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록단 인터뷰] 선봉 쌀 상회, 문보금 아지매

[편집자 주] 진주지역 청년들(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이 지난해 12월부터 1월말까지 진주중앙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 작은 책자를 펴냈다. 책자 이름은 ‘시장, 추억을 쌓다’이다. 총 8편의 기록을 단디뉴스가 기사화한다. 젊은 청년들의 눈에 중앙시장은 어떻게 비춰졌을까?

 

▲ 선봉 쌀 상회 문보금 아지매(사진 = 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

진주중앙유등시장에서 30년간 ‘쌀’이라는 품목 하나로 자리를 지켜온 문보금 아지매. 중앙시장만큼이나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켰다. 중앙시장 청년 기록단의 한 명으로 아지매의 시간을 기록하고자, 선봉 쌀 상회를 찾았다.

“집에 남편이 도매업으로 쌀장사를 했었어. 자기 재종 형님(육촌 형님)이 쌀장사를 하는데 점원으로 들어가가꼬 그리 장사를 하게 된 거지.”

남편의 영향으로 시작한 장사는 도매였으나, 시간이 흘러 중앙시장 주차장 부지에 상회를 열었다.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된 것은 기존 상회가 시설현대화 사업으로 주차장이 되면서다. 같이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아 은퇴했다.

“(손님이 많이) 없지. 물론 단골이 있지마는. 미리 백화점이나 그런데 주문을 못 했을 때나 어중간할 때 급하면 (우리 상회를) 이용하지. 특히 잡곡 미곡 이런 건 사양길 들어선 지는 오래됐지.”

미곡 시장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구역도 옛날과 비교했을 때 많이 변했다. 오랫동안 이곳을 지킨 아지매도 시간만큼 변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어중간하게 나이도 있고, 경제력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또 일 놓기는 그렇고, 그래서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아. 진주는 농촌 도시이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많으려면 공장이 많고 이래야 하는데 다 사양길로 접어들었지. 세대가 바뀌었으니까, 젊은 세대로 바뀌잖아. 청년들이 시장에 잘 안 들어오지. 보통 해봐야 50~60대.”

 

▲ 선봉 쌀 상회 문보금 아지매(사진 = 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

인터뷰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단골이 찾아왔다. 그래서 고객이 많느냐는 질문을 드렸으나 실례였던 것 같다. 대답하시는 모습은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굳건히 신조를 말하는 아지매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장사꾼이 우리한테 수입산 사가꼬 국산이라 비싸게 팔아 묵는 그런 게 있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절대 그러지 않고 정확하게 국산은 국산이고, 수입은 수입이고, 키로(kg)가 모자라든가 섞어 파는 건 없지. 그런 게 내 장사 신조고. 이것들만은 꼭 지킨다. 그런 게 있지.”

정직과 신뢰는 곧 경영 철학이다. 그것이 중앙시장과 함께하면서 지금까지 장사를 유지해온 비결 아닐까? 그렇다면 중앙시장에서 끊임없이 시도되는 청년 상인들의 도전을 아지매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청년들은 우리보다 많이 배우고, 시야가 넓으니까 우리 시장 상인이 모르는 정보라든가 기술을 따가와가꼬, 여기서 그런 것들 하면 좋을끼그만. 젊은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들고 와서 했으면 좋겠다. 중앙시장만 딱 보지 말고”

융합을 강조하는 시대이니, 청년 상인에게도 무언가를 융합한 독창성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었다. 분위기가 딱딱해져, 조금은 사적인 질문으로 돌아갔다.

“집 치울 게 많지. 아들하고 딸, 가깝게, 같이는 안 살지만, 반찬 같은 것도 해주고 목욕도 가고, 아침에 장사하는 사람은 무조건 돈을 벌든 안 벌든 장사에 와야 한다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기에 젤 얽매여서 생활하지.”

아들하고 딸을 길러낼 수 있었던 이 자리는 어쩌면 굴레와도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느낀 것은 지역이 어디든, 직업이 무엇이든 모든 부모는 같다는 것이었다.

“애들 중고등학교 대학교 보내려고 이리할 때, 열심히 설치고 막 이럴 때 4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 그때가 전성기지. 희망도 보이고, 애들 크는 거도 보고, 지금은 애들 다 키워서 손녀 손자 다 보니까. 할 일이 별로 없으니까. 지금은 지는 해라고 느껴지지.”

아지매는 전성기가 언제일까 하는 질문에 애들이 커가는 모습을 볼 때라고 답하셨다. 우리 옆의 시장 상인들도 어머니이고, 아버지임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지금과 옛날 중 언제가 좋은지 질문을 드렸다.

 

▲ 선봉 쌀 상회 문보금 아지매와 그를 인터뷰한 이주열 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원

“옛날에는 진주장만 있었는데, 지금은 중앙시장 장은 없어지고, 진주 전체에 금요장, 화요장, 수요장. 이런기 많지. 옛날에는 진주중앙시장만 있었는데, 고성, 삼천포, 마산, 진해 상인들이 와가꼬 차로 쌀을 사가고, 그때가 좋았지. 돈도 잘 벌고, 다른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지금 주차장 부지에 기사 데려와서 쌀 가져가고, 거제, 고성, 통영 이 부근 장으로 갔었는데.”

누군가를 인터뷰해본 적 없어 처음에는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하지만 용기 내어 중앙시장을 찾아갔다. 시장의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친근하게 맞아주시며, 거리낌 없이 질문을 듣고 답해줬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런 질문을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경험이 없으니 한 발을 내딛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느낀 듯 아지매는 내 질문을 정말 잘 받아주셨다. 그렇게 전해주신 말씀들은 진심에서 하는 말씀 같아 공감하게 됐다.

특히 인터뷰 내용에서도 드러나는 ‘어머니’에 관한 내용은 마치 내 부모님이 나를 기를 때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부모님이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어머니도 상인, 직장인, 주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름을 잃고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그 사람의 일을 생각해 호칭을 말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같이 사람이 소외되는 세상에서 조금 더 친근하게 어머니, 아버지, 아지매, 아재 등으로 친근하게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