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향유하기만 하려는가?"

“한국 정치가들은 책임윤리 이전에 신념윤리가 없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2013년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직을 던지며 했던 말이다. 그 말은 한국 정치가들의 가면을 찢어 발겼다. 책임감은커녕 정치적 신념조차 없는 정치가로 가득찬 의회라니!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그의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의 두 가지 자질로 역설한 개념이다. 신념윤리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끝까지 지키려는 태도를, 책임윤리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결과가 무엇이든 이를 감당하려는 자세를 말한다.

▲ 김순종 기자

요즘 진주시의회를 보면 “책임윤리 이전에 신념윤리가 없다”던 최장집 교수의 일성이 떠오른다. 화두가 된 사안을 다루는 의원들의 행태 때문이다. 특히 시내버스 정상화 특별위원회 구성, 시의회 활동 인터넷 생중계 시스템 도입에 대한 의원들의 태도는 최 교수의 일성이 온당하다는 데 힘을 실어준다.

진주시의원들은 시내버스 특별위원회 구성을 2월22일 처음 약속했지만,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 의원들은 이 문제를 두고 입장을 번복해왔다. 한 때는 ‘진주시민소통위가 활동하고 있어 지금은 안 된다’는 말로, 또 ‘고공농성을 풀어야 특위를 구성할 수 있다’며, 최근에는 ‘감사원에서 교통과를 감사하고 있으니 안 된다’는 논리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이 입장을 번복해 온 것은 이들이 ‘신념조차 없는’ 정치가였기 때문이다. 사안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이 무언인가 고민하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없는 이들, 이들은 정치가의 신념과 신념을 지키기 위한 열정이 있어야 할 자리를 무엇으로 대신하고 있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진주시의회 인터넷 생중계 시스템 도입 건에서도 이들의 행동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시민단체가 의회활동 인터넷 생중계 시스템 도입을 제안한 뒤 시의회는 올해 상반기 회의규칙 변경을 시작, 늦어도 2020년 인터넷 생중계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지난 달 20일 의원 간담회에서 '무기명 투표'로 인터넷 생중계 시스템 도입 여부를 결정한 것은 이들이 자신의 입장(신념)을 대중에게 공개하길 거부하거나 공개할 만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정치가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시민을 대의하는 정치가가 사안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길 꺼리니, 시민들은 그들이 시민을 제대로 대의하는지 알 길이 없다.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않은 ‘신념 없는 정치인’의 행태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그간 논란이 돼온 시내버스 문제는 특위 구성이 되지 않아 종지부를 찍을 수 없게 됐다. 의회활동 인터넷 생중계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아 시민들은 의회를 방문하지 않는 한 이곳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이 점을 고려하면, 진주시의원들에게 정치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언가를 추진하려는 신념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이들, 이들에게 정치란 권력 자체를 향유하기만 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막스 베버는 이처럼 신념도 책임감도 갖지 못 한 정치가는 ‘더 잘 살고 군림하기 위해 정치판을 이용하는 천박한 정치적 기식자나 사냥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진주시의회 의원들은 부디 정치를 함에 있어 신념과 책임감을 갖고, 시민들이 그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정치는 악마의 수단(강제성)으로 천사의 대의(공공의 이익을 보장)를 달성하는 것”, “정치는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어가는 작업”이라는 막스 베버의 말 속에 정치의 의미가, 그리고 정치가가 갖춰야 할 덕성이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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