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의 산촌일기] 아들 내외를 보며 좋은 부모를 생각한다.

왜 나는 남들처럼 좋은 아버지, 지아비가 되지 못할까.. 김석봉 농부l승인2019.03.11l수정2019.03.1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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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가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세상 밖으로 첫발을 내딛은 셈이다. 아침시간이 급하게 돌아간다. 밥 먹는 시간도 많이 당겨졌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뭐하고 놀았대?” “친구들과는 잘 어울려 지내고?” “오늘 간식은 뭐 나왔대? 잘 먹기는 하고?” 가족이 모인 저녁밥상 앞에서는 온통 서하 어린이집 얘기였다. 혼자 집에만 있다 또래의 아이들을 만났으니 무슨 장난을 하는지, 여전히 잘 웃는지,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서하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우리 집으로부터 10km도 더 떨어져 있다.

“아버님이세요? 여기 마천어린이집인데요.” 지난해 연말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었다. 사근사근하기가 깎아둔 배 같은 목소리였다. “댁에 내년에 어린이집 다닐 아이가 있다고 해서 한번 찾아뵐까하는 데요.” “나는 할애비고, 애 엄마는 집에 있으니 언제라도 와보시든가 하세요.” 그날 저녁 밥상머리에서 서하 어린이집 얘기가 나왔다. “오늘 마천어린이집에서 찾아온다고 전화가 왔더마. 찾아왔었어?” “만나봤어요.” 보름이가 그다지 밝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 김석봉 농부

“뭐래? 어떻대?” 아내가 귀를 세우고 끼어들었다. “서하와 같은 나이는 서하 혼자래요. 원생 전부 합쳐 다섯 명이고요. 차 가지고 집 앞까지 와서 태워가고 태워주기도 한다는데......” “혼자라고? 동갑나기가 혼자?” “그렇다네요.” 보름이는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친구와 사귀고 관계를 가지게 하기 위해 보내는 어린이집이었다. 그런데 동갑나기가 없으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은 듯했다.

면소재지에 달랑 하나 있는 어린이집에 동갑나기 신입생이 한 명도 없다고 했다. 하긴 백 세대쯤 되는 우리 마을에 서하와 가장 가까운 나이의 아이가 아홉 살이니 마천면을 통털어도 동갑나기 만나기는 쉽지 않을 일이다. “내일은 저기 산내어린이집을 알아보려고요. 거긴 젊은 귀농인이 많으니 여기 어린이집보단 나을 거 같아서요.” “그래, 그래봐라. 좀 멀긴 해도 아이에게 친구가 있어야지.” 아내가 다독거리듯 말했다.

산내어린이집은 행정구역이 전라북도 남원이다. 경상남도 함양에서 다니기엔 상당히 먼 거리다. 게다가 행정구역이 다른 탓에 거기 어린이집은 차량운행을 못한다고 했다. 아침에 데려주고 마치면 데려와야 하는 처지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 일을 어린이집 졸업하는 날까지 해야 하니 여간 번거롭고 힘든 일이 아닐 터였다.

산내어린이집을 다녀온 보름이는 서하를 그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동갑나기는 넷이라고 했다. 둘은 사내아이라고 했다. 그나마 성별이 다른 동갑나기도 있어서 흡족한 표정이었다. “너희들 고생이 많겠다. 매일매일 데려가고 데려오고 하려면.” “그거야 뭐, 부모니까 당연히 해야지요.” 어느새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한 아들내외가 마주 앉아있었다.

퍼뜩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일곱 살 때였다. 골목에서 놀고 있는데 커다란 개가 달려와 내 손목을 덥석 물었다. 지나가던 어른이 작대기로 내려치고서야 개는 물었던 손목을 놓고 도망쳤다. 손목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 속살이 허옇게 드러나기도 했다. 어머니는 광목으로 상처를 싸매고 나를 등에 업었다. 3km 거리에 있는 면소재지 보건소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등에 업혀 가는데 잘그락잘그락 신작로 자갈 밟는 어머니의 발자국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다음날 어머니는 진주의료원에 나가 광견병 주사약을 사오셨다. 그날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는 일곱 살짜리 나를 등에 업고 면소재지 보건소를 다니셨다. 먹을 것이 모자라는 시절이었다. 거지가 밥동냥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주인을 떠난 굶주린 개가 마을을 훌싸다니던 시절이었다. 가끔 미친개에 물려 사람이 미쳐서 죽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던 시절이었다.

광견병주사약이 다 떨어질 때까지 어머니는 나를 등에 업고 보건소를 다니셨다. 광견병주사는 척추에 놓았다. 주사 통증에 나는 지칠 대로 지쳤고, 마침내 혼절했고, 이후 허약해진 몸으로 야뇨증을 앓았다. 잠을 자다보면 나도 몰래 잠자리에 흥건히 오줌을 싸곤 했다. 긴 겨울밤에는 하룻밤에 두 번 세 번 싸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 내 옷을 갈아입혀주셨다.

축축이 젖은 옷을 벗기고, 이부자리를 걷어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혔을 때의 그 뽀송뽀송한 느낌은 지금도 잊히지 않았다. 먹이고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억척스레 살아가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들 내외의 모습에서 어른거렸다.

돌아보면 나는 참 무심한 아버지였고 지아비였다. 자식이나 아내를 위해 희생한 기억이 없다. 시장을 가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꺼리만 사왔었다. 어쩌다 소풍 같은 여행을 가도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만 다녔다. 아들에게 장난감을 사준 기억도, 아내에게 꽃다발을 건넨 기억도 없다.

이런 내 모습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나도 했었다. 왜 이럴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왜 남들처럼 다정한 아버지도 되지 못하고, 살가운 지아비도 되지 못할까하는 반성도 했었다. 잘해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네 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자랐고, 그래서 좋은 지아비의 모습도, 아버지의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라 여겼다.

아들내외와 함께 살면서 그들의 모습에서 어버이를 본다. 때가 되면 반찬을 챙기고 정성들여 떠먹여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국물을 쏟고 앙탈을 부려도 어르고 달래며 밥숟갈을 놓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밥그릇을 다 비웠을 때의 그 흡족해하는 모습에서 어버이를 본다. 어린 딸을 위해 매일매일 10km가 넘는 길을 선택한 거룩한 어버이의 모습을 본다.

“아버지, 내일 일요일에 서하 좀 봐주세요.” “아니, 왜?” “서하아빠는 어린이집 울력 가고, 어머니는 정토회 회향가신대요.” “그럼 내가 봐야지. 오전만 보면 되지?” 내 평생 아이를 보는 일만큼 힘든 일은 없었다.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노동이었다. 사랑도 정성도 섬김도 통하지 않는 것이 아이보기였다. 넘어질세라 부딪칠세라 한 순간도 맘을 놓지 못하는 것이 아이보기였다.

아이를 보느니 차라리 삽질을 하는 편이 나았다. 보름이는 카페에 묶여있고, 아들은 일 나가고, 아내마저 자리를 비우게 되면 서하를 보는 일은 영락없이 내 차지다. 내일은 망했다. “내일 비 온다는데 어린이집 울력은 하나 몰라.” 나는 넌지시 아들놈을 쳐다보았다. 며칠 전부터 비예보가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 내일 어린이집 울력 안 한다네요. 비 온다고.” 카톡을 확인한 아들놈이 저도 좋아라하면서 소리치듯 말했다. 나도 덩달아 환하게 표정을 펴며 외치듯 말해버렸다.

“그럼 나 내일 서하 안 보고 읍내 목욕탕가도 되는 거지?” 쏘아보는 아내의 눈초리가 찔레가시처럼 따갑게 느껴졌다. 헐~ 보름이의 허망해하는 표정이 곁눈질로 보였다. 마주앉은 아들놈은 한동안 입을 떡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아, 가련하여라. 나는 여전히 좋은 아버지도, 지아비도 되지 못한 상태였다.

* 서하 어린이집 가는 기념으로 우리가 준비한 것은 비옷과 장화였다. 보름이가 인터넷으로 구입했는데 개나리처럼 샛노란 색이었다. 입혀보니 너무 예뻐 어린이집 입학하자마자부터 마음속으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석봉 농부  ksb@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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