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에 눈먼 집권당, 민심이반 자초하나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무리한 행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해찬 당대표는 여야 5당 대표 간 월례 모임에서 야 3당의 선거구제 개편과 예산안 처리 연계 지침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해찬은 “연계할 것을 갖고 연계해야지, 어떻게 국민이 써야 할 예산을 선거구제와 연결시킨다는 말이냐”며 “30년 정치생활에서 처음 보는 경악할 일”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평소 기자 등과의 대인관계에서 감정조절을 잘못해 ‘핏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해찬은 야 3당 대표들에게 ‘호통’을 침으로써, 국회의장 주재 오찬회동 자리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야 3당이란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이하 자유당)을 제외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을 말하는데, 사사건건 충돌하는 집권당인 민주당과 제 1야당인 자유당이 선거구제에서 만큼은 기이하게도 한 배를 타고 있다. 오월동주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와 학자 등 전문가집단들은 의원정수 확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두 당은 현행 선거제도가 유지될 경우 정당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선거구제를 바꾸어서 의원수를 늘릴 이유가 없다. 의원 수 확대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하기는커녕, 국회의원들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국민 여론에 기대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유당의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화답하듯이 “예산안은 예산안이고 선거구제는 선거구제대로 쉽게 논의가 안 될 것 같다”고 민주당을 거들면서, 야 3당의 연계 방침을 에둘러 비판하고 나선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다.

이에 반해 야 3당 대표들은 민주당의 입장이 선거공학에 기반을 둔 집단이기주의에 불과하다면서 갑작스런 태도 변화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폐기하고, 정당 득표율과 국회 의석수를 가능한 일치시킬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제도의 도입은 민주당도 지난 2015년부터 강조해온 주장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전말은 이렇다. 2015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한국의 선거제도를 선진국처럼, 유권자들의 투표결과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취지로 지역구와 비례 의석을 2:1로 맞추고 전국 6개 권역을 나눈 상황에서 그것을 연동형으로 하는 방안을 내놨다. 당시에 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이 “중앙선관위 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최근까지 정책위 의장이나 사무총장도 방송에 나와서 “개헌과 연계시키지 않고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합의한다면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특히 정당대표들이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 합의차 대통령의 특별 수행원으로 방북했을 때 이해찬은 “우리 사회의 보수편향으로 기울어진 정치지형을 바로잡기 위해서 집권여당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할 수 있다”고 했으며, 야 3당 대표들은 이것을 ‘평양 합의’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철석같이 약속했던 이해찬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한 데에는 민주당이 지역구에서만도 충분히 많은 수의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는데 굳이 군소정당에 도움이 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의석수를 감소시키는 위험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그것이 국민이 써야 할 ‘성스러운’ 예산안에 불경스럽게도(?) 선거제도를 연계시킨다는 발상으로 나타났으니 “30년 정치인생에서 처음 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호통을 친 원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해찬의 대응은 단견이요,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한동안 고공행진을 계속해오던 대통령 문재인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동반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다. 게다가 내년이면 지도부가 꾸려진 자유당과 21대 총선을 향한 본격적인 경쟁구도가 시작될 것이다. 상호공방의 레이스에서 민주당이 자유당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현재까지 이루어진 남북관계의 개선과 북미관계의 호전은 문재인과 민주당의 확실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이외의 분야는 어떤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둘러싼 논란과 최저임금제의 정착 여부 등 경제분야의 난제들은 아직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재벌개혁과 종합편성채널 TV에 대한 비대칭적 특혜와 규제 철폐 등 언론개혁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구질서는 여전히 무너지지 않았으되, 새 질서는 세워지지 않았다. 국회 내에서 민주당의 위치도 불안하다. 그렇다면 기댈 곳은 야 3당 밖에 더 있는가.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등과의 연대를 통한 정치, 경제, 사회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거대 양당 체제의 적대적 공존 구도를 깨고 다당제를 뿌리내리기 위한 선거제도로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렇듯 민주당이 기득권을 가진 집권여당이 되면서 조변석개, 즉 속된 말로 ‘어디 들어갈 때와 나올 때’만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대표적인 사례가 또 있다. 바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논의다. 자유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은 민주당 주도로 지난 정부 때 발의한 박홍근 의원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을 선호했다. 이 법안의 골자는 ➀공영방송 이사회 여야 추천 이사를 7대6으로 조정하고 ➁사장 추천시 이사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게 하며(특별다수제) ➂노사동수 편성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에 요구했던 특별다수제에 대해서, 집권한 뒤에는 최악의 사장을 막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뛰어난 사장을 뽑기 힘들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다른 방식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반대로, 자유당은 집권당 때는 특별다수제 법안을 거부하더니 야당이 되자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집권여당의 갈팡질팡하는 일관성없는 정책으로 가장 큰 골병이 들고 있는 곳이 KBS와 MBC 등 공영방송들이다.

대통령과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일시적으로 상승할 수도 있고, 하락할 수도 있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을 가능하게 한 촛불시민들이 지향했던 사회정의와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는 개혁 동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찬이 주장했다는 “20년 집권론”은 얄팍한 정치공학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눈앞의 작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야 3당과 했던 약속,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파기할 경우, 닥칠 민심이반을 걱정해야 한다. 촛불시민들에 의해 세워진 정부가 촛불시민들과 대립, 갈등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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