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딜!! 한 걸음씩만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지난 연말, 답방이 불발됐다고 낙심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낙심만 할 건 아니지요.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따지고 보면 ‘연내답방’이 불발된 거지 ‘답방’이 불발된 것은 아니지요. 마침 기해년입니다. 돼지는 일단 몸피가 푸짐하잖아요. 키워서 잡는 거라지요 아마. 오랜 기다림 끝에 빵때림 한 수로 전세를 뒤엎는다지요. 그게 바로 버저비터 아닙니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래야 재미가 따라붙지요. 극장골은 기다림 끝에 만들어집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은 '그렇게' 된다고 누군가 말씀하신 게 생각납니다. '그렇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애들도 물론 있지요. 그런 애들 비전 보여주며 사알살 달래고, 비전을 제시했는데도 “그러면 사회주의 하자는 거냐, 좌파독재 아니냐. 인민재판이다” 외치며 국회에서 애달캐달하는 애들 입에 엿 한 조각씩 물려서 빙빙 돌리며 입술을 적셔주고 혀끝도 살짝살짝 대게 조금씩 설득하면 한 걸음씩 저절로 나아가게 되는 거지요. 나경원(裸競猿)과 홍준표(訌鷷殍)와 김문수(禽忞獸)와 이언주(彲鶠斢)에게 우리 조금씩 각출해서 까짓 거. 엿 한 조각씩 물립시다. 그래야 망언을 잠시 멈추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내일을 위하여, 우리의 튼실해질 돼지를 위하여.

▲ 박흥준 상임고문

우리의 돼지는 통일 평화 번영 사랑, 조금 더 전진하면 평등. 착취가 폐절되면 저절로 오는 세상 등등입니다. 그 뒤에는 가만히 놔둬도 또 하나 저절로 올 게 확실한 ‘문화융성’이구요. 김구 선생의 소원. 문화강국. 지금은 문화강국의 밑돌을 하나씩 하나씩 놓아가는 과정이지요. 물론 콘크리트를 쏟아 붓고 약간의 양생기간을 인내한 뒤 단단하게 다져진 바닥을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법. 훗날의 문화융성을 위해서는 조급함을 버리고 밑돌 하나 하나 다듬는 게 중요하지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요. 물론 그동안에도 오랜 세월 조금씩은 해 왔지만.

문화융성’이라... 뭐 문화융성이 별겁니까. 이 강산 침노하는 ’왜적’과 '외적'들의 씨를 논리 정연하게 격파한 뒤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프랑스, 이스라엘, 북한 등등이 핵무기를 동시에 폐기하면 그 다음에는 문화융성이 지구촌을 덮습니다. 내 장담합니다. 노동을 하지 않아도 기본소득을 수령해 월 1회씩 영화 보고 축구장 가고 오뎅 하나씩 물고 오징어 다리 질겅질겅 씹으면 저절로 오는 게 문화융성, 김구 선생의 소원, 문화융성 아니겠습니까.

그런 세상. 한번 앞질러서 상상해 볼까요. 가무음곡이 일상화돼 어딜 가나 시끄럽고, 만민공동회가 마당마다 열려서 누구나 한 번씩 마이크를 잡고 기염을 토하고, 노래 못 하는 사람 나름으로는 한 명도 없어서 거리마다 골목마다 광장마다 개인 버스킹이 심야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이어지는 세상. 계속되는 고성방가와 우리를 수시로 각성케 하는 기타의 애드립. 베이스의 든든한 뒷받침이 샤우팅을 가져오는... 그런 세상. 모두가 화가요 모두가 작가요 모두가 설치미술가인 세상. 가끔씩 노상방뇨나 단속하고 고성방가에 두당 천 원씩 얄짤없이 물려서 경찰이 하루 할당량을 겨우 채우는 그런 세상. 청소 아저씨가 다음 날 새벽 “뭐 이리 지저분하게 토해놨어. 으이구. 세상이 어찌 될 건지 끌끌...” 두어 시간 근무한 뒤 최저임금 훨씬 상회하는 일당을 받고 편의점 막걸리 한 병 뒷주머니에 달아매고 흔들흔들 유유히 퇴근하는 그런 세상.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화강국. 별 것 아닙니다. 별 것 아니지만 소중한 세상이지요.

하지만 소중한 것은 잠시 아껴두는 게 좋지요. 내일을 희망해야 오늘의 노동이 고통스럽지 않으니까요. 꿈이 소중하니까요. 씨앗까지 오늘 다 털어먹고 내일은 굶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지요. 내일의 해가 다시 떠오를 터인데 소중한 것이 그 날 예비돼 있다면 그 날의 아침해는 더 찬란하지 않을까요. 아껴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람쥐도 겨울이 오기 전에 도토리를 갈무리하고 나무는 잎사귀를 떨궈서 한겨울을 나고 새 잎사귀가 돋아날 자리를 마련합니다. 천년을 이어갈 꿈이지요. 지혜이지요.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건 이렇듯 소소하면서도 확실한 믿음을 바탕으로 가능해지는 게 아닐까 합니다.

지구상에서 냉전을 쫓아내려는 시도는 한참 전에 시작됐지요. 70년대였지요. 닉슨이 과감(?)하게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마오와 닉슨은 동파육과 햄버거를 서로 나누었지요. 맛있게 먹고 냉전 더 이상 안 하기로 약속했지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핑퐁외교'였지요 아마. 때리면 받고 받아 넘기면 또 힘껏 때리고 랠리가 계속되고 환호와 탄식이 교차하고... 그러는 사이 중공이 중국 되고 자유중국은 대만 되고 대만은 미국과 붙고 중국이 대만에 함포를 날리고 잠시 서로 자제하기로 하고 거기에 일본이 간섭하고 중국과 대만이 경제교류를 하고 이산가족 만나고 남북한이 그걸 벤치마킹하고. 그러면서 냉전의 먹구름이 흰 구름으로 바뀌더니 청정한 하늘이 오색무지개와 함께 얼굴을 부끄럽게 조금 내밀었지요. 그리고 이제는 한반도이지요.

한반도의 백성들은 당시 경악했습니다. 대략 30년을 주기로 똑똑한 애들 깡그리 청소되는 걸 두 눈 똑똑히 뜨고 여러 번 본 데다 오랜 세월 반공교육에 순종하며 겨우 목숨을 연명했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아니 우리의 큰 형님, 아니 우리의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미국이, 6.25 때 공산당의 만행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초토화된 남한에 밀가루를 비롯한 아메리카의 농산물(사실은 잉여)을 아낌 없이 쏟아 부어 우리를 먹이신 부모님이 어떻게 우리의 철천지 원수인 중공오랑캐와 손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정녕 우리를 버리신단 말인가. 아아 이 경악, 아아 이 허탈. 그러면 우리는 무엇인가. 백마고지에서 죽어간 전우들은 어쩌란 말인가. 하염없이 스러져 간 그들의 목숨이 역사에 의미를 얻어 하염없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 시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판문점을 지나고 싱가폴을 지나고 하노이를 지나 세계의 관심이 다시 한반도에 모이는 지금입니다. 작년 이맘 때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장면 하나. 나는 그 분들을 결코 잊지 못 합니다. “봄이 온다” “봄이 왔다” 강릉과 서울, 평양을 오가며 이뤄졌던 그 분들의 공연. 그 가운데 그 분들의 이런 노래.

 

통일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

통일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

우리 민족끼리

우리 민족끼리

 

김옥주 송영 김주향 김성심. 그 외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하나같이 정겨운 그 분들. 우리의 딸 같고 우리의 며느리 같고 이웃 아줌마 같은 그 분들은 “무엇이든 우리 민족끼리 하자”고 하셨습니다. "아니 저것들이. 저것들이. 어어..." 하며 트럼프가 마지 못 해 따라오게... 그래서도 답방이지요. 미뤄뒀던 답방. 이제는 해야지요. 화룡점정까지는 멀었더라도 밑돌은 하나씩 하나씩 놔야지요. 답방은 무산되지 않았지요. 그냥 미뤄진 것에 불과하지요. 금강산이든 개성공단이든 답방 뒤에는 뭐가 달라져도 확실히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비핵화는 지난하고 험난하고 복잡한 과정입니다. 한 걸음씩만. 스몰딜. 스몰딜! 스몰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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