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진주교육지원청 부지 소녀상 앞에서 추모식 열어

“고 김복동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일본정부의 진정어린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아직 일본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피해자(위안부)들에게 진정어린 사죄는 물론 배상도 않고 있습니다. 고 김복동 할머니의 뜻을 이어가 하루 속히 진정어린 사죄와 배상을 받아야 합니다” 

일본군성노예피해자진주평화기림사업회(이하 평화기림사업회)는 1일 진주교육지원청 옆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고 김복동 할머니 추모식을 열어 이 같이 밝혔다.

지난 1월28일 일본군 성노예피해자(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두 분이 영면에 들었다. 그 중 고 김복동 할머니는 거리에서, 미디어를 통해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인권 활동가’, ‘평화 활동가’로 활동해왔다.

 

▲ 추모사를 읽고 있는 강문순 일본군성노예피해자진주평화기림사업회 대표

김 할머니는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실제 모델로 1992년 3월 일본군 성노예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고발했다. 1993년에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고, 미국·일본·유럽 등에서도 이 문제를 알리는 데 힘썼다. 

또한 1992년 1월 8일 위안부 10명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첫 수요시위를 시작한 이래 빠짐없이 시위에 참여, 사람들을 만나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호소해왔다.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전쟁이 없고, 성폭력 피해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해오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이러한 활동은 국제사회가 일본군성노예피해자(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콩고, 우간다 등 세계 무력분쟁지역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김 할머니의 이러한 활동에 감명을 받아 “당신은 우리의 영웅, 우리의 마마, 우리의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전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하나로 결속시키고, 그들의 목소리를 세계에 확산시켜왔다. 이에 지난 2015년 국경없는기자회, AFP통신으로부터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되기도 했다. 

 

▲ 진주교육지원청 부지 내 소녀상 앞에 모인 시민들

평화기림사업회는 이날 “일본군 성노예피해자(위안부) 운동의 큰 대들보를 잃은 지금 그분들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가 더 커졌다”며 “할머니들이 당했던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문제를 바로잡아 나가는 일이 우리의 과제”라고 밝혔다. 

이어 “28일 두 분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성노예피해자(위안부)는 이제 스물 세분이 남았다”며 “시간이 많지 않다. 할머니들의 뜻을 이어받아 그분들의 고통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힘껏 노력해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일본 정부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역사왜곡과 부정의 파렴치한 작태를 멈추고, 20세기 최대의 인권유린 가해자였던 그들의 과거를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며 “침략전쟁의 군홧발로 짓밟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겸허하고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조속히 실행하라”고 강조했다.

한편 1일은 고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 날이다. 할머니의 시신을 태운 운구차량은 이날 6시30분쯤 신촌세브란스 병원을 출발해 할머니가 지냈던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 들린 뒤 서울광장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어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까지 걷는 노제가 열리며, 일본대사관 앞에서 50분간 영결식이 치러진다. 장지는 경기도 천안시 ‘망향의 동산’이다. 이곳에는 다른 성노예 피해자(위안부) 할머니들이 잠들어 있다. 

고 김복동 할머니는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만 14세 때 일본군에 끌려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생활을 했다.

 

▲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시민들. 행사가 끝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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