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성들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동안 세상이 너무 오래 눈 감고 입 닫아 왔다.

“여자가 처신을 어떻게 했길래.”

“남자들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런 영상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어. 안 본 사람과 꾸준히 보는 사람이 있을 뿐.”

“고교 동창들 중 남자들만 있는 단톡방이 있는데...

사실 여기는 누구한테 보여주기 민망한 글이 끝도 없이 올라오는 곳인데...

다들 이런 단톡방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여자 친구나 아내에게 보여주면 큰 사단이 날 단톡방.”

▲ 이장원 자유기고가

농담으로 소비해서는 안 될 것들이 거침없이 오고가고 공유되는 공간.

음지에서 여성의 신체를 헌팅 트로피처럼 전시하고 물건처럼 주고받던 남자 연예인들의 단톡방.

남성들만이 모인 자리에서, 그들은 여성을 마음껏 평가하고 조롱하며, 자신들의 범죄 행위마저 자기들끼리 아는 농담의 소재로 삼는다.

이지러진 유대감으로 연결된 ‘그들만의 단톡방’에서 여성은 그들의 언어로 성적 대상화될 뿐이다.

‘마음 통하는’ 친구들과 익명의 공간에 있다고 믿는 순간 거침없이 진솔한 말들이 튀어나온다. 그 말들이 외부에 드러나면 ‘농담이었다’거나 허물없이 ‘친한 사이여서 그랬다’는 변명을 해명이랍시고 내놓는다. 남학생 단톡방, 남기자 단톡방, 남자 연예인 단톡방... 10대 청소년부터 장차 교사가 될 교대 남학생들과 번듯한 직장인들까지 예외 없이 똑같다.

승리-버닝썬-정준영-단톡방-강간문화-검경 유착

이 단어들의 나열과 조합은 그냥 이대로 한국 사회의 민낯 그 자체가 아닐까? 승리의 버닝썬만 그랬나? 정준영의 단톡방만 그랬나? 실제로 성폭력을 저지르고, 사이버 성폭력으로 그것을 공유하며 다시 강간문화를 다지며 서로 끈끈하게 연대하는 남성들의 추악한 초상화.

야동과 불법 촬영 영상을 돌려보면서, 성 구매와 성폭행을 하면서밖에 쌓을 수 없는 게 남성들의 우정이라면, 그 남성성의 뿌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만의 단톡방 안에서 서로 폭력을 학습하고 수치심을 공유하면서 끈끈한 유대감을 쌓아 가는 남성 연대. 여기에서 배제되면 그들만의 사회에서 주류에 속하기 어렵다. 그래서 남성들은 ‘야동’이 정말 남성의 본능이라고 믿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 시선을 학습하게 된다.

피해자가 누군지 추측하고, 불법 동영상을 찾아보고, 남자들끼리 누구나 그 정도 대화는 하는데 걸린 사람들이 안됐다고 말하고, 피해자들도 잘못이 있다고 말하고, 남자들의 호기심이나 본능으로 치부하는 반응들은 모두 이 사회에 ‘강간문화’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런 짓거리가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무수한 세월 동안 방치되고 용납돼 온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 너무 많은 범죄에 눈 감고 입 닫았던 사회가 지금을 만들었겠지.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_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

가족, 직장, 학교, 거리, 온라인 등 모든 공간에서, 노동과 여가, 일상적인 생활과 관계 안에 강간문화는 활개를 치며,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침해, 폭력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똑같은 일을 별장에서 저지른 게 김학의이고, 클럽에서 저지른 게 승리이고, 단톡방에서 저지른 게 정준영이고, 학교에서 벌어진 게 수많은 남학생 단톡방과 서울교대 16학번이다. 이 모두는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한 줄기로 꿰어지는 것.

서로의 반사회적 일탈을 남성성으로 격려하고 용인하는 이지러진 문화에서 나온 범죄적 연대인 것이다.

여성들은 불법 촬영물을 보거나 유포하는 게 ‘사회적 살인’이라는 말을 이해하는데, 남성들은 디지털 성범죄 처벌 규정이 뭔지, 그걸 삭제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이야기해야 겨우 심각성을 받아들인다.

불법 촬영물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필요한 일이지만, 그걸 넘어서 이제는 남성들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남성들 사이에서 불법 촬영물은 범죄이며 남성성을 증명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이 병든 문화도 바뀌게 될 것이다. 이제는 ‘나까지 위험에 빠뜨리지 마’, ‘범죄를 공유하지 마’라는 남성들 내부의 목소리가 절실하다. 잘못된 판을 깨뜨리고 이런 일은 범죄라고 분명히 이야기하는 움직임이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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