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탑 위 “안전 장치 하나 없고 협소, 몹시 위험해”

- 노조원 “특위 구성 농성 해제 조건 아니었지만, 최소 요구 수용하면 내려갈 것”

- 진주시민행동 “특위 구성됐으니 이제 내려와 달라”

진주시의회가 지난 19일 시내버스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최저임금이 고려된 표준운송원가 재산정'을 요구하며 45미터 철탑에서 49일째 고공농성을 펼치고 있는 삼성교통 노조원 2명이 이제 농성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두 노동자(김영식, 문정식 씨)는 진주시가 삼성교통과의 대화 등을 약속하면 농성을 풀고 내려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 45미터 철탑 위에서 49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삼성교통 노조원 김영식(왼쪽), 문정식(오른쪽) 씨

22일 오후 2시쯤 이들에게 고공농성 해제를 요구하는 진주시민행동 대표 2명을 따라 기자도 45미터 철탑 위에 올랐다. 철탑은 오르고 내리는 것부터 위험했다. 철탑 가운데 사다리 하나 있을 뿐 안전장치는 없었다. 꼭대기는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바람이 세게 불면 철탑이 흔들리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탁탁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김영식 씨는 “오래 있다 보면 적응이 된다. 처음에는 멀미도 하고 했지만”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다섯 사람이 자리 잡고 앉으니 공간이 꽉 찰 만큼 협소했다. 철탑 꼭대기에는 안전장치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사다리 쪽에도, 바깥쪽에도 안전장치가 없어 발을 헛디디면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는 구조였다. 잠을 자다 몸부림을 쳐도 마찬가지.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했다. 더구나 두꺼운 철근 몇 개 사이에 두께가 0.5cm정도 되는 철사로 바닥을 다져 가만히 있어도 이곳이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 49일 째 삼성교통 노조원 2명이 고공농성을 펼치고 있는 45미터 철탑 꼭대기. 큰 철근 몇 개 사이에 0.5cm가량 두께의 철사로 바닥을 다져놨다. 바닥 끝에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어 발을 헛디디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날 두 노동자의 귀환을 촉구하기 위해 철탑에 오른 진주시민행동 대표단(강수동, 이환문)은 “특위가 마련이 됐으니 이제 그만 고공농성을 풀어달라”고 권유했다. 진주시민행동은 그간 진주시의회에서 특위를 구성하면 두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풀 수 있도록 설득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진주시의회가 지난 19일 특위 구성 결의안을 통과시킨 만큼 고공농성을 풀어달라는 요구를 전하려 철탑에 오른 셈.

이환문 대표는 두 노동자에게 “감사원 감사도 진행되고 있고, 시의회 특위도 우여곡절 끝에 결성됐다. 삼성교통 파업 사태, 진주 시내버스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벌써 고공농성을 한 지 50일이 됐다. 맨 땅에서 50일 농성을 해도 힘든데 고공농성을 50일 했으니 건강도 우려되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건 없이 고공농성을 풀어달라”고 제안했다.

김영식 씨는 “특위가 구성되면 우리가 고공농성을 풀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한 달 전 윤갑수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도 그렇게 이야기 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진주시가 삼성교통과 파업 문제 등을 논의하는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고 약속하면 고공농성을 풀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임금체불을 겪고 있는 삼성교통에 10억 원의 긴급경영지원자금을 제공해달라”고도 했다. 이 돈은 삼성교통이 점차적으로 갚아나갈 돈이다.

강수동 대표는 이에 “농성하고 있는 두 노조원이 특위를 구성하면 고공농성을 풀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다만 진주시민행동 대표들이 시의회에 특위가 구성되면 고공농성을 풀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주시가 대화 시작이나 10억원 긴급경영지원 자금 제공에 공식적 답변을 주지 않고 있어 안타깝지만 두 분이 내려오면 진주시의회도 특위활동을 빠르게 진행할 거고, 진주시도 그간 말했듯이 대화를 시작하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 철탑을 오르는 모습(왼쪽), 철탑을 오르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고 이 역시 몹시 위험했다.

김영식 씨는 이에 그간 불신이 쌓여온 점을 거론했다. 지난해 8월 삼성교통이 파업을 예고하자 당시 시의회 등이 나서 용역으로 표준운송원가 타당성 검토를 하겠다고 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진주시가 올해 1월 용역 중간발표를 했지만 일부 내용이 조작됐고, 시의회가 이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야 하는데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영식 씨는 아울러 오늘 아침부터 식사를 하지 않고 있다며 단식농성을 시작할 것이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에 진주시민행동 대표단은 극구 만류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단식농성까지 하면 극단적인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이유다. 이에 김영식 씨는 “말씀대로 공식적으로 단식을 시작하지는 않겠다. 일단 진주시의 입장을 들어보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강수동 대표는 “내일 시장 면담을 요구할 것이고, 면담을 해주지 않는다면 부시장이든 국장이든 만나 대화하겠다. 두 노조원의 요구사항을 공식적으로 전달하고 논의하겠다. 아무쪼록 하루 속히 고공농성을 풀고 내려와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환문 대표도 “단식만은 안 된다”고 전하고 “이 문제를 최대한 빨리 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편 자유한국당 소속 시의원 10명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 2명(윤갑수, 이상영)은 이날 1시30분 기자회견을 열어 “진주시민행동 대표 3분이 지난 11일 진주시의회가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본회의에서 가결시키면 고공농성이 해제되도록 하겠다고 확약했는데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고공농성 해제를 촉구했다. 아울러 “노동자들이 제시한 요구사항은 진주시의회 권한 밖으로 진주시와 협의할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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