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돌아가고 싶어 하는 당신들에게

//사나이 꽃이라는 이십 오 세 이 가슴

내일은 싸움터로 춤추러 갈 때

희망도 하소연도 무슨 소용 있으랴

이 것이 우리 청춘 갈 곳이라네

▲ 박흥준 상임고문

면사무소 드넓은 마당. 20대 장정 30여 명이 일렬종대 일렬횡대로 서서 어색하게 팔을 휘두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맞은 편 고무신 가게 앞 조금은 상거한 지점에서는 남루한 복색의 여인들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51년 9월 어느 날. 조작된 서류에 따라 면 서기의 동생 대신 영문도 모르고 느닷없이 징집된 25살 청년이 갓 태어난 딸을 안고 울먹이는 아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종심을 찌르며 달려간 아내는 흔들던 태극기를 세로로 곱게 접어 청년의 어깨에서 허리까지 세로로 둘러 매 주었다. 그들은 트럭을 타고 털털거리며 비포장 국도를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다. 아우성. 흐느낌. 실신. 허망. 세상이 끝난 듯한 탄식과 눈물범벅 하소연이 뽀오얀 먼지에 가려져 시나브로 스러지던 51년 9월 아직은 햇살이 뜨겁던 그 날.

아내여 굳세게 새 세상을 사세요

당신과 만날 적엔 백년 언약을

지금은 이별가를 합창하고 가오니

꽃같은 우리 아내 언제나 보나

25살 청년은 철도노동자였다. 쇠망치 하나로 퉁퉁 기차바퀴를 치면서 좁쌀주먹밥 한 덩이를 받아 아내와 함께 연명했다. 지친 몸을 청계천 5평 판잣집에 뉘었다. 한 덩이 좁쌀주먹밥에 물을 붓고 죽을 끓여낸 아내가 저녁 드시고 주무시라며 남편의 어깨를 흔들었다. 꽃 같은 아내의 모습이 아련히 사라지고 어느덧 새아침이 밝으면 끄응 일어나 바지를 서둘러 꿰고 하루를 다시 시작했다. 전평의 철도파업에 뭣도 모른 채 휩쓸렸다. 어찌어찌 목숨은 부지했다. 한국전쟁이 터졌고 해방(?)된 서울에서 다락에 엎드려 숨어 있다가 뒤늦게 한강을 허위허위 헤엄쳐 건넜다. 미제 쌕쌕이를 피해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돌아 온 고향. 하지만 고향은 청년을 즉각 포획해 싸움터로 내보냈다. 제주도 훈련기간은 30일. 방아쇠 당기는 법만 겨우 익힌 청년은 곧바로 백마고지에 밀어 넣어졌다.

아버지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까마귀 우는 골로 저는 갑니다

삼팔선을 투파하여 태극기를 날리고

죽어서 뼈골이나 돌아오리다

당시에도 휴가는 있어서 청년은 아내가 부모를 봉양하며 처진 젖을 딸에게 물리며 지키고 있는 고향, 심심산골에 잠시 돌아왔다. 아내는 청년의 어깨에서 흙먼지와 때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태극기를 조심조심 떼 내어 냇가로 갔다. 그리고 곱게 빨았다. 죽을지도 모르고 죽을 곳으로 귀대하는 청년의 가슴에 다시 둘러줬다. 살아만 돌아오시라고. 무운장구를 빌면서. 감자 두 알과 옥수수 한 개를 삶아 저녁을 차렸다. 25살 청년과 늙은 부모, 23살 아내가 둘러앉아 조금씩 천천히 저녁을 먹었다. 가물거리는 호롱불이 벽지 없는 바람벽에 어두운 그림자를 하늘하늘 드리웠다.

님께서 가신 길은

가시밭 동산이외다

기어이 가신다면

내 어이 잡으리까

가신 뒤에 내 갈 길도

님의 길이요

까마귀만 울어도 설레는 이 가슴엔

피눈물이 맺힙니다

피눈물이 맺힙니다

속울음을 삼키며 아내는 노래했다.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노친네에게 큰 절을 한 번 더 하고 청년은 다시 백마고지로 향했다. 인해전술로 이름이 떠르르 한 중조의용군과 총검으로 맞섰다. 53년 7월. 청년은 허벅지에 수류탄 파편을 수십 개 박은 채 절룩이며 의병제대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것이다. 살아서 돌아왔다.//

당신들. 다시 한 번 돌아가고 싶은가. 그 시절이 그리운가. 당신들은 안 죽지 싶은가. 웬만큼 했으면 족할 줄 알아야지 증오의 대상이 또 필요한가. 핵무기 없어지는 게 그렇게 두려운가. 돈 있고 빽 있고 권력 있고 도망갈 하와이가 있는 당신들. 그래서 죽을 염려는 없다고 오판 착각하는 당신들. 당신들은 안 죽지 싶은가.

천벌 받을 망언을 기다렸다는 듯 내뱉고, 온갖 훼방 끝에 촛불정권을 탄핵해야 한다며 드디어 갈라진 음성을 내뱉는 당신들. 당신들의 앞날이 문득 궁금해지는 건 오로지 당신들 책임이다.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19세기도 아니고, 욱일승천기가 휘날리던 20세기도 아니고, 전쟁위험에서 훨훨 벗어나려는 21세기이니까. 지금은 21세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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