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 정호윤 씨

진주지역 청년들이 중앙시장 상인들을 인터뷰하고, 이를 기록한 책자를 내놔 눈길을 끌고 있다. 책자 이름은 ‘시장, 추억을 쌓다’이다. 책자 제작은 중앙시장에서 친지와 함께 요식업을 하고 있는 정호윤(26) 씨의 주도로 시작됐다. 2015년부터 중앙시장에서 요식업을 해온 정 씨는 “중앙시장을 청년의 눈으로 기록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자 제작에 참여한 인원은 10여 명으로 20대에서 30대의 청년들이다. 이들은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전국청년인문실험 사업에 응모해 2백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지난 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책자 제작 작업을 펼쳐왔다. <단디뉴스>는 이들이 남긴 기록을 향후 기사화할 예정.

14일 시내 모처에서 정호윤 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중앙시장을 기록하며 중앙시장 상인들이 생각과 달리 트렌드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재래시장이 무너져 가는 상황인데 시청에서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며 펴는 정책들의 실효성이 의심된다. 재래시장을 살리려면 빈 공간을 다시 상점으로 채우기보다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사람과 공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마치면서 아쉬움도 많았다고 말했다. 예산과 시간이 한정적이었던 터라 책자 수준이 높지 않고, 고작 100부를 제작해 주변에 전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의 정호윤 씨(26)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재래시장과 청년, 멀다면 멀다고 할 수 있는 관계다. 중앙시장을 기록하는 사업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청년들에게 재래시장은 낯설다.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지금 중앙시장에서 친지의 가게를 도우고 있다. 전역하고 2015년부터니까 4년쯤 됐다. 시장이 생활터전이 되다보니 관심이 가더라. 재래시장이 침체하다보니 3~4년 사이 가게를 접는 상인들을 많이 봤다. 가게가 많이 바뀌기도 하고. 그런 걸 보면서 어떻게 이 분들이 중앙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하게 됐고, 또 그들이 장사하는 공간은 본래 뭘하던 곳인지 궁금해졌다. 이걸 기록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 이번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10여명 정도 되더라. 어떻게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사업에 참여하게 됐나?

“사업을 추진하면서 SNS 등에 청년기록단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다. 대학생도 있고, 시장 주변에 살면서 관심이 있었던 사람, 또 시장주변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 진주가 고향이 아니지만 회사, 학교 때문에 진주에 와 진주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 등이 있었다. 이 분들이 모여 시장 곳곳을 다니며 상인들을 인터뷰 해 책자를 만들게 된 거다.”

- 상인들을 인터뷰하고, 글을 써 책자로 나오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됐나?

“그리 길지는 않았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이번 사업은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전국청년인물실험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전국 100여 곳의 모임을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인데. 예산은 2백만 원 정도 지원받았다.”

- 책자를 제작하면서 인상 깊었던 게 있다면?

“실크, 한복 업체 인터뷰를 하면서 이분들이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느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 트렌드를 좇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들을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서울에서 유행하는 색상이 뭔지, 또 어떤 디자인이 잘 나가는 지 이런 데 굉장히 민감하다. 한복을 끈으로 묶는 게 불편하니, 단추로 이를 대신하도록 하는 그런 기법을 발견해낸 분도 있고. 또 이전에 중앙시장에 화재가 났는데, 이걸 수리하는 기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연구하고 이를 자신의 상품에 접목시킨 분도 계셨다.”

- 젊은 청년들이 중앙시장을 기록하겠다며 상인들을 찾아갔으니, 많이 반겼겠다.

“그랬다.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아들 하셨다. 기록을 남긴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시기도 했겠지만, 자기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니 여러 이야기를 하더라. 옛날 이야기를 회상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본인들도 잊어가던 기억을 떠올려 좋다고 하셨다. 옛날 사진이나 자료를 보여주기도 했다. 상인들 가운데는 연세가 많아 은퇴할 나이에 이른 분들이 많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중앙시장이 발전했으면 하는 열정을 갖고 있었다.”

- 예산이 한정적이라 그런지 책이 100권 정도 나왔다고?

“처음부터 지원사업으로 진행했으니 판매가 목적은 아니였다. 많은 부수를 찍어내고, 완성도도 높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좀 더 완성도 높은 기록물을 차후에 내게 된다면 지역서점이나 도서관 이런 곳에 책자를 비치해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고 싶다. 이번에는 예산도 적고 기간도 짧았다. 그에 비추어보면 책이 잘 나온 편이라고 본다.(웃음) 어쨌든 주변사람들에게만 책이 전달돼 아쉬운 부분이 있다”

- 기록을 시작하며 생각했던 목표가 있나?

“시장에서 일을 하다보니 사소한 걸로 상인들이 싸우는 경우를 자주 봤다. 싸울 일도 아닌데 왜 사소한 일로 저렇게 싸울까 그런 생각을 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봤다. 상인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좀 더 깊숙이 파고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됐다. 아쉬운 마음이다.”

 

▲ 20대에서 30대 청년들이 펴낸 책 "시장, 추억을 쌓다"

- 재래시장 침체는 전국적인 일이다. 중앙시장은 분위기가 어떠했나?

“몇 십 년간 가게를 계속하고 있는 곳도 있고, 빨리 사라지는 곳도 있다. 사람들은 보통 재래시장이라고 하면 변화가 없는 곳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인식이 많았다. 시대는 바뀌는데 재래시장 상인들은 옛 것만 지키려 한다는 그런 생각. 그런데 그런 게 아니더라. 특히 이번에 ‘시장, 추억을 쌓다’라는 책을 제작하기 위해 여러 곳을 인터뷰해보니 이분들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가려고 여러 시도를 하더라.”

- 그럼에도 재래시장 침체는 계속되는 것 같다.

“중앙시장에 온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처음 재래시장에 왔을 때와 지금은 차이가 꽤 있다. 꾸준히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민들의 발길이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희망이 보인다. 젊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맛집을 공유하고 그러니, 일부러 재래시장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다. 재래시장도 앞으로 좀 더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하면 살아남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실제 젊은 사람들의 방문 비율이 좀 높아지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

- 재래시장이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래시장에는 빈 공간이 많다. 근데 대체로 관에서 하는 일은 빈 공간을 상점으로 채워 넣으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상점으로. 근데 상점만 채우다보면 또 다른 경쟁이 생긴다. 그것보다 시민들이 무언가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문화적인 공간을 만드는 게 좋을 거다. 진주는 특히 문화적인 요소가 많은 도시다. 예를 들면 공방 같은 걸 중앙시장 내에 열 수도 있고, 요즘 대형마트에서 유행하는 문화센터를 열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드나들 거고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거다.”

- 책자를 보니 재래시장 안에 있는 청춘다락, 청년몰 쪽도 인터뷰를 했더라. 청년실업이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재래시장이 청년실업을 해결하는데 다소 도움이 될까?

“궁극적인 돌파구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청년들이 무언가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현실을 직시하며 경험을 쌓는 기회는 될 수 있다고 본다. 중앙시장에도 청년몰이 2개 있다. 처음 들어선 청년몰은 대부분의 상인들이 다 나갔다. 한두 곳 남았다. 시작한 지 2년도 안 됐는데.. 인터뷰를 해보니 생각만큼 장사는 안 됐지만 가게 인테리어나 설비도 직접 해보고, 자신의 브랜드를 홍보할 기회가 됐다고 하더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시작했으니 큰 손해도 아니라 하고. 이 경험이 장사를 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현실을 직시하고, 경험을 쌓는 기회는 됐을 거라고 본다. 2차로 들어선 비단길 청년몰은 1차 때보다 좀 더 지원이 많다. 음식의 질, 공간 구성 이런 게 체계적으로 잘 된 것 같다.”

- 재래시장이 앞으로도 필요할까?

“요즘 사람들은 편리한 것만 찾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대형마트에 비해 시장은 매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대형마트에서 느낄 수 없는 분위기가 재래시장에는 존재한다. 그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요즘 트렌드에 맞춰갈 필요가 있다. 특히 자치단체에서 이러한 시도를 지원해줘야 한다. 소비자 중심으로 생각하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상인은 물론 시민을 위해서다. 청년몰 사업도 말은 청년몰 사업인데 위치선정이나 공간구성에 청년들 이야기가 많이 반영되지 않았다. 만약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소비자 위주의 판단을 했다면 효과가 더 컸지 않을까.”

- 앞으로 계획은?

“중앙시장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이테라는 이름으로 단체를 만들었다. 사람, 공간, 추억 공작소라는 구호를 붙였는데, 사람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거였다. 나이테는 나무의 기록을 남기는 지문과 같은 것이다. 앞으로 또 다른 형식의 기록을 남기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최근 꿈꾸는 청년 학교 ‘밥꿈’에서 ‘청년모아 달빛파티’를 진행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청년들이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데, 이게 끝나면 또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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