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새봄과 함께 ‘초록걸음’도 첫발을 내디뎠다. ‘지리산 초록걸음’은 진주환경운동연합 부설기구이다. 지리산 둘레길이 국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위안과 치유의 길이 되고, 둘레길 걷기가 공정하고 착한 여행이 되길 바라면서, 2013년부터 시작했다. 매달 셋째 토요일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

지리산 둘레길은 2007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지금은 22개 구간 총 290Km에 이르는 국내 최장의 걷는 길이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둘레길 길 안내를 하면서 지리산 둘레길은 ‘고개를 넘어 마을과 마을을 만나는 길, 곧장 오르지 않고 에둘러 가는 길, 들녘을 따라 삶과 노동을 만나는 길, 강을 건너 머리칼 흩날리는 바람을 만나는 길, 숲을 따라 숲 속의 뭇 생명들을 만나는 길, 끝끝내 자기를 만나 위안을 얻는 치유의 길, 생명과 평화를 가슴에 안고 걷는 순례의 길’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했다.

▲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

올해 첫 초록걸음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남원 노치마을에서 출발해 구룡폭포를 거쳐 육모정까지 걷는 코스였다. 노치마을에는 250세 된 당산 소나무 네 그루가 백두대간 마루금에 서서 마을을 굽어 보살피고 있는데, 주민들은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며 해마다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하지만 이 소나무는 둘레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 그냥 지나쳐버리는 둘레꾼들도 종종 있다.

노치마을을 지나 만나는 회덕마을에는 억새로 지붕을 이은 조선시대 양식의 샛집이 있다. 꼭 들러야 할 곳이다. 회덕마을부터 구룡폭포까지는 둘레길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아름답고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이 구간에서는 ‘사무락다무락’이라는 곳을 지나게 되는데, 이 사무락다무락은 구룡치를 넘는 소나무 숲길에 돌을 얹고 무사안위를 기원하던 곳이다. 사무락은 소망을, 다무락은 담벼락을 뜻하는 사투리로 ‘소망을 비는 돌담’이라고 할 수 있다. 지리산 정령치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든 구룡계곡과 길이 30m로 비스듬히 누운 구룡폭포는 남원 8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아홉 마리 용이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 지리산 초록걸음 회원들

구룡폭포에서 맛난 점심을 먹고 계곡을 따라 걸었다. 이 계곡길은 지리산 공립공원에 포함된 구간으로 국립공원공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둘레길에 비해 데크 등 인공구조물들이 많이 설치돼 있어 다소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계곡을 따라 육모정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을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기에 온전히 지리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함께 걸었던 길동무들 모두가 흡족해 했던 구간이었다.

30여 명의 길동무들 중에서도 특히 엄마 아빠와 함께 참여했던 아이들은 걷는 내내 깔깔 조잘거렸다. 그 모습은 막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한 히어리나 생강나무의 그 노란 꽃만큼이나 흐뭇했다. 올해 첫 초록걸음의 의미는 노란 꽃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히어리나무 아래서 길동무들이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말해주는 듯 하다. 걸음을 시작하면서 길동무들에게 들려준 박남준 시인의 ‘지리산 둘레길’로 2019년 첫 초록걸음을 마무리한다.

 

▲ 지리산 초록걸음 회원들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 몸 안에 한그루 푸른 나무를 숨 쉬게 하는 일이네 / 그리하여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 그대 안의 지리산을 맞이하여 모신다는 일이네” (박남준 시 ‘지리산 둘레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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