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8년간 묵묵히 고문헌 연구에 헌신해온 이정희 학예연구사

경상대학교 고문헌도서관이 지역민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기증받은 도서가 3천 점을 넘어서고, 방문객이 3만5천여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난해 2월 개관한 국내 대학 최초의 고문헌 전문도서관이다. 개관한 지 일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고문헌이 많이 기증됐다. 지역민이 고문헌을 자발적으로 기증했기에 큰 의미가 있다.

기존의 도서관은 단지 기록물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기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경상대 고문헌도서관은 ‘라키비움’개념을 구현한 복합문화공간의 도서관으로서 다양하고, 능동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라키비움(larchiveum)은 도서관(library)·기록관(archives)·박물관(museum)의 합성어로 세 가지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제공하는 기관을 말한다.

고문헌 도서관은 지난해 설립됐지만 고문헌에 대한 소장과 연구는 지난 2001년 개관한 남명학관 ‘문천각’시절 부터 시작됐다. 그 중심에 이정희 학예연구사가 있다. <단디뉴스>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고문헌을 수집·보존해 지역문화 발전에 이바지 하고 있는 이정희 학예연구사를 2일 만났다.

 

▲ 경상대학교 고문헌도서관 이정희 학예연구사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어떻게 고문헌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됐나요?
“저는 경상대 한문학과를 나왔습니다. 재학 당시 실재 선생님이 한문학과에 부임하셨고, 저는 그를 따라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하루는 그를 따라 경남에서 가장 많은 고문헌을 소장하고 있는 근세유학자 중재선생의 생가에 도착했습니다. 대청마루 기둥에 오래된 문서가 꼬챙이에 끼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재문중의 중요한 문서와 고서를 모아둔 것인데, 대수롭지 않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방안 벽장 속에는 고서가 먼지 수북이 쌓여 있었고, 때로는 쥐가 반쯤 갉아먹은 것도 있었습니다. 분명 중요한 자료였으나 그의 후손들은 책의 목록도 가지고 있지 않고, 소장정보는 단지 기억에 의존할 뿐이었습니다. 실재 선생은 그 주인에게 차용증을 쓰고, 열람하고 싶은 고서를 보따리에 싸서 돌아왔습니다. 이런 일은 반복됐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통해 경남지역 민간에 흩어져 있는 역사기록을 모아 잘 보존하고, 많은 연구자들이 편하게 연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고문헌도서관을 통해 이런 자료들을 다음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 저의 과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수집해 둔 고문헌을 일반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중화하는 것이 저와의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 고문헌도서관이 전국 대학 가운데 최초로 설립됐습니다. 어떻게 시작할 생각을 했습니까?
경남은 역사가 깊은 지역이고, 그 역사를 증명하는 고문헌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남명학연구소와 경남문화연구원 그리고 대학교(사학과, 한문학과) 등이 지역문화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진주는 경상대가 위치해 있어 그 인프라가 더 잘 갖춰져 있는 곳입니다. 많은 연구 중에도 남명학에 대한 연구가 으뜸입니다.

그러나 경남은 고문헌연구에 대한 지원이 열악한 편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우리지역의 고문헌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할 수 있도록 연구자가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연구자뿐만 아니라 고문헌에 대해 일반대중들이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로 고문헌도서관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 단디뉴스와 인터뷰 중인 이정희 경상대학교 고문헌도서관 학예연구사

 
- 지난 해만 3천 권의 고문헌이 수집됐다고 들었습니다. 노하우가 있었나요?
지난 해만 3천권이고, 여태까지 수집된 고문헌은 총 5만여 권에 달합니다. 가장 많은 자료가 소장된 곳은 합천 해인사(7만여 점)이고, 그 다음이 바로 우리입니다. 오직 지역민의 자발적인 기증과 기탁에 의해 이뤄져 더욱 의미가 큽니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들은 관리가 힘들고, 도난위험이 컸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증을 많이 하는 이유는 경상대 고문헌도서관이 우수한 시설을 갖고 있고, 고문헌 운영·관리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고문헌을 잘 보존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온도·습도조절을 잘 하고, 항온·항습과 더불어 정기소독이 필요합니다. 개인이 이런 관리를 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대신해 귀중품을 잘 보관해주겠다는 마인드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문헌을 기증받기 위해 기증자들과 진심어린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의 문중을 방문해왔고, 그들과 교감해 신뢰감을 구축해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었고, 지금은 지역문화 발전에 대학과 지역민이 함께 노력하는 모범사례가 된 것 같습니다.

- 고문헌자료를 수집함에 따라 기대되는 효과와 앞으로의 노력은?
만약 고문헌도서관이 없었다면 지역의 귀중한 자료가 뿔뿔이 흩어졌을 겁니다. 경상대고문헌도서관을 통해 연구자들이 힘들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고, 한 군데서 손쉽게 연구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귀중한 자료를 잃지 않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 경상대학교 고문헌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고문헌들

- 기증받은 자료 중 대표적인 것을 하나만 꼽자면?

단계선생 일기입니다. 이는 단계 김인섭 선생이 13세 되던 해(1839년)부터 77세 되던 해(1903년)까지 64년 동안 썼던 일기입니다. 총 29권으로 구성됐으며, 자신이 읽은 책과 교우관계 및 살림살이 등의 내용이 자세하게 수록돼 있습니다. 19세기 당시 농촌사회의 모습과 임술농민봉기가 발발하기 직전 농민들의 동향, 민란이 진정된 뒤 새로 부임한 단성현감과의 갈등에 대한 기록들이 묘사돼 있습니다. 이는 조선후기 사회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207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기존의 조선왕조실록 같은 국가자료는 통치자와 중앙관료 중심의 관점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고문헌자료는 새로운 지역민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지역문화연구를 통해 역사의 객관성을 꾀할 수 있고, 지역연구를 정밀하게 연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역민의 관점으로 역사연구를 하면 지역역사를 더욱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지역의 역사는 지역민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 언론에 공개된 것 외에도 자랑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최근에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추가로 신청해 둔 작품이 6종, 230여 점에 달합니다. 오는 3월쯤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문화재는 크게 국가지정문화재(국보, 보물)와 지방문화재로 나눠집니다. 우선 국가지정문화재 중 보물로 지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문화재는 △도성도(1점) △동국지도(9점) △복재선생시고(1점) △정덕계유사마방목(1점) 등입니다. 지방문화재 중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리라 예상되는 것은 △남명선생친필(1점) △남명선생학기유편(2점) △명성황후 상식발기(215점) 등입니다.

특히 '명성황후 상식발기'는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제사상 차림 목록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이 자료를 통해 당시에 사용했던 음식종류를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문헌에서 전해지지 않은 궁중음식이 새롭게 발견돼 큰 의미가 있습니다.

 

▲ 경상대학교 고문헌도서관

- 고문헌 자체는 일반인들이 해독하기 힘든데요. 일반인들이 고문헌에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있나요?

일반인들이 자료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고문헌을 디지털화해 출판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리산 한시선집의 경우 우리말로 번역, 100권을 출판해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전시관에서는 학생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남명선생의 일대기를 애니메이션화한 ‘남명의 하루’와 임진왜란 당시 포로가 된 농민들의 애환을 담은 ‘임난포로의 삶’을 컨텐츠화 해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학생들도 지역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역사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자료를 디지털화해 전국 어디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무료로 인터넷 웹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컨텐츠화해 고문헌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일 말씀이 있다면?

현재 고문헌의 전시와 연구뿐 아니라 대학교에서 고문학개론 수업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학생을 대상으로 고문헌 관련 체험프로그램,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방문식 견학실습, 대학생을 대상으로 현장체험학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젊은 세대도 고문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도서관 역점사업으로 기증자를 초청하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증자들과 더 많이 교류하며 신뢰관계를 쌓아 지역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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