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가 살아야 도시가 살아난다.

진주 최대 시내버스 회사인 삼성교통이 전면파업을 벌인지 44일째가 되던 화요일 아침. 파업에 동참하던 노동자 두 명이 45미터 통신사 철탑 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같은 날 오전엔 파업을 벌이던 노조원들이 진주시청으로 진입을 시도하다 몇 명이 다쳤다는 소식, 그에 앞서 노조 지도부가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연달아 들려왔다.

그리고 그날 휴대폰에선 최악의 미세먼지 농도를 알리는 긴급 재난문자 경보가 울렸다. 미세먼지 가득한 잿빛 하늘 처럼 온종일 답답하고 우울한 소식의 연속이었다. ‘45미터 상공 위엔 아마도 미세먼지가 더할 테지.’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절박한 상황 보다 고공에서 무방비로 미세먼지에 노출될 일이 나는 먼저 걱정되었다.

▲ 서성룡 편집장

2005년 여름이던가.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 끝에 삼성교통이 노동자자주관리기업으로 전환하던 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시내버스업은 땅 짚고 헤엄치며 큰 수익을 남기는 소위 ‘노다지 사업’이었다. 삼성교통 전 사주는 한 때 진주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으로 통했고, 금력을 바탕으로 통합 진주시의회 초대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만큼 각종 이권에도 개입돼 진주 발전을 가로막는 소위 ‘5도 10적’ 명단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름이 올랐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시내버스 이용객은 줄어들어 수익금도 함께 감소했다. 운전노동자들의 임금 쥐어짜기로 버티던 사업주는 마지막까지 단물을 빼먹고는 대중운송사업을 내팽개쳤다. 이에 임금체불로 장시간 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이 스스로 회사를 운영해 보겠노라 결의를 모아 사업권 승계를 받은 것이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삼성교통, 시민버스의 탄생 비화다.

그로부터 12년여가 흐른 지금, 시내버스는 ‘대표적인 대중교통’이라는 위상이 흔들릴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승객 수는 이후로도 계속 줄어들어 더 이상 버스 수익금만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기에, 적자노선 재정보조금이 도입됐고, 2017년부터는 표준운송원가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번 파업사태를 전하는 뉴스 보도 중 시내버스를 ‘교통약자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행정 서비스’라고 정의하는 말이 내 귀엔 유난히 거슬렸다. 또 하나, 버스를 운전하는 노동자와 진주시행정,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지만, 정작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었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교통정책을 수립하는 시청 공무원도, 문제의 최종 책임자인 시장님도, 중재를 하려는 시의원들도 버스를 타지 않는다. 버스를 운전하는 노동자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연대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이를 취재 보도하는 기자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시내버스를 타지 않는다.

시내버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어쩌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아무도 버스를 더 이상 ‘시민들의 발’이라고 부르지 않고 있는 이 현실. ‘불편하고 느리고 불친절한 버스 이용객 신세’에서 하루 속히 탈출하기를 모두가 꿈꾸는 이 상황 말이다. 버스는 학생과 노인, 일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시혜적인 행정 서비스’라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시내버스 문제는 영영 해결할 수 없는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물론, 당장의 파업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대증요법도 필요하다. 우선은 시의회 조사특위의 중재로 진주시와 삼성교통 노조가 한 발씩 양보해서 받을 수 있는 절묘한 합의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 급하다. 하지만 그것이 시내버스 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방법일 수는 없다.

재정보조금을 무한정 늘려나가는 방법이 아니라 운송수익금을 늘릴 수 있는 해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중요하다.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노선을 편리하게 다시 짜고, 지·간선 체제와 마을버스 도입하거나, 노동자들에게 친절 응대 교육을 철저히 해서 서비스를 개선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으로는 승용차를 몰고 도심으로 나오는 것이 시내버스를 타는 것보다 훨씬 불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도심 버스 우선차로제를 시행하고, 승용차 주차 제한구역을 두는 독한 처방도 필요하다. 교통이 복잡한 도심에는 거주자 차량 외에는 주차비를 높게 물리거나 금지하는 방법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멀거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극단적인 처방이라 여기는 이러한 제도들은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하는 ‘상식’으로 통한다. 그리고 그들은 개인 승용차를 홀대하는 이런 행정 덕분에 푸른 하늘을 누리며 산다.

시내버스 문제는 시내버스로만 끝나지 않는다. 시내버스가 살아야 도시가 살고, 도시에서 생활하는 시민들도 산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악의 미세먼지를 알리는 상황 문자와 ‘절대 바깥에 나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무감각한 일상으로 굳어버리기 전에, 시내버스에게 ‘시민의 발’이라는 위상을 다시 찾아주어야 한다 .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