 고문을 당하던 김홍일은 자신이 허위 자백을 할까 두려워, 책상위로 올라가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떨어져 목숨을 끊으려다 목을 다쳤으며, 이는 결국 파킨슨병으로 이어졌다. 생전의 김대중은 “나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우리 아들들, 특히 큰아들 홍일이를 보면 가슴이 미어져서 살 수가 없다”는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자유당이 만들어 낸 '좌파 독재'라는 신조어는 정치적 수사(修辭)에 가까운 말이다. 청와대가 헌법재판관으로 자신들이 보기에 흠결이 있는 이미선의 임명을 강행하니, '일방적으로 밀어 붙인다’는 뜻으로 독재라는 말을 쓴 것이리라. 하지만 금방 드는 의문은 문재인 정부가 독재라면 왜 정부가 하려는 입법마다 진통을 겪거나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인가. ‘독재’는 외려 자유당의 정신적 혈통의 선대 조상들인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등의 통치행태를 가리키는 말 아닌가. 그 시절에 황교안이 대통령을 상대로 그런 식으로 발언을 했다면 틀림없이 정보기관에 끌려가 거꾸로 매달려 물고문 등의 치도곤을 당했을 것이다. 그 당시 실제로 정권에 밉보이거나, 약하게라도 대들었던 국회의원들은 남산에 끌려가 반병신이 되어 나오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를 ‘독재정부’라고 규탄하는 황교안의 모습은 자못 비장했지만 다른 한편, 희극배우나 어릿광대를 보는 듯해서 코믹하기도 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문제는 황교안의 색깔론에 근거한 인식이 달라지거나 개선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황은 지난 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권의 핵심은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라며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이들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운동권 출신이 핵심인 현 정권을 몰아내야 한다’는 식의 운동권에 대한 맹목적 증오와 두려움을 드러내 화합과 절충을 위해 앞장서야 할 정치인으로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안검사 특유의 폐쇄적이고 극단적인 심리상태를 보여줬다.

김대중을 비롯해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던 정치인들과 운동권에서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썼던 용어들을 이제는 공수가 바뀌어, 과거 정권 쪽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세력이 야당이 되자 새 여권을 향해 쓸 정도가 된 것일까.

참고로 국경없는기자회에서 발표한 올해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41위를 기록하면서 3년 연속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69위, 박근혜 정부 때는 70위까지 떨어진 적도 있다. 이러니 “독재” 운운한 황교안의 발언을 듣고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더욱이 황은 그 시기 정권의 하명을 받고 인위적으로 간첩을 만들어내던 공안검사 출신이 아닌가.

우려되는 것은 황교안 만이 아니라 자유당의 지도부가 황 못지 않게 극우적이며, 색깔론과 잘못된 역사인식, 그리고 막말 공세에 능하다는 점이다. 이미 “반민특위가 국민들의 분열을 불러왔다”고 해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한 무지를 폭로한 바 있으며 지만원의 5.18 망언에 대한 지지발언 등으로 천박한 역사의식을 드러낸 원내대표 나경원은 “대한민국의 3대 기둥, 즉 자유민주주의와 삼권분립, 시장경제가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작 사기와 배임, 국정농단 등의 불법행위로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재판거래 등으로 삼권분립을 와해시키며, 삼성 등 일부 재벌과의 부당거래 및 부동산 투기 권장 등으로 시장경제를 무너뜨린 정부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들은 바로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당이 배출한 대통령들 아닌가. 나경원은 무식한 것인가. 아니면 후안무치한 것인가.

자유당 지도부의 색깔론 공세의 대미는 정책위의장 정용기가 장식했다. 정은 “결국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유훈을 조선반도에 실현해서 소위 고려연방제를 하겠다는 게 목표”라며 “이번 선거구제 개혁 등에 대한 패스트트랙 시도는 좌파정변이자 좌파반란”이라고 정리를 해버렸다. 참으로 황당하면서도 대담무쌍한 색깔공세가 아닐 수 없다.

이건 농담인가, 진담인가. 정용기도 “공산주의 활동을 하는 문재인이 당선되면 우리나라 적화는 시간문제”라고 발언한 MBC 벙송문화진흥회의 고영주 전 이사장과 생각을 같이 하는 것인가. 민주당이나 청와대는 즉각 정용기의 정신감정을 의뢰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결국은 국민여론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자유당의 낡고 케케묵은 냉전반공주의와 군사독재 찬양, 무조건적인 미국 의존 사고를 여전히 국민들이 수용할지는 차기 총선을 통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마침 자유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선거구 제도 개편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안 등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합의안을 추인했다. 이에 대해 자유당은 “의회 쿠데타”, “의회 민주주의의 사망선고”라는 등의 거친 비판을 쏟아내며 총력 저지투쟁을 선언했다. 자유당은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는 현행제도 고수를 주장하다가 여야 4당의 합의가 다가오니, 국회의원직을 총사퇴하겠다고 엄포를 쏟아내더니, 급기야 비례대표 자체를 폐지하는 안을 제시했다. 당위도 실현가능성도 없는 황당한 안을 들이민 것이다. 그러다가 자당을 뺀 나머지 정당들이 함께 뜻을 모으자 뒤늦게 “좌파독재”니, “좌파연합의회”니 하면서 뻗대고 있는 것이다.

패스트트랙에 올린 안들은 앞으로 240~270일 동안의 숙성과정을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게 된다. 선거제는 게임의 규칙인 만큼 모든 정당의 합의를 토대로 처리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비록 지금까지의 협상 과정에는 빠졌지만 자유당도 협상 테이블에 앉아 얼마든지 자신의 주장을 법안에 반영할 수 있다. ‘무조건 반대’만 외치며 장외투쟁으로 나가겠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몽니’로 비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역효과란 현실정치의 장에서 퇴출을 의미한다. ‘TK 자민련’이라는 말도 들어보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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